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33세, 회사원)는 지난 토요일 저녁, 미드나 한 편 다운받아보고자 하는 생각에 포털에 요새 유행한다는 ‘토렌토’를 검색했다. 가장 위에 뜨는 사이트가 당연히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려니 하는 생각에 들어갔다. 가입신청을 했다.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입력하자 곧 ‘인증번호’가 날아왔다. 회원가입을 원하면 인증번호를 넣으라고 했다. 역시, 입력했다. 회원가입을 축하한다는 창을 채 지우기도 전에 "초특가대박이벤트 16500원 무제한 정액제 가입"이라는 문자가 왔다.

A씨는 당황했다. 16500원을 결제할 생각도 없었고, 단순한 회원가입만으로 ‘정액제’에 가입된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회원가입을 위해선 ‘약관’에 동의하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그게 곧 결제에 동의한단 의미로 활용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늦은 시간이라 해당 사이트와 결제 서비스를 대행하는 업체 그리고 통신사는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A씨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당연히 취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품을 이용할 생각도 없고, 아직 사용한 것도 아니니 당연히 ‘환불’이 될 것이고 결제를 한 자신의 의지에 거슬러 요금이 지불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제만 할 뿐, 원치 않는 결제라도 취소할 권한은 없다?

월요일 오전, A씨는 우선 결제가 진행된 사이트에 전화를 걸었다. 사이트상에 기재된 회사 소재지는 부산이었고, 전화번호 안내는 대표전화뿐 이었다.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통화자가 많다’는 안내 멘트 이후에는 계속 전화가 ‘뚝’ 끊어졌다. 10여 차례 통화에 실패한 A씨는 할 수 없이 결제 서비스를 대행한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상담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결제 취소는 결제를 진행한 업체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자신들은 결제 서비스 대행만 할 뿐, 취소 권한은 없다는 얘기가 반복됐다.

A씨는 이번에는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거대 기업이니만큼 이런 부당한 상황에 대해 해법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결제 서비스 대행업체와 마찬가지였다. ‘결제 취소는 결제를 진행한 업체에서만 가능하며,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는 얘기였다. 답답한 마음에 A씨는 그렇다면 그 업체가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은 고스란히 금액을 지불해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통신사 상담원은 “그렇다”며 “추후 결제가 되지 않도록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를 아예 차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오늘 이후 아예 핸드폰으로 결제가 이뤄지지 않도록 소액 결제 서비스 자체를 차단하는 건 가능하단 얘기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업체는 100만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자상거래상에서 모바일 결제 비중은 현재 10% 안팎이지만 수년 내에 전체 거래의 25%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이나 음원 사이트의 경우 이미 모바일 결제의 비중이 절반 가까이에 육박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확인된다.

▲ A씨는 한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가 월 16500원의 정액제 요금에 가입되었다. 회원가입이 곧 정액제 회원가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A씨는 이를 취소하려했지만, 이 사이트는 이미 지난해 11월 폐업 신고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휴대폰 결제를 대행하는 회사와 통신사는 이 사실을 알았을까?

증가는 폭발적! 관리는 뭉그적? 폐업한 사이트 결제도 문제없는 '문제 시스템'

이처럼 모바일 결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가이드라인이나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위의 A씨 사례와 같이 제대로 된 동의 절차 없이 결제가 이뤄지더라도 이를 환불받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노력과 접근이 아니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특히, A씨의 경우 결제를 진행한 사이트가 이미 작년 11월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이용한 ‘조이피아’란 사이트는 사업자 번호 ‘606-34-572**'로 등록되었다고 홈페이지에 안내하고 있지만, 이 사업자 번호는 이미 지난 해 11월 폐업 신고가 된 사업자 허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참조)

현행 법제도상 A씨가 환불을 받기 위해서는 결제를 진행한 조이피아 측에서 결제 내역을 취소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이미 폐업 신로를 한 상태이고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의 결제를 대행한 업체와 통신사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A씨의 결제를 대행한 업체는 3대 결제 대행업체 가운데 하나인 ‘인포허브’이고, A씨가 가입되어 있는 통신사는 KT이다.

이에 대해 ‘인포허브’의 관계자는 “결제 대행을 해줄 뿐, 결제 취소와 관련해서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결제를 중계한 업체의 ‘폐업 사실을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알지 못했다”며 “확인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인포허브를 비롯한 결제 대행업체들은 결제 업무를 대행해주고 결제 금액에 따른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이다. 인포허브는 ‘다음’, ‘네이버’등 주요 포털 사이트는 물론 ‘KBS', 'MBC', 'SBS' 등의 방송사 그리고 ’대한민국전자정부‘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두고 있는 업체이다. 이런 대표적인 휴대폰 결제 대행업체가 이미 폐업한 업체의 결제를 대행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 피해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고 있는 형국이다.

KT역시 마찬가지다. KT의 경우에도 휴대폰 결제 내역에 따라 건당 수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입장이다. KT에게 ‘휴대폰 결제 내역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상황에서 폐업신고를 한 업체의 결제를 대행해주면 과세 신고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현황 파악이나, 그런 부정한 방식의 거래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KT 관계자는 “원천적으로 폐업 신고가 됐을 경우에는 결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맞다”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결제솔루션 전문업체인 '인포허브'는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SBS와 MBC등 주요 언론 그리고 대한민국전자정부 등을 파트너로 둔 휴대폰 결제 전문기업이다.(인포허브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하지만 이 업체의 파트너 중에는 이미 '폐업'한 업체도 있다.

언제까지 사후적 대처만 할 것인가? 통신사의 사회적 책임은

현행, 전자상거래는 ‘조이피아’와 같은 CP(Contents Provide)사업자와 ‘인포허브’와 같은 PG(Payment Gateway)사업자와 통신사(혹은 포털)가 관여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A씨에게 발생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PG사업자의 문제다. 불량 CP사업자를 걸러야 하는 1차적인 책임인 PG사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KT와 같은 거대 기업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휴대폰 결제 금액은 KT의 요금 고지서에 합산되어서 청구되기 때문이다. 스미싱 등 전자상거래 상의 부정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때이지만 '인포허브‘는 물론 KT역시 이에 대한 뚜렷한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주무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의 담당관은 “회원가입을 하며 동시에 유료결제가 이뤄지는 상황은 넓은 의미의 ‘스미싱’이라고 봐야 하며, 이에 대한 구제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A씨의 경우 휴대폰/ARS결제 중재센터(www.spayment.org)에 신고하면 구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이런 문제의 경우 기본적으로 PG쪽의 책임이 크지만, KT와 같은 통신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며 “넓은 의미에서 스미싱 피해에 대해 통신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를 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전자결제 시스템은 사실상 문제가 발생한 이후 사후 대책 및 처벌만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무부서인 미래부 역시 신고된 사이트에 대해서만 조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회원가입 차단을 하거나 사후 법적 고발 하는 것이 대응의 전부다. 현행 모바일 결제는 ‘유무선 전화 결제 이용자 보호 협의회’라고 하는 민간 기구를 통해 자율적 가이드라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모바일 결제 추이를 감안했을 때, 보다 선제적인 대책과 법제의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매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손쉽게 올리는 통신 시장의 ‘강자’들이 이 문제에 관한 소비자 후생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자구책’을 내놓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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