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꼭두각시>는 독창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장미희가 주연한 TBC의 드라마 <얼굴 없는 미녀>, 혹은 김혜수 주연의 동명 타이틀의 영화 내용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호러물이다.

지훈(이종수)은 친구가 사랑하는 현진(구지성 분)을 상담하다가 현진에게 성적인 호감을 갖고 매주 일요일 3시가 되면 지훈의 집으로 찾아오도록 그녀에게 최면을 건다. 최면에 걸린 현진이 정확하게 일요일 3시만 되면 지훈의 집으로 찾아와 지훈과 육체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은 <얼굴 없는 미녀>를 아는 관객이라면 기시감을 느끼게 만드는 설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얼굴 없는 미녀>와 판박이처럼 닮기만 했다면 이는 리메이크에 불과했을 터, <꼭두각시>는 <얼굴 없는 미녀>라는 기본적인 이야기에 두 가지를 얹어놓는다. 하나는 현진의 인격이 하나가 아니라는 설정이다. 영화 <아이덴티티>처럼 현진의 몸 안에는 현진이라는 인격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현진에게 감춰진 또 다른 인격은 팜므 파탈이다. 그녀 안에 감춰진 또 다른 인격은 현진으로 하여금 육체적인 욕망을 갈구하게끔 촉구한다. 지훈이 친구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현진을 육체적으로 탐닉하게 만드는 데에는 현진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이 한 몫 하는 셈이다.

나머지 하나는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성찰이다. 알다시피 <얼굴 없는 미녀> 이야기는 여자를 품에 안기 위해 여자를 농락하는 남자의 욕망이 빚어낸 공포담이다. <얼굴 없는 미녀>는 여자의 결정권이 남자에 의해 박탈당하는 이야기다. 최면에 걸린 여자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오직 여자를 안고 싶어 하는 한 남자의 그릇된 욕심이 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박탈한다.

여주인공 현진이 최면을 당하는 지점까지는 <얼굴 없는 미녀>의 서사를 답습한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는 것을 마냥 허용하지만은 않는다. <꼭두각시>는 <얼굴 없는 미녀>의 서사를 답습한답시고 무턱대고 모사만 하지는 않고 변용을 시도한다.

<얼굴 없는 미녀>는 여성의 결정권을 남자에게 박탈당함으로써 남자에게 여자가 종속되고 얽매이는 서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남자에게 종속되는 여자라는 서사를 전복하고 비튼다. 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이를 서사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얼굴 없는 미녀>의 플롯인, 남자에 의해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하고 피해자로 자리한다는 서사를 거부하고 여성이 최면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도리어 피해자인 현진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결정권을 되찾고, 가해자인 지훈이라는 나쁜 남자에게 복수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꼭두각시>는 <얼굴 없는 미녀>보다 적극적이고 진일보한 영화로 파악 가능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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