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앙일보 같이 국민들이 많이 보는 신문에서 보도해줘야 하는데 한 번도 안 다뤄줬다. 중앙 신문은 아예 오지도 않아서 밀양 시민조차 보상문제로 알고 있다."

▲ 한전이 밀양지역 765kV 송전탑 공사를 닷새째 이어간 24일 오전 밀양 단장면 바드리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주민들이 굴삭기 그늘 아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 A씨가 '밀양 고압 송전선로 건설 갈등에 대한 일간지 보도분석'을 위해 밀양을 찾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팀과의 심층면접에서 말한 내용이다. 윤순진 교수팀이 만난 주민 12명 가운데 8명은 '중앙 언론의 무관심'을 언론 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으며, △피상적 단편적 보도에 따른 심층성 부족(5명) △편파보도와 사실왜곡 등 공정성 부족(4명)이 그 뒤를 이었다.

윤순진 교수팀은 <밀양 고압 송전선로 건설 갈등에 대한 일간지 보도분석: 환경정의 관점에서> 논문에서 심층 면접 결과 "주민들은 언론이 '환경정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기는커녕 제대로 사회적 의제로 다루지 않은 것을 문제삼았다"며 "그 결과 이 사안이 사회적 관심과 시선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며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논문은 내달 1일 학술지 <경제와 사회>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조선일보, 2006년~2012년 10월까지 보도 '0건'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갈등은 8년째 계속되고 있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시점은 정부가 2007년 11월 756㎸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승인하고 사업을 본격화한 2008년 7월부터다. 한전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와 경남 창녕을 잇는 90.5km 구간 송전설비(765㎸급·161개 송전탑)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2008년부터 밀양 주민들의 반대로 4개면 52개의 송전탑 건설이 중단된 것이다.

작년 1월 16일에는 주민 이치우(74)씨가 생존권과 재산권 보장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하는 극단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와 한전은 주민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력난'을 이유로 지난 20일부터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 부상 주민이 속출하고 있다. 공사 재개 후 다친 주민만 18명(27일 기준)에 이른다.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재산권 침해 △전자파 등 위해성 △자연환경 훼손 △불투명한 사업절차 △불평등한 전력체제 등이며, 이들은 송전탑 대신 땅 밑으로 선로를 까는 방안을 찾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한전 측의 보상 제안에 대해서는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싸우게 만드는 돈'이라며 거절한 상황이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저조하다. 윤순진 교수팀이 밀양, 창녕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한 2006년 3월 27일부터 한전-주민대책위가 대화를 재개한 2012년 10월 10일까지 전국단위종합일간지 9개(경향ㆍ국민ㆍ동아ㆍ문화ㆍ서울ㆍ조선ㆍ중앙ㆍ한겨레ㆍ한국)와 경남 지역 일간지 2개(경남도민ㆍ부산)를 분석한 결과 최대 구독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는 아예 한 건의 기사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2건), 동아일보(5건) 등 다른 보수 일간지도 마찬가지다. 한겨레(26건)와 경향신문(13건) 등 진보 성향의 일간지와 부산일보(71건)와 경남도민일보(153건) 등 지역 일간지들은 보수 일간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보도를 내놓았다.

논문은 이를 놓고, "다수의 중앙일간지, 특히 보수지가 이 문제를 기사화하는 데 인색했다는 사실은 언론의 무관심을 넘어 언론이 선택적으로 이 사안을 배제하거나 축소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KBS와 MBC가 보도 빈도나 보도 시간, 보도의 시간 배치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환경정의' 아닌 '경제보상' '분신폭력' 부각

또, 보수 일간지들은 '환경 정의'의 측면에서 이 사안을 다루기 보다 '경제보상'이나 '분신폭력'과 같은 갈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주로 부각시켰다. 반면 한겨레, 경향신문, 부산일보, 경남도민일보 등은 보수 일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 정의'의 관점이 강하게 반영됐다.

논문은 "진보 성향의 중앙 신문은 에너지체제가 야기하는 환경훼손과 건강영향, 환경편익과 위험의 균등한 분배를 강조하는 실질적, 분배적 정의에 초점을 맞췄다"며 "반면 지역 일간지는 송전선로 갈등에서 빚어진 불투명한 절차의 부당성과 한전의 일방적인 사업추진을 주요 문제로 삼는 절차적 정의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갈등 관련 기사가 '지역면'에 주로 배치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분석 기간, 동아일보와 국민일보는 기사 전체가 지역 면에 게재됐으며 경향신문은 기사의 절반 이상, 한겨레신문은 40% 가까운 기사가 지역 면에 배치됐다. 중앙일보(2건), 서울신문(2건), 문화일보(1건) 등은 분석 대상 기사 모두가 전국에서 볼 수 있는 지면에 배치됐으나, 기사 수 자체가 저조해 전국적인 사안으로 이 문제를 충실히 다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은 "수도권 지역의 경우 자신들이 소비하는 전력의 40% 이상이, 서울의 경우 소비전력의 97% 가량이 외부 지역에서 송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사 보도는 다수의 전력 소비자들이 중앙 집중적인 전력체계의 환경불의 측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5월 22일자 조선일보 사설

<미디어스>가 윤순진 교수팀의 분석 기간 이후인 2012년 10월 11일부터 오늘(28일)까지 일간지들의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역시 대동소이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5건, 중앙일보는 2건의 기사만 보도했을 뿐이며 내용에서도 '경제보상' 등이 주로 강조됐다. 조선일보는 22일자 사설 <밀양 송전선, '제주 해군기지' 꼴 만들지 말라>에서 "정부는 그런(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가능하면 더 넉넉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5일자 <마을 절반 찬성에도… 밀양 송전탑 공사 최종담판 결렬> 기사에서 "밀양 지역 보상안에 대한 '떼법' 논란도 고민거리"라며 "이미 송전탑을 건설한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버티면 더 나오는 게 아니냐. 먼저 합의해 준 사람만 바보 된다'는 항의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논문은 "송전선로 건설 갈등은 단순히 지역의 비선호시설 입지 반대가 아니라 환경 불의를 야기하는 국가 에너지 체제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문제가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 문제로 확장되지 않은 것은 구독률 높은 중앙 보수지가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환경 정의'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사회 여론을 환기하면서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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