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수 화백이 그린 수많은 만화 가운데 <내일뉴스>라는 작품이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과거의 이야기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뉴스가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사건을 전파로 방송한다면 그건 뉴스가 아니라 ‘예언’이다.
주인공이 갖고 있는 라디오는 평범한 라디오가 아니다. 내일 벌어질 사건을 미리 뉴스로 예언하는 라디오다. 라디오가 전하는 내일뉴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실제로 일어나니, ‘말하는 대로’ 실제 사건이 벌어지게 만드는 신기한 라디오가 아닐 수 없다.
<더 웹툰: 예고살인>도 마찬가지다. 지윤(이시영 분)이 그린 만화의 설정대로 사람이 죽어나가니 형사 기철(엄기준 분)이 제일 먼저 지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신이 그린 만화와 똑같이 편집장이 죽어나가는 것도 모자라 추가로 영안실에서 장의사가 죽어나가니, 자신이 그린 만화의 인기를 더하기 위해 만화 속 설정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만화가의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만일 만화를 그리는 지윤이 형사 기철이 오해하는 것처럼 만화가의 인기를 위해 무차별적 살인을 저질렀다면 분명 지윤은 소시오패스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더 웹툰: 예고살인>에서 주목할 점은 영화가 단순히 피해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가학성에만 무게를 두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사연이 있다. 바로 죽은 피해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단 점이다.
이들 피해자의 공통점은 ‘양심’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 가족에 관한 일이라면, 이는 피해자가 아무리 친한 지인이나 친구, 친척에게라도 섣불리 발설할 수 없는 은밀한 가족사이기도 하다.
<더 웹툰: 예고살인>은 만화가가 창작한 대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공포적인 요소를 논외로 한다면, 숨기고 싶어 하는 은밀한 가족사 뒤에 숨겨진 양심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저지른다. 피해자의 가족은 이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웹툰 설정대로 죽어가는 피해자들 역시 가족이 상처 입은 것에 대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평생을 두고 살아야 했던 이들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더 웹툰: 예고살인>은 양심의 소리에 관한 영화다.
그럼에도 <더 웹툰: 예고살인>에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뮤지컬 스타 엄기준을 평면적인 캐릭터로 만든 점이다. <더 웹툰: 예고살인>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영화가 뮤지컬 스타들을 활용하는 데 있어 서툰 면을 보여준다. <런닝맨>이나 <용서는 없다>에서 남경읍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김법래를 활용하는 연출 역시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는 언제쯤이면 뮤지컬에서 날고 기는 스타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이는 한국영화의 연출이 풀어야 할 과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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