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지난 대선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변인이었고, 대선 이후부터는 민주당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를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연일 '폭로' 수위를 높여 갔다. 국정원에서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 민주당 안행위 소속 비례대표 진선미 의원을 만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최근의 심경과 초선의원으로서의 소회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5월 30일에 진선미 의원실에서 이루어졌다.

(전편에서 계속)

미디어스(이하 '미'): 정보조직이니까 비밀유지하는 건 당연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런 만큼 검경의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상황인 것 같다. 그나마 검찰 쪽이 좀 낫다는 평을 듣는 상황 아닌가. 경찰이 삽을 푸는 이 상황을 검찰은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선미 의원(이하 '진'): 그렇다. 우리가 많이 우려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전 정권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현 정권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이 일이 있는 것 아닌가. 검찰로서는 본인들이 반대하는 검찰개혁의 방향을 주도하는 카드가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검찰이 철저하게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발본색원해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회복 조치를 취하면 믿음이 간다고 경찰을 설득했다. 그랬는데도 지체하고 잡아떼다가 검찰에 공을 고스란히 넘겨 주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어느 조직에나 건강한, 조직의 기반이 되는 인력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본다. 일선에서 누구보다 사명감 가지고 일하는 경찰, 국정원 직원, 검사, 다 있다. 그러한 자생력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자생력을 기반으로 해서 이 거대한 권력들을 어디에 분리시키고 합치거나 개편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진선미 의원 ⓒ미디어스
: 검찰의 경우 중수부 폐지 이후 여러 부서가 중수부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수사한다는 시선 있다. 법조인으로서 이런 가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 일리가 있다. 지금은 굉장히 답답한 상황 속에서 검찰이 점수를 얻는 행동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수사를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결과 발표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결과 발표를 봐야 기대에 부응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시작은 분명히 좋은 것 같다.
: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상황은 갑자기 터진 상황 아닌가. 의원님도 정치권에 입문하실 때 이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텐데 어떤 일일지 궁금하다.
: 묘하게도, 결국 하고자 했던 일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민변 출신이기도 해서. 돌아보면검찰개혁이나 경찰개혁 분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면이 있는데 그 개혁이 안 되어서 곪아 터진 상황이라 볼 수 있는 이 사건을 통해 그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권력기관이 일을 제대로 하도록 권력을 재분배하고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가 배석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에 주진우 기자 건 때문에 검찰가서 배석했더니 변호사 배석된다고 “요즘 세상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하더라. “그거 당신들이 스스로 한 거 아니거든요”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았다. (웃음) 그런 것들도 다 민변에서 헌법소원까지 해 가면서 성취한 일이다. 2003년 송두율 교수님 사건 때 처음 도입됐다. 제도적으로 보자면 끊임없이 이런 식으로 진전되어 왔다.
: 그런데 사법부 개혁을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일반인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사법부 인원들도 미국처럼 선거로 뽑는 경우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런 시도는 한국 사법 체계에 조화롭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 사실 제도적 개선안은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고 그 결과물이 오랫동안 누적돼 왔다. 그걸 선택할지 말지 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 입법 차원에서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논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겠지만 그것과 병행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의식이 바뀌려면 결국 교육이 필요한데 교육의 측면이 너무 무시된다. 행정부의 예산 개편을 보면 겉으로 실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는 인색하다. 교육의 측면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국가기관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고 싶은데 이런 부분이 너무 무시되는 느낌이 있어 답답하다. 초선 의원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켜가도록 하겠다.
: 검경 개혁 말고 다른 관심사는 없었나.
: 민주당 의원이 127명이나 되니 정해진 상임위에 맞는 일에 집중해서 성과를 내지 않겠나. 사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문화 영역 고문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입법활동을 해 보고 싶었다. 예술인복지법이 갑자기 통과되는 걸 보며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문방위가 아니라 안행위로 오게 되었으니 그 부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웃음) 물론 여기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 예전부터 개인정보, 주민등록제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을 고민하고 싶었다. 또 공직선거법 문제도 관심사다. 중앙선관위가 50주년 맞아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하는데 큰 프로젝트 아닌가. 이럴 때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도 여러 의견을 제출해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민변에서 호주제 폐지 문제에 대한 성과를 냈던 경험이 있다. 호주제 논쟁을 10여년 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호주제 없어지면 가족이 붕괴된다는 논리가 먹혀드는 것을 보았을 때다. 그것은 허위의식이다. 그런 식이라면 호주제가 유지되는 동안 가족제도가 잘 유지됐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나. 가족은 급변하는데 엉뚱한 걸 붙잡는 사람들에게 좌절했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내가 관여한 10여년만에 성과가 났다. 가족이란 게 순기능도 있지만 가정붕괴를 경험했거나 현행 가족 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형벌 같은 것이다. 일인가구가 다수를 점하는 현실에도 여전히 4인가구를 전제한 법체계가 많다. 그 법을 바꾸자고 하면 4인가구를 붕괴시키자는 의견으로 이해한다. 4인가구는 법이 붕괴시키는 것이 아닌데. (웃음) 유럽 사례처럼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라든지, 현실의 다양한 결합이 법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보호받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보완하고 싶다.
: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비하면 입법 차원의 대응이 늦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 그것은 제도란 것이 가진 본래적 한계일 수 있다. 세상에는 양면이 있다. 나는 변화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그 변화에 신중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법이 한 번 만들어지면 잘못됐다고 해도 다시 변화하는 데 오래 걸린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법을 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의원으로서 이전에 접근하지 못했던 여러 자료에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변호사 시절에 비해 이런 것을 보아서 좋다고 하는 것이 있을는지.
: 통계자료 같은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다. 외국 입법 사례도 쉽게 찾아준다. 보조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의 전문 인력들이 도와준다. 예전에는 내가 찾아야 했는데 해외에 이런 종류의 법이 있냐고 물으면 바로 정리해서 주는데 참 좋았다.(웃음) 입법조사처에 너무 감사하다. 예산문제도 궁금한 게 있으면 관련 보조기관이 있는데 거기서 조사해서 주신다. 괜찮은 시스템이다. (웃음)
: 의원 활동을 하면서 생경했거나 이전과 달랐던 경험이 있다면.
: 정치인 특유의 인간관계 스타일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빨리 친해져야 하고 거리감이 확 줄어드는데 그게 일반인들과 굉장히 다르다. 특히 의원되고 나서 곧바로 대선을 치르다 보니 선거운동 과정에서 힘들었다. 제일 어려웠던 게 스킨십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데도 언제부터 알았던 것처럼 처신해야 한다. 겉으로 아닌 척했지만 적응하기 힘들었다. 총선에서는 비례 후보라 법정선거기간 십며칠 동안 한명숙 대표를 수행하며 지원 유세에 다 따라다녔다.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광주에 가기도 하고, 하루에 25군데 돌기도 하고.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춤추는 비례' 같은 기사 뜰 정도로 춤추고 다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일 힘든 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거리감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가오는데 그걸 다 받아줘야 한다. 알고 지내면서 거리감이 줄어드는게 아니라 순식간에 친근하게 왔다가 또 굉장히 냉정하게 떠나지 않는가. 초짜로서 많이 어색했다.
또 밖에서 볼 때에는 의원들이 과연 일이나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다. (웃음) 일하는 모습이 제대로 전달 안 되거나 일 자체의 효과가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을 안 하는 의원은 아무도 없다. 너무 바쁘고 힘들다. 밖에 있을 땐 의원들이 왜 행사에 잠깐 왔다가 금방 자리를 뜨나 했는데 들어와서 보니 행사를 끝까지 지켠다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얼굴이라도 비추길 바라는 곳들이 너무 많다. 직접 행사를 만들어보니 가령 토론회라면 정책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입법까지 가게 해야 하는데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한 사람이라도 오는 게 감사하다. 잠깐이라도 왔다 가는게 도와주는 거다. 국회의원들이 정말로 일 많이 한다.
: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게 아닌가.
: 그렇다기 보다는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타나는 일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라 본댜. 내가 보기엔 일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어느 시점에 딱 맞아떨어져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산뜻한 성과를 얻거나 이슈파이팅이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일은 모두들 다 열심히 한다.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를 하는 것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게 결국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주민들이 의원이 행사에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지역구 관리 없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 마음이 그렇지 않다. 의원이 자기 행사에 나오기를 바라면서 의정활동을 잘하기를 바라는 것도 다소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비례라 다소 편한 면이 있는데 지역구 의원들이나 다른 비례의원들 보면 각자의 활동 기반이 있고 그들과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또 자신이 생각하는 법안과 정책들을 구현하고 그러면서 본회의와 상임위 활동하면서 자기 공부도 하고 (한숨) 정치적으로 큰 그림도 그려야 하고. 바쁘고 고단한 사람들이다. 변호사 시절에는 다이어트하려고 밥 안 먹은 적 있지만 (웃음) 시간 없어서 안 먹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떤 분은 광주가 지역구인데 하루에 두 번씩 광주를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의원의 하루'라고 해서. 몇 사람 의원들의 하루를 보여 주면. 물론 공개하기 어렵거나 낯부끄러운 일 있겠지만. (웃음)
: 의원 몇 분 섭외 설득만 해주신다면 찍겠다는 이들은 많을 것 같다. 당장 이 인터뷰 기사 보고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웃음)
: 많은 분들이 정치의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나부터도 들어오기 전후의 생활과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 선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정치인이 그런 거지 뭐, 때로는 사람들 불만의 배출구가 되는 거지, 누구에게 욕하고 싶은데 그 욕을 받아 주는 것도 정치인이 할 일이다라 말씀 하시지만 사실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 성격으로는 욕 먹는 게 정말 힘들다. (웃음) 담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주겠거니 생각하지만 욕 먹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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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힘들었다. 여덟 개 일정이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100배하는 일정도 있었다. 일정마다 성향이 다르지 않나. 어떤 것은 격정적으로 항의해야 하는 일정이고 어떤 것은 차분하게 대응해야 하는 일정이지 않나. 토론회에 가서도 인사하고 앉아 있고 회의하고 결정하는 것들이 산재해 있다. 그렇게 성향이 달라서, 하루에도 감정의 수위를 몇 번씩 바꿔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매 순간 거기서도 일관성 찾아야 한다.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정치인이란게, 전혀 성격 다른 일들을 하루에 몇 개씩 하면서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리듬을 맞추어서 그에 맞춰서 흔들거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걸 널리 알려주셨으면 한다.
: 다음번엔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들고 와야겠다. (웃음) 좋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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