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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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미디어스가 '방송가 사각지대를 찾아가다'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며 만난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사각지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인 4대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스가 분석한 결과 전속 성우를 제외한 탤런트, 개그맨, 무술연기자 직군 모두 4대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연료를 제외한 수당 역시 마찬가지다. 탤런트, 무술연기자들은 수당을 받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철야수당, 식대 등이 누락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코미디언의 경우, 현실적으로 출연료를 제외한 별도 수당이 전혀 없다.

지난해 'KBS 전면 출연거부 투쟁'을 촉발시킨 출연료 미지급 문제 역시 연기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큰 요소다. 시대가 바뀌었으나, 연기자들의 처우는 60~70년대와 달라진 게 없어 촬영이 남는 시간에 대리운전 등 알바를 뛰기도 한다.

탤런트 A씨는 "연기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기본권 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한번 대박 터뜨리고 끝나는 건 '한류'가 아니지 않느냐. 한류열풍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미디언 B씨도 "한회 출연을 위해 1주일 내내 연습을 반복하지만 수당같은 것은 없다. 자기 돈 내고 밥 사먹으며 연습한 뒤, 겨우 1회분 출연료를 받아가고 있다"며 "우리도 매주 아이디어를 내는 일종의 창작 노동자인데,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부당한 대우라는 걸 당연히 느끼지만, 이거라도 해야 하니까 그만둘 수는 없다"며 "열악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보험회사,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직업을 바꾼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과연, 연기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할까. 미디어스가 만난 연기자, 업계 관계자의 요구사항을 종합해 보면 △출연계약서 정착 △외주시스템 개선 △방송사 인식개선 △노동자 인정 등으로 정리된다.

◇논란의 출연계약서, "광범위하게 적용돼야"

문화부는 '한류의 핵심 콘텐츠인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외형적 성장 대비 산업내부의 구조적 문제점 등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 필요' 등을 취지로 내걸고 2011년부터 방송출연 표준계약서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 후 15일 이내 출연료 지급 △미지급 예방을 위해 지급보증보험 가입의무 등 장치 마련 △촬영 개시 전후 계약 불이행 등에 따른 보상조치 마련 등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상반기 내에 최종안이 도출될 예정이다.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중문화예술분야 법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 마련한 이날 공청회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안 마련과 표준계약서 제정 등이 집중 논의됐다. ⓒ뉴스1

한국방송협회,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실연자협회 등은 '비현실적이고 극소수 외주사 배불리기에 불가하다'며 반기를 들고 있으나, 연기자들은 처우 개선을 위해 출연계약서가 광범위하게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권고사항'일 뿐이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으나, 장기적으로는 처우 개선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방송협회 등의 입장을 놓고 '극소수 방송사들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외주시스템 개선해 부실외주사 걸러내야"

드라마 외주제작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촉발된 '출연료 미지급' 사태 등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외주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자본력, 제작경험 등을 사전에 검증해 부실 외주사를 걸러내는 등 시스템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출연료 미지급 등의 문제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태득 한국방송연기자노조 무술연기자지부장은 "출연료 미지급은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출연료를 지급하던 시기에는 없었던 문제다. 외주사 체제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부실외주사가 출연료를 떼먹고 잠적해도 연기자들은 속수무책"이라며 "책임 소재가 애매해 지면서, 출연료 미지급이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갑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정책위의장은 2일 '대중문화예술분야 법제도 개선 공청회'에 참석해 "외주사가 제작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재원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외주제작 편성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이를 전면 시행하면 간단히 해결된다"며 "실질적으로 제작을 총괄 지휘하는 연출감독 권한이 외주제작 본래의 취지에 맞게 외주사에게 부여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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