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추징금과 원전 비리 문제에 대해 현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며 과거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 시작 전 발언에서 "일각에서는 고의적, 상습적 세금 포탈 등으로 사회를 어지럽혀 왔다. 이런 행위는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하고 이제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넌센스"라며 전직 대통령 문제나 원전비리 문제 모두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온 일이며 여야 정치권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야지 새 정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책임회피를 넘어 새 정부가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지향은 무엇이든 공정하고 바르게 원칙대로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원전부터 시작해 과거부터 쌓여온 국민들의 불신을 과감하게 혁신해서, 국민들의 불신의 벽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 정부 부처, 여야 정치권 모두 힘을 합해 최선의 노력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언론계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가 비록 중소기업 중심 내수경제 중심으로의 경제체질 개선에 대한 개혁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재벌그룹 등 ‘갑’의 반칙들을 엄벌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새 정부의 의지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검찰 측의 행보에서 경제사범들에 대한 엄벌의지가 포착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실태확인 및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이 아무도 출석하지 않아 고발 조치된 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1월 14일 ‘불출석 4인방’에 대해 벌금 약식 기소를 했는데 국회 증언감정법으로 약식기소까지 되는 상황은 무척 이례적이라는 것이 기자들의 지적이다.
검찰 측이 이런 식으로 처벌 의지를 보이자 법원도 이에 화답해 아예 약식 기소도 아니고 정식재판에 회부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정식재판을 결정한 것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이므로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이 정식재판 과정에서 정지선에게 400만원, 정용진에게 700만원, 정유경에게 400만원, 신동빈에게 500만원을 차례로 구형한 상황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물론 이 정도 벌금이 재벌 총수들에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법무부의 소관에 있는 검찰이 재벌 총수들에 대해 법률상 벌금 한도의 절반 정도를 구형한 상황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은 3년 이하 징역형 혹은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지난 기사에서 지적되었듯 CJ그룹에 대한 수사도 2011년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와 비교해보면 그 속도와 강도의 측면에서 이례적이다. 예전과 달리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이재현 회장을 압수수색하고 CJ 간부들을 줄줄이 소환하는 등 수사 속도가 전광석화처럼 빨라 CJ 홍보맨들이 발도 붙이기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CJ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회사인 CJ글로벌 홀딩스 대표 신모 부사장을 구속하는 등 수사 강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에 관한 검찰수사는 CJ 건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중수부가 해체된 이후 중수부 출신 검사들이 몇 개의 부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라인에 배치된 중수부의 특수통 멤버들이 기업 수사를 주도하고 있다. 본사 영업사원의 ‘욕설 파문’으로 문제가 된 남양유업과 4대강 관련 건설업체 등도 수사 대상이다. 수사받는 4대강 관련 건설업체 중에는 현대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금융조세조사부와 증권범죄합수단 등에서 진행 중인 수사까지 합치면 30개 넘는 업체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기자들은 검찰이 짧은 시간 내에 이처럼 전방위적인 기업 수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수사가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선도 있다. 현장에서는 일선 기업들이 참여정부 시절보다 훨씬 더 긴장하고 있으며 몇몇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올해 초 경영계획 발표를 늦추면서까지 정부의 '눈치'를 봤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들은 CJ그룹 수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일 뿐 이 상황 자체를 주목하거나 비판하지는 않고 있다. 만약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면 ‘반기업정서를 지닌 좌파들이 나라를 말아먹는 짓거리를 한다’고 비평하고도 남았을 일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은 보수언론이 결코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음을 또 한 번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진보진영에 또 다른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민주정부가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을 모두 하려 했다가 탈권위적으로 시장에 권력을 넘겨준 상황을 상기한다면, 박근혜 정부처럼 검찰에 대한 행정부의 권력을 활용해 기업을 압박해 고용이나 투자를 이끌어내는 전략이 오히려 현명한 것일 수 있다.
이는 진보정부가 선출된 권력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여 무엇을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의 고려와 기획이 필요하다는 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려와 기획의 기반에는 국가권력이 시장의 폐해를 막고 경제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철학이 요구된다. 비록 박근혜 정부가 민주정부보다 기업수사를 엄정하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대통령 개인의 철지난 국가주의적 가치관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만들어내는 공익적 효과에 대해선 진보진영에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