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0’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이 작년 7월 11일이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첫 정책으로 발표한 것이 공공정보의 개방과 맞춤형 서비스를 골자로 하는 ‘정부 3.0’ 운영 방안이었다. “공개ㆍ공유ㆍ소통ㆍ협력이 정부 운영의 핵심 가치가 돼야” 하며, “일방향 소통의 정부 1.0을 넘어, 쌍방향 소통의 정부 2.0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행복’을 지향하는 ‘정부 3.0’ 시대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월 19일 박근혜 정부는 “정부 3.0은 정부 운영방식이 국가 중심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뀌는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면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정부 3.0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지난 1년여 사이에 정부 3.0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꾸준히 언급되면서 그 내용이 약간씩 추가ㆍ보완되어 왔다.

멋있어 보이는 '정부 3.0'

18대 대선 시기에는 정부개혁을 위한 새누리당의 정책공약 중의 하나로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정부 3.0 시대)’가 제시되었고, 대통령직인수위 시기에는 국정목표 달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운영시스템의 혁신방향으로 개방ㆍ공유ㆍ참여를 통한 ‘정부 3.0’ 달성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지난 4월 5일 있었던 2013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안전행정부는 정부 3.0로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면서, 그 추진과제로 원스톱 맞춤형 서비스 제공, 공공정보 개방ㆍ공유로 일자리 창출, 국정운영 시스템의 획기적 개편, 엄정한 공직기강 확립을 제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3.0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뉴스1)

4월 19일 발표된 정부 3.0의 추진 기본계획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과 ‘일자리ㆍ신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 ‘국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 등 3대 전략과 10대 중점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정부 3.0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많은 매체들을 통해 알려졌으니, 이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정부 3.0 중점 추진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3.0 중점 추진과제>

① 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공공정보 적극 공개로 ‘국민의 알권리’ 충족
공공데이터의 민간 활용 활성화
민ㆍ관 협치 강화

②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
정부 내 칸막이 해소
협업ㆍ소통 지원을 위한 정부운영 시스템 개선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행정 구현

③ 국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통합 제공
창업 및 기업활동 원스톱 지원 강화
정보 취약계층의 서비스 접근성 제고
새로운 정보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창출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정부 3.0 중점 추진과제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기본 개념은 정부의 본래 업무에 충실하자는 정도의 내용에 불과한 정부 3.0이 온갖 정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지팡이로 전화한 듯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것도 잘 하지 못하는 말의 동전 양면이다. 그렇게 구멍이 많은 것이다.

들여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우선, 정부 3.0이라고 하지만, 정부 2.0과 구체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그 실체는 무엇인지 모호하다. 정부 2.0(Government 2.0)이라는 용어도 아직 그 의미가 애매모호한데, 정부 3.0이라는 용어가 명확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 2.0이 대중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2009년 말 ‘서울버스’ 어플을 둘러싼 공공정보의 공개 논란 때문이었다. 당시 한 고3 학생이 서울, 인천, 경기도 버스 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아이폰용 무료 어플인 ‘서울 버스’를 개발하여 앱스토어에 공개하였는데, 경기도가 이를 ‘공공정보의 무단이용’이라는 이유로 차단하고, 법적 제재를 운운한 이후 정부와 경기도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정부가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는 공공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이 이를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건은 정부 2.0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 2.0은 웹 2.0을 이용하여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고 시민 참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공공부문의 상호신뢰를 통해 민관협치를 이루어내는 것이 정부 2.0의 핵심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3.0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이 용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도 석연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7월 10일 대선 출마선언을 하면서 가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정부가 투명해야 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며 효율적인 정부가 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부 2.0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그 다음날 이를 3.0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첫 대선 공약인데 정부 2.0로는 새롭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고 봤으리라. 하지만 용어가 새롭다고 내용까지 금방 업그레이드되진 않는다.

실제 정부 3.0 공약은 지난해 7월 발표되자마자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이명박 정부가 2009년 12월 발표한 ‘클라우드 컴퓨팅 활성화 종합계획’을 통해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던 것을 베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이번에 나온 정부 3.0 추진계획은 행정안전부가 2011년 3월 발표한 ‘국민과 하나되는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스마트 전자정부(Smart Gov) 추진 계획(안)’을 가다듬은 것에 불과하다. 정부 3.0 중점 추진과제는 행정안전부의 스마트 전자정부 추진 계획(안)에서 공공 정보ㆍ서비스 공개 및 개방(Open), 수요자중심 서비스 통합 및 다채널 통합(Integration), 조직, 부서간 협업(Collaboration) 및 정보 공유, 친환경적 및 저비용 시스템 구축(Green)으로 정리되는 추진전략에 몇 가지를 덧붙인 것이다. 결국 정부 3.0은 기존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것일 따름이다.

새로울 것도 없으며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정부 3.0 추진계획은 직접민주주의까지 언급하는 등 지나치게 포괄적인데다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없이 개론 차원의 내용만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능동적 참여를 보장하는 게 ‘정부 3.0’이라고 얘기한다. 안전행정부 박찬우 제1차관은 6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정부 3.0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에서 “정부 3.0이 실현되면 국민의 직접 참여가 확대돼 직접민주주의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 5천억원 이상의 대형 국책사업이나 주요국정과제에 대해 온라인 공청회나 설문조사를 하고 온라인투표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3.0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뉴스1)

정책 전 과정에 집단지성을 구현하고, 참여ㆍ소통 채널을 다양화하며, 온라인 민-관 협업 공간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민ㆍ관 협치 강화의 내용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강조되었던 것이다. 민ㆍ관 협치는 기술적인 면들만 고도화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과연 말만큼 실천이 뒤따를 것인지 의문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빼놓지 않았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정부는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민간 가스 직수입 활성화, 발전산업의 경쟁 확대, 제2 철도공사 설립 등 각종 (우회적) 민영화 정책을 적시하면서도, 정작 공청회 등에서는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형식적으로 진행하고, 시민사회를 들러리 삼아 밀어붙였다. 민ㆍ관 협치는 의지 표명으로 달성되진 않는다.

정부는 공공정보의 적극적인 공개와 개방을 통해 15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24조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이런 예측이 실현될지 여부도 불분명하거니와, 민ㆍ관 협치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확장이 정부 3.0 추진계획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그 실내용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효과 제고에 있었던 것이다. 정부관계부처 합동으로 나온 보도자료의 제목도 “정보의 개방ㆍ공유로 일자리를 만드는 맞춤형 정부가 됩니다”이다. 정부 3.0이 창조경제 실현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보 영리화로 인한 부작용 대책도 없어

정부는 또한 공공정보 중에서도 민간수요가 많은 기상, 교통, 지리, 교육, 복지, 재정정보 등을 개방한다고 하는데, 이들 정보를 영리화할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다. 자본이 자신들이 가공하였다고 하여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면서 정보 접근에 대한 통제를 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허버트 실러는 공적 정보 제공 기관의 희생 속에 사적인 정보 제공업체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정보화를 우려한 바 있다. 미국 경제를 특징짓는 정보의 상업화와 정보 제공자들의 사상 유례 없는 집중화로 인해 정보 불평등이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영화의 폐해에서 잘 나타나듯이, 공공정보를 가공하여 자신들의 사적 소유로 만든 영리 기업들이 공적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지 의문이다.

정부 3.0에서 그나마 평가해줄 수 있는 내용이 공공정보의 적극적인 공개이다. 물론 그 의지 표명은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정보가 많은 현실에서 이는 레토릭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상 정보공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비공개대상정보 조항은 정보공개 청구의 실효성을 제약해왔다. 국가안전보장,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 사생활의 보호, 진행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 등을 운운하면서 사실상 정보공개를 봉쇄해왔던 것이다.

대표적인 비공개 정보가 바로 국민세금으로 수행된 정부의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들이다. 정책연구 정보를 공개하는 정책연구관리시스템 사이트(http://www.prism.go.kr/)에 올라온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들 중에 비공개된 것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감사ㆍ감독ㆍ검사ㆍ시험ㆍ규제ㆍ입찰계약ㆍ기술개발ㆍ인사관리ㆍ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ㆍ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법 제9조 제1항 5호)에 해당되어 비공개되기 일쑤다.

오히려 공개해야 할 정보는 공개를 안 하면서

얼마 전 정부 3.0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기관의 설립과 운영 등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기관에 관한 구체적인 현황이 궁금하여 찾아봤더니 안전행정부 홈페이지는 물론 정부부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안전행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해 안전행정부는 “요청하신 사항에 대해 현재까지 안전행정부가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현황에 대해 외부에 공개할 법적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비공개결정을 하였다. 정책결정을 위한 참고자료로서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의 자료가 아니며, 따라서 업무의 공정한 수행 및 향후 원활한 제도의 개선을 위해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의 공공정보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민간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더욱이 정보 공개가 국정운영의 만능키는 아니다. 이를 테면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9일 개방형 정부 운영체제인 ‘정부 3.0’과 관련하여 “공공기관 부채 중 무엇이 늘었는가에 대해 전부 정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실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가 공개된다고 하여 공공기관 부채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까?

여전히 담당 공무원이 누구인가에 따라 시민들이 요청하는 정보의 공개 여부나 공개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정보 공개와 함께 관료사회의 폐쇄적인 관행을 바꾸고 공무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대책이 수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정부 3.0을 떠벌리기에 앞서 공공정보의 공유를 제대로 하는 정부 2.0, 아니 시민들의 정보공개 청구에 제대로 응하는 정부 1.0부터 정착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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