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취임 1주년도 훌쩍 지났고, 지금 특별히 박원순 서울시장을 주목해야 하는 특별한 계기적 사건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 아니면 그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 시들할 때나 비로소 행정을 말할 수 있는 것이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가 뜨거워질수록 박원순에 대한 관심은 진영에 따라 확연히 갈릴 것이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한국 정치에서 서울시장은 언제나 그런 자리였고, 특히나 야권이 지리멸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은 벌써부터 감지된다. 그를 '종북좌파'라고 몰아세우며,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국정원의 문건은 그에 대한 반대 진영의 긴장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더 큰 정치적 소용돌이가 닥치기 전에 차분하게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와 그의 시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변화의 양상들을 주목하고 의미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아직 설왕설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인 박원순의 체급을 가장 정확히 계량해볼 수 있는 과정일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행정가로서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그의 시정을 짚고 이를 통해 정치인 박원순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직 낯선 정치인 박원순을 탐구해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트위터를 하면 서울시 공무원들은 긴장한다. 박 시장은 거침없이 어떤 문제들의 개선을 약속하고, 오고가는 맨션 속엔 즉각적인 검토 응답이 난무한다. 이 생경한 광경에 사람들은 대체로 환호한다. SNS에서 시장과 시민들이 직접 대화한 내용이 그대로 ‘행정’의 대상이 되는 직접적 소통 구조에서 당연히 공무원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건 어쩜 ‘정무’(政務)적 권력행위가 배제된 그야말로 ‘공무’(公務)적인 행정의 느닷없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다. 행정의 변화는 원래 느린 것이다. 원래 느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느릴 수밖에 없단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당연히 그 느린 속도에 길들여져 있다. 행정은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세계관을 이상으로 삼는(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늘 가장 넓은 수혜 대상을 찾아내려 하고, 가장 적합한 방법론의 마련이 권장된다. 이 공리주의적 이상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행정의 속도를 제어하는 수단이자 행정의 무능을 위장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수혜가 넓고 깊어야 한단 강박이 공무원을 경직성을 나무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상적 속도를 넘어서는 행정의 변화는 공리가 아닌 다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곤 한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그래서 열띤 환호와 조용하지만 거대한 비판의 사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박 시장은 취임 후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끌어내렸고, 지하철 9호선의 폭주에 제동을 걸었으며, 난제 중에 난제이던 은평 뉴타운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 용산 개발에선 미련 없이 손을 떼기도 했다. 그리곤 서울시 전체의 방향을 ‘사회적 경제’로 끌고 가겠단 포부를 밝히며 재선 도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아직 박원순을 다 이해하지 못 했다

그렇다면 ‘박원순 같은 시장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환호들에 대해 정작 서울시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박원순의 서울시정은 전체 공직사회와 한국사회의 행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산하기관장은 “박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들은 아직 박원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일자리 창출 관련 회의에서 박 시장이 “직업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던 상황을 들었다. 시장 주재로 일자리 관련 회의가 열렸는데, 주무 국장이 박 시장 취임 이후 늘어난 일자리 개수를 숫자로 보고했다고 한다. 이런 국장에게 박 시장은 “현장에는 가 보았느냐”고 되물은 후 “책상에서 만들어진 숫자는 의미가 없으며 난 믿지도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한다. 이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자리는 의미가 없으며, 책상에서 작성된 숫자 역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며 양보단 질을 부처의 성과보다는 구직자의 만족도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의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 지난달 3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아가는 자치구 부구청장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일자리가 몇 개 늘어났고, 이는 전년 대비 얼마의 진작이고 어떤 성과인지를 ‘포장’하는 것을 일로 하는 공무원들에게 ‘숫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박 시장은 이해 불가능한 대상이다. 직업에 대한 관념을 바꾸라는 철학적 주문 역시 보수적 공직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급진’적인 주문이다. 이에 대해 한 서울시 공무원은 “한 마디로 정량 평가가 아닌 정성 평가의 행정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단 문제가 있고, 주관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시정에서 그런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단 점이 어렵다”고 말했다.

박 시장에 대한 서울시 공무원들의 반응은 그래서 확연히 엇갈린다. 과장급 이하에선 박 시장 이후 서울시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한 지지가 있다고 하고, 간부급에선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 평가다. 박 시장의 소탈하고 탈권위적 모습을 하위직 공무원들은 좋아하지만, 시민단체 시절부터 엄청난 ‘워커홀릭’이라고 평가되던 박 시장의 추진력을 국장급 이상들은 버거워한단 지적이다.

정량 평가의 행정을 정성 평가의 행정으로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진 서울시정 10년의 세월은 전형적이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정량 평가가 지배해온 세월이었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이명박 시장은 시정의 모든 것을 ‘계량화’하려는 모습으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시정은 그야말로 ‘건설의 현장’이었고, 다른 어떤 시정보다 ‘청계천’이 중요한 대상이 됐다. 결국, 뭔가를 가시화하고 보여주는 그의 행정은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었지만, 뉴타운을 비롯해 토건적 행정의 상처를 서울 곳곳에 남겼다. 오세훈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자인 서울’이라고 하는 그의 모토는 그 자체로 정량적 기준이었다. 보여 지는 모든 것에 대해 시가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대로 행정을 규격화해가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크게는 한강의 모습에서부터 작게는 간판까지 정량적 기준이 만들어졌다.

이명박-오세훈 시정은 물론 두 시장의 특별함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그런 특별함의 토대는 역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것을 요구하고 용인하고 수용했단 점에 있을 것이다. 이명박 시장은 서울의 마지막 투기 욕구를 탈탈 털어내 ‘뉴타운’과 ‘청계천’으로 재해석해냈으며, 오세훈 시장은 생활의 업그레이드 욕망을 ‘디자인’으로 포착해냈다. 그러나 그 환상과 거품이 꺼지자 서울은 황폐한 민낯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컴퓨터 불도저’라고 칭했던 이명박 시정의 토건과 개발은 지금 연착륙할 곳조차 완전히 물에 잠겨 버려 허공을 배회하고 있는 비행기 같은 모습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도 민망한 추락할 곳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보수 정치인 중에 가장 미래가 촉망된단 평가 속에서 ‘디자인’을 쫓던 오세훈 시장은 아이들 밥 먹이는 본질적 문제가 등장하자 초라한 정치적 실력을 보여주곤 정치의 무대에서 아예 ‘강퇴’되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2013 서울시 여대생 일자리 박람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원순 시장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업고 등장했다. 그를 안철수의 양보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은 그래서 이제 매우 제한적인 해석이다. 서울시장 박원순의 지난 시정은 그가 이전 시대의 염증을 개선하기 위해 선택지였단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시정 역시 정확하게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는데, 박 시장은 전임 시장들의 ‘독선’과 ‘독주’에서 탈피해 ‘소통’과 ‘반응’을 중시하는 행정의 체질 개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량적 평가에 길들여진 서울시의 풍토를 정성적 판단으로 바꾸는데 주안점을 두는 모습이다.

‘총론’이 없는 박원순의 개혁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행정엔 뚜렷한 ‘총론’이 없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을 비롯해 진보건 보수건 개혁을 추구했던 모든 이들은 우선 개혁의 총론을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몇몇 걸출한 보고서는 지금 들여다봐도 꽤 잘 만들어진 ‘마스터플랜’고, 박근혜 정부의 ‘공약집’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총론을 만들고 나면 역량이 소진되거나 아니면 시간이 훌쩍 가버려 정작 실제적인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패턴이었다. 진보적 개혁의 경우 총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본질적인 이념 대립이 본질을 삼키는 상황이 잦았다. 보수적 개혁의 경우 총론과 실재적 존재 사이의 괴리로 늘 실패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요약되는 박근혜 정부의 개혁 역시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모두 내펭개쳐진 상황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서일까. 박 시장은 총론 없이 바로 현장에 스며드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큰 변화를 예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계속 축적해가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짚어보면, 박 시장이 지금까지 해낸 일들은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걸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문제들을 풀어낸 것이 많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 역시 모두 그런 성격인데, 시립대 반값 등록금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선도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지하철 9호선의 문제는 민간 투자 사업의 불평등한 관행에 행정이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은평 뉴타운 문제 역시 고질적인 미분양 상황을 ‘부동산 경기’가 아닌 ‘주택 거주’의 문제로 관점을 바꿔 놀라운 정도로 신속하게 상황을 해소해낸 것이었다. 용산에서 손을 띄는 판단 역시 ‘개발 대마를 죽이진 않는다’는 기존의 행정 관념을 사뿐히 뒤집는 결단력이었다.

그래서 박원순의 개혁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타파하는데 오히려 본질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과제를 이행했단 것보다는 행정 그 자체를 혁신해가는 것이 주력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의 행정에 새로움은 없다. 다만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던 고질적인 문제들을 손을 대고 있을 뿐이다. 기존의 행정과 다른 점은 시민들의 요구와 직접 당사자들의 주장에 시가 ‘반응’을 내놓고 있단 점”이라며 “주도하는 개혁이 아닌 스며드는 개혁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서울시청 라운지에서 열린 '서울댄스프로젝트 춤바람 선포식'에 참석해 시민들과 춤을 추고 있다 ⓒ뉴스1

가장 비정치적인 정치를 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인

박 시장이 해결한 일들은 원래 그것의 해결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과정적으로 접근하다보니 합리적으로 그런 결론이 도출된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박 시장에겐 아직 이명박의 ‘청계천’이나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와 같은 대표적 인지 행정이 없지만 그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굳은 믿음으로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물론 엇갈린다. 하지만 박 시장의 서울시장의 위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단 비판은 지극히 정치적인 비판일 뿐이다. 박 시장이 수차례 서울시장을 정치적 행보의 경유지가 아닌 그 자체의 수행을 완결적 목표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비판은 역설적으로 서울시장이란 자리를 주변화 시키는 시각이다.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는 박 시장의 비전은 이제 ‘사회적 경제’, ‘마을’ 그리고 ‘청년’으로 향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이를 두루 ‘서울 혁신’이라고 부르며 별도의 산하기관들을 통해 추진해가고 있다. 박원순의 지향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관들은 여전히도 그리고 공교롭게도 또한 ‘행정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박원순 시정의 궁극은 ‘컨텐츠’가 아니라 ‘프로세스’,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어야 한단 지적이다. 시장의 의지와 전문가 몇몇이 결정해 시행되는 행정이 아니라 현장의 이해와 당사자의 요구를 듣고 이에 대한 반응이 나오는 행정의 관습과 풍토가 더 확고해져야 한단 지적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박 시장의 개인적 경험이나 사회적 이력이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에 최적화되었다고 할 정도로 맞춤형이란 점이다. 짧은 시정이었지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박 시장은 이를 충분히 증명해냈고 또 분명한 성과도 냈다. 박원순 시장은 기관장들에게 “전략적 과제 몇 가지만 해결해서는 절대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변화를 장기간 축적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박 시장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정치적인 정치'를 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인'일지 모른다. 가장 강력한 정치력은 언제나 시대의 정치적 요구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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