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가 레너드 니모이의 유전자를 가진 건가요?" 66년도에 24세기를 배경으로 만든 미국의 SF 티비 드라마 ‘스타트렉’. 강산이 몇 번쯤은 바뀌었을 이 오래된 고전을 나는 아직 한편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내게 스타트렉은 묘하게 친근한 작품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명언을 뒤집어 나의 아이돌의 아이돌은 나 역시 섬겨야 할 그분일 테니.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셀든의 이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던 그 대단하신 분, 미스터 스팍. 그리고 레너드 니모이. 딱딱한 공학박사 쉘든의 정신적 지주였던 레너드 니모이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느냐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부하고 악수조차 거부할 정도의 세균 공포증을 가진 그의 트라우마를 한방에 무너뜨릴 정도였다.

치즈케이크팩토리의 웨이트리스 페니가 아무렇지 않게 내민 레너드 니모이의 싸인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쉘든은 급기야 "거기 케첩 같은 것이 묻었는데 미안해요. 레너드 니모이가 입을 닦은 냅킨이라."라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 빅뱅이론 최고의 명언. "그럼 지금 내 손에 레너드 니모이의 유전자가 들어있는 건가요? 이게 무슨 의민지 알아요?! 건강한 난자만 있으면 나만의 아기 니모이를 기를 수도 있다고요." 짐 파슨스를 에미상 후보로 올린 그 대단한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도대체 레너드 니모이와 스타트렉이 무엇이기에 저 목석같은 인간이 이렇게 무너져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스타트렉은 1966년도에 시작된 미국의 티비 드라마다. 커크 함장이 이끄는 우주 항해선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이 24세기의 우주 위에 그려진다. 몇 번의 시리즈물과 영화로 제작되었던 이 작품에서 ‘스타트렉;다크니스’가 맡은 영역은 티비 시리즈 스타트렉의 프리퀄이었던 2006년도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속편이다.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에 치중하는 지구인 커크와 규율을 중시하며 논리를 입에 달고 사는 발칸인 스팍이 치고받고 깨부수다 마음을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미 완성된 오리지널을 보유한 리부트인 만큼 캐릭터가 이끄는 매력은 이 영화의 팔 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흥미롭기 짝이 없다. 특히 대신해서 목숨을 걸어주겠다는 애인의 세레나데를 듣고도 "그건 논리적이지 않아"로 끊어버리는 발칸인 스팍의 무뚝뚝함은 정이 떨어질 만한데도 어쩜 그리 사랑스럽기만 하던지. 과연 쉘든이 미쳐버릴 캐릭터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거 자기랑 똑 닮아서 그렇게 좋아했구먼 싶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미스터 쉘든은 레너드 니모이의 광적인 팬이라 늘 재커리 퀸토를 나의 스팍은 이렇지 않아!라며 욕했었다)

참, 주인공 이상으로 매력적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 혀가 꼬여버릴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영국 배우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사실 스타트렉의 팬이 아닌 필자에게 쉘든과 셜록은 엔터프라이즈호를 관람하는 안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미 영국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가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할리우드 스크린 위에서 다소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의 스팍과 감성의 커크를 각개의 방식으로 조율하며 자기 입맛대로 갖고 노는 모습은 정말... 한숨이 나올 만큼 매력적이어서 나의 걱정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특히 그의 목소리는 우주가 남겨놓은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역시나 대단했다.

광활하기 짝이 없는 우주와 24세기의 미래를 표현하는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기술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다. SF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조차 조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입체적인 영상미는 논리와 감성을 완벽히 충족시켜준다. 묘하게 감수성이 느껴지는 배경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거의 인간의 손으로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다. 거대 엔터프라이즈호의 내부는 블루스크린이 아닌 실제 크기로 만든 세트를 사용해 현실감을 더해줬다.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크로노스 행성 또한 CG가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데 감독은 12km의 세트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카메라 감독이 멀리서 촬영하는 기법으로 입체감을 더했다. 24세기의 배경을 21세기의 기술력으로 담아냈지만 결국 그 기술의 정점은 인간의 손이었던 셈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스팍과 감성에 목숨을 거는 커크가 부딪히다 교화되는 과정을 보며 나는 생뚱맞게도 국내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운과 감에 치중하던 시골 형사 송강호가 이성과 논리를 맹신하는 김상경을 만나 싸우게 되지만 결국 그토록 불신하고 경멸하던 서로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며 닮아가는 모습이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작품을 연결시켰던 것이다. 그 쉘든 쿠퍼를 무너뜨리고, 준비해놓았던 모든 선물이 한 번의 포옹이 전하는 가치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24세기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역시 생명체의 교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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