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지난 11일,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세훈 전 원장에게는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김용판 전 청장에게는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국가정보원 직원 김모 씨가 문재인 대선후보의 비방 댓글을 달고 있다’고 폭로하며, 최초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이 불거진 지 약 반 년 만의 일이다. ‘국정원 사건’은 경찰이 대선을 3일 앞둔 시점에 ‘여직원의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중간수사발표를 내놓으면서 그대로 종료되는 듯했다.

▲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 선거 운동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유예했다. 왼쪽 두번째는 윤석열 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 ⓒ뉴스1

하지만 이후 검찰 조사 및 진선미 의원의 폭로 등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 같은 선거 개입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의 특종 보도 역시 ‘국정원 사건’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월 31일 한겨레는 <국정원 여직원, 대선 글 안썼다더니 야당후보 비판등 91개 글 올렸다> 제하의 기사에서 김모 씨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사용한 아이디와 그가 직접 게시한 글 등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고, 후속 보도를 통해 이러한 행위가 국정원 인트라넷에 게시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말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4월 19일 연합뉴스의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단독 보도를 통해 드러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폭로 또한 파장이 컸다.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사건 수사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입해 해당 사건 수사를 축소, 은폐하고자 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사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보도였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스>는 ‘특종’을 통해 국정원 사건의 물꼬를 돌리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킨 한겨레 정환봉 기자와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를 10일, 12일 각각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정환봉 기자는 2011년 한겨레에 입사했으며, 고상민 기자는 2010년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입사 3~4년차의 기자들이 굵직한 특종 보도를 통해 사건의 흐름을 바꿔낸 것은, 중견 기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보도로 인해 한겨레 정환봉 기자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2차례 받았으며,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는 1차례 기자상을 받았다. 특히, 정환봉 기자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매달 수 차례의 단독보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두 기자 모두 강남경찰서 출입 기자로서, 지난 몇 달간 국정원 사건으로 인해 “하루 정도만 쉬는 달도 있었고”(정환봉 기자) “(출입기자단) 신년회를 이번 달에 했을 정도”(고상민 기자)로 바빴다고 전한다.

“경찰이 수사 경과 상황을 기자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고”(고상민 기자) “경찰이든 국정원이든 최소한의 사실확인 조차 해주지 않은 상황”(정환봉 기자)이라, 취재 자체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팀 차원에서 배려를 해줘, (공을 들여)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정환봉 기자) “캡이 (당장 물먹었다고 해서 혼내는 게 아니라) 믿고 기다려준 덕분”(고상민 기자)에 특종보도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수사기관이 연루된 이번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는 특히나, ‘언론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가 절실했다. 그러나, 과연 언론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을까.

한겨레 정환봉 기자는 “추가 취재, 발굴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런 부분에서는 언론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는 “국정원 사건은 기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파헤쳐야 하는 것이지만 (언론들마다) 약간 차이가 있었다”며 “더 열심히 한 건 아무래도 한겨레, 경향이 아닐까 싶다. 조중동은 소극적인 감이 있긴 했다”고 밝혔다.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는 한겨레 정환봉 기자의 <국정원 여직원, 대선 글 안썼다더니 야당후보 비판등 91개 글 올렸다> 기사에 대해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라는 탈법행위를 밝혀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말했다.

심사위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말씀 단독보도>에 대해서는 “비록 국회의원의 도움을 일부 받기는 했지만, 국정원 사내 게시판에 오른 ‘원장 지시말씀’이라는 명백한 물증을 통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여기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연루돼 있음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며 “이 보도 이후 검찰이 원 전 국정원장을 소환 조사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 또한 가점 요소가 됐다”고 평했다.

지난달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의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기사는 심사위로부터 “취재원 보호에 역점을 두면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사건의 이면을 아젠다로 설정하는 데 성공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는 “예심과 본심 논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공감대를 얻었다”며 “첫 보도는 물론 후속보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슈를 만들어가면서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및 경찰 고위층의 축소수사가 어떠한 폐해를 낳았는지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다음은 두 기자들과의 일문 일답.

한겨레 정환봉 기자

▲ 정환봉 한겨레 기자 (2011년 입사)
- 언제부터 국정원 사건을 취재하게 됐나?

지난해 12월에는 근처 라인을 돌고(출입하고) 있어서 잠깐씩만 취재했고, 본격적인 취재는 1월부터 시작했다. (12월에) 경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건이 되게 잠잠해졌던 것 같다. 그런데 (한겨레 단독보도가 나온) 1월 31일 이후부터는 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중요성도 부각됐다. 아쉬운 것은, 만약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그 상황 그대로 계속 잠잠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 취재 자체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한계를 많이 느꼈다. 경찰이든 국정원이든 (수사와 관련한) 최소한의 사실확인조차 해주지 않았다. 사실확인을 하고 취재에 들어가더라도, 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국정원의 경우, 대부분 비밀이니까 내부 제보자도 찾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국정원은 누가 어떤 근무를 하는지조차 비밀이니까. (제보자를 찾더라도) 진짜 국정원 직원인지 아닌지 신원확인부터 시작해야 했었다.

사실, 사건 자체가 경찰이나 수사기관을 통해 밝혀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제 경우에는) 별도의 외곽 취재를 통해 취재가 많이 이뤄졌다. 거의 대부분이 경찰쪽 취재라기 보다 외곽취재를 통해서 밝혀낸 것들이다. (취재가) 막힐 때,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 사안이었다.

- 큰 사건이 터져서 지난 몇 개월간 정말 바빴을 것 같다

요즘에는 사건 자체가 검찰로 넘어가서, 덜 바쁘다. 1월부터 5월까지는 정말 바빴다. 하루 정도만 쉬는 달도 있었고. 물리적으로 힘들었다기 보다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취재원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새로운 취재거리를 찾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과부하가 많이 걸렸었다. 하지만 팀에서 많이들 도와주고 그래서 큰 힘이 됐다. 국정원 사건은 당장 오늘 취재해서 내일 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는데, 배려를 해줬기 때문에 제가 (공을 들여)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 여러 건의 단독보도를 선보였다. 그 가운데 가장 취재가 힘들었던 기사는 무엇이었나?

1월 31일자 첫 단독보도가 제일 힘들었다. 그때까지는 사건 자체가 정말 조용했기 때문에, 취재를 할 경로도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과정에서 사실확인이 잘 안돼, 정말 힘들었다. (보도가 나간 이후) 경찰로부터 항의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경찰이 말해준 것도 아니었으니까.

- 여러 건의 단독보도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운이 좋았다. 설득 과정도 있었지만, 많이들 공감해 주시더라. 알고 계신 내용을 제보해준 경우도 많다.

- 특히나, 이번 사안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보나?

어려운 질문이다. 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접근할 수 있는 통로에 한계가 있고. 외곽 취재를 한다고 해도, ‘맞는 얘기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가 않았다. 기자가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증거를 압수할 수도 없으니까. 한계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사안, 문제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추가 취재, 발굴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언론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 이 사안과 관련해 ‘이 언론도 적극적으로 열심히 했다’고 평가하는 곳이 있다면?

직접 만나거나 부딪힌 적은 없는데 경향신문과 SBS가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와 글을 나눠쓴 것으로 드러난 일반인 이모씨의 고시원을 제일 먼저 찾아간 게 SBS였다. (편집자 주: SBS <8뉴스>는 2월 8일 <출국금지..'공모자' 추적> 단독 보도에서 국정원 직원 김모씨로부터 아이디를 넘겨받아 정치 관련 글을 작성한 일반인 남성 이모씨의 고시원을 직접 찾아갔다.) 한국일보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지난 2월 정 기자를 고소까지 했는데

고소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 고소를 통해 제가 취재원을 못만나게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어려워진 부분도 있긴 했지만 이후에도 취재는 잘했다.(웃음) 저는 상관이 없는데, 오유 운영자를 같이 고소해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고소를 당할 만큼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을 거라고 본다. 아직 소환통보를 받지도 않았다.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고상민 연합뉴스 기자 (2010년 입사)
- 언제부터 국정원 사건을 취재하게 됐나

취재는 (민주당의 첫 폭로가 있었던) 12월 11일 저녁부터 시작했다. 급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저녁 먹다가 달려가 꼬박 밤을 샜다. 당시 기자단 풀 간사라서 그 직원과 통화도 했다. 여직원은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댓글 달기 등 선거 개입)을 한 적이 없다, 법에 위반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어쨌든 당사자의 말이라 이를 토대로 기사를 내보냈다.

- 당시 상황에 대해 더 들려달라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민주당 관계자, 카메라 기자, 정치부 사회부 기자, 개인 블로거까지. 그날 눈이 많이 쌓여서 더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진을 치고 앉아서 하염없이 복도에서 기다렸다. 사실 수사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을 거다. 나도 위에 보고할 때 ‘이번주면 끝납니다’ 이 얘기를 10번 넘게 했다. (강남서 출입기자단) 신년회도 이번달에 했을 정도다.

- 큰 사건이 터져서 지난 몇 개월간 정말 바빴을 것 같다

혼자 강남경찰서를 담당해야 해서 조금 힘들었다. 사실 매 순간이 바빴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 수사 경과 상황을 기자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은희 과장이 (수사에 대해 말해주는) 언론 통로였는데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사실 확인도 잘 해주지 않아 ‘조용한 평화’가 유지됐다.

바빠지기 시작한 때가 1월 한겨레 단독보도가 나가고 나서였다. 이 사건에 대해 한겨레, 경향은 담당 기자를 2~3명씩 보강하면서 사활을 걸고 취재하고 있었는데, 한겨레가 외곽취재에 들어가 ‘오늘의 유머’ 관련 보도를 한 것이다. 그때부터 물을 먹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발표가 계속 미뤄졌는데, 그 와중에 국정원 다른 직원도 댓글 사건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연합 단독 보도로 나간 적이 있다. 그래도 엄청 물을 먹었다.

- <“경찰 고위층 국정원 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보도하게 된 계기는?

권은희 과장이 수사 진행할 때 기자들에게 그런 얘길 했다. ‘경찰 수사 역사상 오래 남을 만한 사건으로 보인다’고. 중간 수사 발표했을 때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 중간에 전보 발령이 났을 때도 상당히 불쾌해했던 걸로 알고 있다. 과장 임기가 2~3년 정도라 자연스런 이동이긴 하지만, 국정원 사건처럼 큰 건을 담당할 경우에는 자리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권은희 과장은 같이 일했던 팀원들이 아직 수사 중인데 개인 불만을 표시하게 되면 누가 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개인적인 친분이 따로 있진 않았다. 다만 기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초기 수사를 이끌며 연합뉴스 보도가 수사팀에 많은 힘이 됐고, 중심을 잘 잡아줘서 고마웠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늘 물먹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권은희 과장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던 것 같아서 의외였다.

권은희 과장이 결정적인 발언을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의문이 남는 부분들도 있어서 수사 은폐 압력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권 과장 요청으로 계속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4월 18일에 수사결과 발표 보도자료가 오전에 갑자기 나왔다. 국정원법은 적용하고 공직선거법은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권은희 과장은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는데, 그날 오후 전화가 왔다.

그 전화에서 권은희 과장은 1) 주요 키워드 축소 2) 김모 씨가 보는 앞에서 일일이 허락을 구해 수사 3)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될 만한 팩트는 알리지 말라는 언론 확인 대응지침 존재 등 3가지 사안을 폭로했다. 권 과장은 박스 기사로 써 보는 것을 권유했지만, 그러면 파급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캡과 상의해 스트레이트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권 과장을 설득해 A씨로 표기한 채 기사가 나갔다.

- 이 사실을 제보한 권은희 수사과장은 1보에는 익명으로 처리됐다가 종합기사에서 실명이 나왔는데. 그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인지?

그날 민주당, 서울경찰청, 국정원, 기자들까지 다 전화가 왔다. A씨가 누구냐고. 친한 기자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권은희 과장도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는 ‘A씨는 아니지만 폭로 내용은 맞다’고 말했다. 이때 몇몇 기자들이 눈치를 채고 뻗치기에 들어가서 권은희 과장이 A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당장 내일 조간에 실명이 박힐 상황이었다. 권 과장과 통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실명 기재 여부를 논의했다. 권 과장은 ‘기자 판단에 맡기겠다’고 해 그날 오후 종합 기사가 실명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 취재, 보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특히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취재원의 발언을 확보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건팀에 온 게 지난해 8월이었다. 베테랑도 아니었고. 그래서 절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권 과장이 내게 신뢰를 보여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출입기자단) 간사라 전화통화는 많이 했지만 사적 친분은 없었다. 다만 성품이 강직한 사람이라 수사 내용 가지고 장난 칠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멘트를 기사에 담을 때도 재차 확인해서 담으려고 했고, 내용도 충실히 살리려고 노력했다.

아,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더라. 연합뉴스 입사할 때 인터뷰 시험이 있었는데, 그때 인터뷰이가 마포경찰서 수사과장이었다. 당시 수사과장이 권은희 과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인연이다. 첫 여성 경정이라 인터뷰이가 됐던 것 같다. 나는 권 과장이 화장 안했던 점이 인상적이어서 ‘화장 안 하는 여자’라는 주제로 기사를 가볍게 뽑았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다른 수험생의 질문이었다. 앞으로 수사 관련해서 윗선에서 부당하게 개입하거나 지시를 하면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그때는 시험 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따로 질문도 안 했었는데 권 과장에게 그런 질문이 들어왔다는 게 새삼 놀랍더라.

- ‘서울경찰청의 국정원 사건 축소, 은폐 지시’ 보도 이후, 검찰 수사에도 진척이 있었다. 그만큼 파장이 컸는데 이번 보도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기사를 보고 나서 캡은 특종 느낌이 왔다고 했다. 확실히 파장은 있었다. 경찰 내부 진상조사도 들어갔고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고. 하지만 너무 ‘폭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은희 과장 역시 ‘관련 사실을 밝히는 것은 폭로가 아니라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줄 사안이다. 마땅히 외부에 공개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대선 전과 달리 대선 이후, 각종 의혹과 증거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계속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대선 사흘 전 밤 열한 시에 보도자료를 낸 것 자체가 개입 의혹을 의심하게 되지 않나.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면 일반 개인에게 적용하는 공직선거법 잣대보다 더 엄격해야 하는데 대선 전에는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검찰이 나중에라도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둘 다 적용해 결론을 낸 건 그나마 다행이다.

- 만약 대선 이후 연합뉴스 한겨레 등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계속 잠잠하지 않았을까

한겨레 보도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원세훈 지시 말씀 보도도 그렇고 오유 관련 기사도 그렇고. 물 먹으며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지만 캡도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저 믿고 기다려줬다. 폭로 보도도 중요했다고 본다. 경찰의 수사 축소, 은폐 의혹이 밝혀지게 된 것이니까. 사건 흐름과 같이 간 보도는 한겨레와 연합 보도들이었던 것 같다.

- 이 사안과 관련해 ‘이 언론도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곳이 있다면?

국정원 사건은 기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파헤쳐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도 약간 차이가 있었다. 더 열심히 한 건 아무래도 한겨레, 경향이 아닐까 싶다. 조중동은 소극적인 감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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