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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 스스로 게토를 쌓아야만 좀비를 차단하는 아이러니[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3.06.14 12:02

지구라는 생태계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엄연히 인간의 착각이다. 강력한 태풍과 토네이도, 혹은 지진과 해일과 같은 대자연의 재해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하여금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위층으로 착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가 잇다. 바로 바이러스다. 20세기 초반 스페인 독감은 무려 전 인류의 3%에 해당하는 목숨을 앗아갔다.

<월드워Z>는 좀비를 양산하는 바이러스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 디스토피아의 처참함을 묘사한다. 맥스 브룩스의 밀리언셀러 <세계대전Z>를 원작으로 만든 <월드워Z>는 가족을 볼모로 원치 않는 곳으로 파견되는 UN 조사관 제리(브래드 피트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제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창궐한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간신히 구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제리가 구조될 수 있던 건 제리가 UN 조사관에 근무할 당시 탁월한 성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제리와의 의리나 우정 때문에 헬기를 파견하면서까지 제리가 구조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만일 제리가 좀비가 창궐하는 원인을 찾아달라는 제안을 거부하면 제리와 그의 가족은 더 이상 항공모함 안에 있을 수 없게 된다.

   
 
항공모함은 좀비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최적의 안전망이다. 육지에 있는 좀비가 바다에 떠다니는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는 없기에 그렇다. 가족의 안전을 볼모로 원치 않는 임무를 감당해야만 하는 제리의 모험담이 <월드워Z>의 이야기를 이끈다.

좀비의 원인을 추적하는 제리의 모험담에서 눈길을 끄는 건 좀비에 감염되지 않은 국가가 북한과 이스라엘이라는 설정이다. 이스라엘이 좀비에 감염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 국경에 거대한 벽을 세움으로 좀비가 이스라엘 영토 안으로 들어오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서다. 예고편에서 수천의 좀비 떼가 벽을 넘기 위해 아우성을 치는 광경이 바로 이스라엘 외벽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이 좀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거대한 장벽은 그 옛날 자신들의 선조를 차단하기 위해 중세 사람들이 담을 쌓아버린 게토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가 지은 <인종차별의 역사>에 따르면 이집트 사제 마네토가 유태인을 일컬어 한센병 환자라고 싸잡아 비난한 것으로부터 유태인에 대한 편견은 싹트기 시작한다.

유태인에 대한 증오는 이집트 당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세 유럽에서 유럽인들이 유태인과 상종하기 싫어 유태인을 집단으로 격리하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한다. 중세 유럽인들로부터 격리당한 유태인의 게토가 현대에 들어서선 도리어 좀비를 차단하는 장벽으로 작용하니, 선조들의 세대에서 당한 서러움과 차별이라는 게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현대 이스라엘에 이르러서는 좀비로부터의 전염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장벽을 팔레스타인의 관계와 비교하여 살펴보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과거에 유태인의 선조가 유럽과 나치에게 당한 차별을 팔레스타인에게 되풀이하는 지금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과거 피해자의 위치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시추에이션이다.

이스라엘 영토의 옛 주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스라엘 영토의 외부로 격리 조치한 후 이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당한 게토라는 격리를 팔레스타인에게 되풀이하는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은, 영화 가운데서 좀비로부터의 감염을 격리하기 위해 외부에 철옹성을 쌓아놓은 유태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볼 때 중요한 건 좀비를 현대 팔레스타인의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건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을 자신들과 격리하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가 철옹성을 쌓고 격리해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현실의 누구를 좀비로 유비하여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스라엘 스스로가 주변국들로부터 혹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방벽을 쌓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영화 가운데서 좀비의 감염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쌓아놓은 방벽과 유비하여 바라볼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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