김종국 MBC 사장이 지난달 취임사에서 '공정방송'을 첫 과제로 내세웠지만, 보도와 관련해 MBC의 성적은 낙제점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아래 민실위·위원장 김병헌)가 23일 김장겸 신임 보도국장이 보도국을 이끈 한 달 동안(5월 23일부터 6월 21일까지) MBC와 SBS 메인뉴스에 순차적으로 배치된 상위 10개의 리포트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실위 분석 결과, MBC <뉴스데스크>는 SBS <8뉴스>에 비해 민감한 정치권의 이슈를 소홀히 다루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자극적인 사건·사고 뉴스가 SBS보다 2배가량 많았다.

▲ MBC 뉴스데스크 11일자 보도 '원세훈 전 원장 불구속 기소' (MBC 뉴스데스크 화면)

검찰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뉴스 회피

김장겸 보도국장이 취임했던 5월 하순은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했고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을 했고 경찰이 이에 대한 수사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중차대한 사건이었지만, MBC <뉴스데스크>는 단 3개의 리포트만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실위는 6월 11일 '원세훈 전 원장 불구속 기사'(6번째), 6월 14일 '대선 개입 혐의 기소'(1번째) '직접 지시 여부 공방'(2번째)뿐이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SBS <8뉴스>는 10개 리포트를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MBC 민실위는 "절대적인 양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며 "방송이 나간 순서를 보면 상위에 배치에 전국 시청자들이 볼 수 있었던 경우가 매우 적었다. 이 기준으로 상대사와 비교를 해보면 상대사가 MBC 뉴스데스크보다 2배 넘게 보도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대기업에 대한 감시·원전 비리 사건도 소홀

MBC <뉴스데스크>는 대기업 문제와 원전 비리 사건에서도 보도의 양과 질이 현격하게 떨어져 SBS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의 특종 보도로 화제가 된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CJ 이재현 회장의 비리 △모 대기업 오너의 딸이자 부사장의 원정출산 의혹 △살인을 청부하고도 형 집행정지를 받고 호화병실에서 생활하는 행태의 '사모님방지법' 문제 △ 삼성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부정입학 논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 등이 이 시기에 불거졌다. 하지만 민실위는 뉴스타파와 관련한 관련 보도 횟수가 SBS의 1/3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SBS는 조세피난처에 대해 <뉴스타파>의 발표가 있을 때 마다 톱 블록에 배치해 5개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CJ 이재현 회장과 관련된 보도는 8개, 전두환 노태우 재산환수와 관련된 보도 8개 등 모두 27개의 리포트를 톱 10 안에 방송했다. 반면 MBC <뉴스데스크>는 조세피난처 2개, CJ 이재현 회장 5개, 전두환 노태우 재산환수 3개 등 9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MBC <뉴스데스크>는 10건의 리포트를 하는데 그쳤다. SBS는 같은 기간 원전비리 관련해 20개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보도 양이 SBS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민실위는 리포트의 내용도 원전 비리가 발생한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기보다 전력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절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더 많았다고 평가했다.

▲ MBC <뉴스데스크>는 민감한 정치적 이슈 대신 동물이 등장하는 보도, 사건·사고 뉴스에 중점을 두었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배스·메뚜기·오징어 등 '동물의 왕국'이 된 MBC 뉴스

MBC는 고발·비판 이슈 대신 사건·사고 기사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실위는 "SBS는 상위 10개 리포트 중 사건·사고 뉴스가 총 56개였지만 MBC <뉴스데스크>는 102개에 달했다"고 밝혔다.

민실위는 동물이 등장한 뉴스도 SBS에 비해 많았다고 밝혔다. 6월 17일에는 고라니와 메뚜기를 다룬 뉴스가 각각 9번째와 10번째 리포트로 방송을 탔고, 6월 16일에는 국민 수산물로 등극한 오징어가 9번째 뉴스였다. 6월 9일에는 멧돼지와 진돗개의 혈투가 7번째로 보도됐고 물속 폭군 배스가 8번째로 방송됐다. 외래어종인 배스는 3주 사이에 톱 10 리포트에 2번이나 포함됐다.

민실위에 따르면, 보도책임자들은 "SBS8뉴스와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생생한 그림의 사건사고 기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번한 기사 축소 지시…MBC 기자들 "자기 검열 강해져"

MBC 보도국에서 기사의 연성화, 기사 축소가 일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실위는 지난 20일 사회2부가 국정원 사태와 관련된 집회에 대해 리포트를 하겠다고 발제했지만 보도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현직 경찰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무궁화 클럽'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의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서울대 이화여대 등이 시국 선언이 이어진 싱황이었다.

민실위는 이들 아이템이 보도로 이어지지 않은 배경에 '김장겸 보도국장이 리포트 대신 단신으로 보도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민실위는 "(김장겸 보도국장이) 전직 경찰 집회와 시민단체 기자회견, 총학생회 움직임까지 다 모아 리포트를 하겠다는 것인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리포트는 좀 심한 것 같다"며 "우리(MBC)가 총학생회까지 보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한쪽 주장만 담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오늘 서울대 이대 등의 총학생회는 국정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과 경찰의 축소수사 의혹을 규탄했다"는 한 줄만 보도됐다. 반면, SBS는 22일 관련 내용이 6번째 단독 리포트로 보도됐다.

MBC 내부 기자들은 '빈번한 기사 축소'와 '거부되는 발제'로 인해 상당히 위축됐다고 증언했다. 민실위는 KBS와 SBS가 지난 10일 6.10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아 기획기사를 리포트했지만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6.10 민주항쟁 관련 기사를 단신으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MBC 보도국의 어느 부서에서도 6.10 민주항쟁에 대한 기획을 하지 않았고, 편집회의에서 발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보도국의 한 기자는 "자기 검열이 강해지고 있다"며 "기획 기사를 내도 자꾸 축소되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니 자괴감만 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6.10 기획 기사만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뉴스들이 계속적으로 뉴스데스크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3등 방송'이라는 오명이 듣기 싫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디가서 얼굴도 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민실위는 "보도국 구성원들이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스스로 위축되고 만다면 MBC 뉴스의 신뢰성 회복은 아무도 담보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지난 한 달 동안의 뉴스를 분석하면서 민실위는 작금의 상황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