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의 ‘말의 잔치’란 만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는 것으로 현실 가능성에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그가 언론인,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그의 정치적 언행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상파방송 관계자를 만나서 방송광고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고 종합편성채널 관계자를 만나서는 선거방송광고 허용을 이야기했다. 케이블방송 관계자에게는 8VSB 송출 방식 허용, KBS에 출연해 수신료 인상을 이야기 하는 등 만나는 각각의 사업자가 원하는 내용을 미리 숙지해 선심 쓰듯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에 방송·미디어계 시선이 주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말로 단박에 시선을 끌어내는 그는 역시 정치인 출신이다.

▲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19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 수신료 인상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경재 위원장은 광고 축소를 전제로 수신료를 인상하고, 별도의 기구인 수신료 산정위원회를 만들어 적정 수신료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 '일요진단' 캡처)

그의 ‘말의 잔치’와 관련해 혹자는 강화고등학교에서 유세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강화고등학교 출신으로 강화도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었다. 따라서 그가 강화고 유세 때 유권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게 뻔하다. 정치인은 공언한다며 빈말을 남발하는데 당시의 습관이 아직까지 몸에 배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없어진 유세의 강렬한 기억이라고 해두자.

재미있는 것은 그의 말의 잔치는 대부분 규제 완화인데 유독 규제 강화를 꺼내드는 분야가 있다는 점이다.

이경재 위원장은 지난 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종편 구미에 맞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허가도 받지 않고 신고만 하는 일반PP가 보도와 관련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프로그램도 진행해선 안 된다는 게 기준”이라며 “여론 형성과 정치적 영향, 선거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프로그램을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케이블TV 무면허 보도방송 일절 금지"로 중앙일보는 목적한 바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바로 유사보도 논란이다.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편 이외의 보도 행위를 엄격히 금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조선·중앙 종편이 밀어 올린 이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무면허 보도라며 엄격히 규제한다면 종편과 보도채널을 제외한 케이블방송PP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 5월 20일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종편4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방통위)

반대로 조중동 종편은 상당한 실익을 챙기는 게 된다. 누구에 대한 제재가 경쟁자에게 규제 완화 또는 특혜가 될 수 있는 게 현 방송시장의 구조다. 케이블방송 태동의 1등 공신이라고 자처하는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대놓고 종편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종편을 위해 케이블방송PP를 사지로 내몰겠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이경재 위원장과 종편이 면허, 무면허를 이야기하며 제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허가 받은 종편의 보도가 저 모양이면 저 모양을 허가한 방통위는 문 닫는 게 맞다. 무허가 보다 더 한 게 허가받은 도둑놈이라는 속설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 종편에서 5.18을 뭐라고 했더라, 그런 종편을 방통위가 허가했다.
이경재 위원장의 공언은 빈말로 그칠 공산이 크다는 데 한 표 걸겠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합의제 방통위에서 이경재 위원장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일 뿐이다. 방통위에서 그가 전권을 가지고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인사 문제를 제외하고 그다지 많지 않다.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의 생각은 의견일 뿐이다. 따라서 종편이 의견일 뿐인 그의 생각을 결정된 사실로 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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