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1.10.16 토 15: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마라![윤석진의 드라마공방전] SBS 월화드라마 <식객>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 승인 2008.06.27 11:47

세상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는? 물론 상황과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범죄가 나올 수 있지만, 바로 음식 갖고 장난치는 짓이다.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장난'이라 변명해도 음식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음식 갖고 장난친 사람은 바로 '공공의 적'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음식 경제 사범을 관대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보다 많은 교역 이익 때문에 국민의 건강권이 걸린 검역 주권을 아무렇지 않게 무역 상대국에게 넘겨준 것도 그래서였을까?

이른바 쇠고기 파동의 절정에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소재로 한 SBS 월화드라마 <식객>(박후정 극본, 최종수 연출)이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허영만 화백의 원작 만화와 전윤수 감독의 영화 <식객>으로 이미 대중적 화제의 중심에 놓여 있다가 드라마로 재창조된 <식객>이 불과 4회 방영 만에 음식의 미각과 촉각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 '순종'의 수라상을 책임졌던 대령숙수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한국 최고의 전통음식점 '운암정'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오봉주(권오중 분)'와 '공민우(원기준 분)' 그리고 '이성찬(김래원 분)'이 펼치는 치열한 후계자 경합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긴장감 넘친다.

   
  ▲ SBS 드라마 <식객> ⓒSBS  
 
<식객>은 대령숙수의 후손으로 운암정의 후계자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아가 된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준 '오숙수(최불암 분)'의 아들 오봉주를 위해 운암정을 떠난 이성찬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전통음식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다룰 드라마이다.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 이성찬이 근대화 과정에서 잊혀진, 혹은 잃어버린 전통의 맛을 찾는 과정은 음식 전문 드라마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최고의 전통음식점 운암정의 미려한 풍광과 미각을 자극하는 궁중요리의 화려한 모습, 그리고 삼인삼색(三人三色)의 요리 경합 과정에서 불거진 대립과 갈등 등 다양한 볼거리로 무장한 <식객>을 두고 일각에서는 '음식 소재 드라마의 불패 신화'라는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적 긴장감 유발을 위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단순하게 선악 대결 구도 형상화하거나 요리 경합 과정을 속전속결로 전개하는 것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 이성찬의 자연스러운 감각과 오봉주의 인위적인 기교, 오숙수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과 오봉주의 현대적인 경영 기법, 궁중요리의 화려함과 서민음식의 소박함, 최고의 전통음식점 운암정과 서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길거리 등의 대립 구도로 전개될 드라마 <식객>의 도입부가 지나치게 이성찬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회 방영분만으로 이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입부의 문제를 과감하게 지적하는 것은 "요리의 기본은 재료의 숨겨진 맛을 찾는 것이다!"라는 오숙수의 말처럼 "드라마의 기본은 등장인물과 구조의 숨겨진 맛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국 최고의 전통음식점 운암정의 조리사라면 조리사로서의 '실력' 못잖게 주방에서의 '책임감'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성찬과 공민우가 한일장관회담 만찬을 준비하던 주방에서 감정적 대립 끝에 주먹질을 하면서 싸우는 것은 운암정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사건이다.

이성찬과 공민우의 싸움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무사히 만찬을 끝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성찬보다 먼저 수석 조리사가 된 공민우가 학창 시절 이성찬의 가방을 들어주었다는 사연만으로 이들의 감정 대립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성찬과 공민우의 싸움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역할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칼을 다루는, 전쟁터와 같은 주방의 질서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운암정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 SBS 드라마 <식객> ⓒSBS  
 
이성찬이 조리사 승격 기념으로 오숙수에게서 받은 요리용 칼을 잃어버리고, 오숙수의 비서로 운암정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인 '윤주희(김소연 분)'가 이성찬에게 새로운 칼을 만들어주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서는 것, 그리고 이성찬이 남북장관회담에 참석한 북한 대표자의 입맛에 맞는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균형감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드라마의 구조가 어그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들이다.

원작 만화의 에피소드를 드라마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극적 개연성을 놓친 것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청국장찌개가 주 메뉴인 식당 집 딸로 어려서부터 청국장 냄새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가 결국 청국장의 진가를 알고 가업을 잇게 된다는 원작 만화의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 이성찬의 타고난 미각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로 재구성된다. 남북장관회담의 남한 대표는 회담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북한 대표를 운암정으로 안내한다. 운암정이 남한 최고의 전통음식점이라는 말에 북한 대표는 고향의 맛이라며 청국장찌개를 부탁하는데, 후계자 경합 중이던 오봉주와 공민우가 거물급 인사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자 이성찬이 호기롭게 나선다.

   
  ▲ SBS 드라마 <식객> ⓒSBS  
 
최선을 다 해 만든 청국장찌개가 북한 대표의 입맛에 맞지 않자 이성찬을 비롯한 운암정 구성원 모두 당황한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모두 동분서주하지만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다. 이성찬은 오숙수의 친구로 요리의 최고 경지에서 요리를 그만 둔 '자운(정진 분)'의 도움과 타고난 감각으로 운암정의 청국장이 외국인을 위해 특유의 냄새를 제거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전통적인 고유의 냄새를 간직한 청국장을 구해 마침내 북한 대표의 입맛을 찾아준다. 이 일로 인해 오숙수는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요리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며 전통의 맛과 향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청국장 고유의 냄새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이야기를 다룬 만화 에피소드가 이성찬의 타고난 미각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재구성된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운암정'의 권위가 다시 한 번 훼손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음식점에서 청국장을 잘못 띄운다거나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 했던 오숙수가 북한 대표의 입맛에 맞지 않는 청국장 문제를 몰랐다는 것은 극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다분히 이성찬의 타고난 미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칸과 칸의 예술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만화에서 개연성은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사건 전개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런만큼 원작 만화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드라마에 맞는 개연성을 확보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산천에서 채취한 우리 고유의 식재료로 만든 전통음식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모처럼 흥미로운 소재로 안방극장을 찾아온 <식객>이 <대장금>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의 전통음식에 전 세계에 알리는 드라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2008년 4월 18일 이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촛불'이 되어 어둠을 밝힌 지도 벌써 두 달째다. 그 어떤 경제적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설렁탕·곰탕·등심·갈비·곱창'처럼 부위 별로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면서 쌓아왔던 우리 고유의 쇠고기 음식 문화가 광우병 파동으로 일거에 무너져서는 곤란하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할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 입안자가 한국 전통음식의 향연이 펼쳐질 드라마 <식객>을 통해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마라!"는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안현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수현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안현우 02-734-9500 webmaster@mediaus.co.kr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1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