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촛불시위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의 개헌 총공세가 시작됐다. 개헌 주장이나 논의가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특정 정파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거론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여야 정치권 모두가 이에 매달린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 자신감을 가져서인지 원내 과반수를 장악한 한나라당 국회의장 내정자인 김형오 의원은 ‘연구’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개헌안 제출과 처리 시한까지 못 박으며 단단히 밀어붙일 태세다. 2010년 6월 전까지 개헌을 끝내겠단다. 여야 모든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모임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 ‘촛불혁명의 87년 판’이라 할 수 있는 ‘6·10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한 1987년 헌법을 개악하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결국 촛불시위에 나왔거나 촛불시위를 안방에서 지지했던 서민, 대중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큰 일 났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에 도사린 함정과 위험성을 몇차례 나누어 파헤친다. 촛불들이여, 헌법 119조 2항을 사수하자! <편집자 주>

역사의 아이러니!

촛불혁명과 취지에 역행하는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와 배신?

1987년 6·10 민중항쟁 21주년을 맞아, 'Web 2.0에 기반한 세계최초의 직접민주주의 혁명‘으로 불릴만한 ’2008년 1백만 촛불대행진’의 열기와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6월 11일 국회에서는 여야와 무소속 국회의원 70명이 모여 헌법에 관한 연구모임을 발족하고, 사실상 개헌 작업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는 한나라당의 이주영 의원(마산 갑), 통합민주당의 이낙연 의원(전남 함평·영광·장성), 자유선진당의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 등 세 사람이 맡았다. 세 정당 소속 의원 외에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의원,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과 무소속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변호사, 비례대표)까지 참여하고 있다.

회원은 꾸준히 늘어나 발족한 지 2주일도 안된 6월 23일 현재 84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54명으로 전체의 64%을 차지하고, 뒤이어 통합민주당이 13명으로 전체의 15.5%, 자유선진당이 8명으로 9.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참여하고 있는 국회의원 숫자와 회원의 면면도 장난이 아니지만, 이 모임의 개헌추진 일정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라는 명칭과는 달리,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개헌안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통신 www.ytongsin.com 제67호, 2008년 6월 23일자; 주간조선 2011호 2008년 6월30일자 참조)

단순한 헌법 연구회 아닌, 사실상의 개헌 작업반?

이미 지난 16일 ‘연구회’는 국회 의원회관 125호실에서 첫 세미나를 열고 의원내각제를 검토한 바 있고, 23일에는 대통령제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발 빠른 작업이다. 이름이 연구회지 단순한 연구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 추진 일정>
2008년 6월 16일 : 제1회 세미나, ‘한국에서의 의원내각제’
6월 23일 : 제2회 세미나, 대통령 중임제
7월 16일 : 창립기념식 및 제3회 세미나, 정부형태 관련
7월 22일 : 제4회 세미나, 기본권 관련
8월 26일 : 대통령제 개헌 충청권 토론회
8월 27일 : 의원내각제 개헌 호남권 토론회
8월 28일 : 이원집정부제 영남권 토론회
9월 초 :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 TV 토론회
9월-11월 : 개헌 국민 여론조사
12월 : 헌법개정안 단일 초안 마련
2009년 상반기 : 헌법개정안 국회 제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촛불집회를 통해 아줌마 부대를 포함한 참석자들의 집중 공격으로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주간조선(2011호)이 <다시 改憲을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표지이야기(커버스토리)로 집중적으로 개헌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주간조선은 이 특집에서 개헌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는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역시 조선일보가 실질적으로 발행하는 월간조선(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후보자로 지난 6월 2일 내정한 김형오 의원(부산 영도, 61세)은 2010년 6월 전에 개헌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국회의장이 되면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과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형오 의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헌이고 하나는 국회 운영제도 개선 작업”이라고 대답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 2010년 상반기까지 개헌 완료 의지 확고

김 의원은 이어 자신이 국회의장이 되면, “의장 직속으로 개헌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연구작업을 바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 의원은 “‘1987년 체제’를 바꿀 때가 왔다. 1987년 헌법 개정은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하고, 장기집권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업적을 이뤘지만, 이제 21세기를 맞아 통일, 인권, 사회, 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국가의 기본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구조와 관련, 김 의원 자신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반대하며, “내각제나 이원 집정부제, 대통령제를 하더라도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해 권력을 분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시한과 관련해서는, 김의원 자신이 의장으로 있는 18대 국회 전반기 2년이 적기라고 주장했다. “18대 후반기가 되면 대선 주자들이 나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각 주자간 이해관계가 얽혀 개헌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충분한 전문가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해 내년 중에 개헌안을 내놓을 생각”이라고 김 의원은 덧붙였다.

그러나 연구회 공동대표 중의 한 사람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김형오 의장보다 한 술 더 떠, 2010년 지방선거 전인 내년(2009년) 연말까지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과 정치문제를 주로 다루는 주간 여의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주영 의원은 “개헌의 적기는 18대 국회 초반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중임제로 바꾸는 한 조항만 고친다는 뜻)을 제안했을 때 6개 정당 원내대표가 모여 18대 국회에서 개헌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며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내년) 6월 임시국회라고 본다. 임시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7월에 국민투표를 시행해 개헌을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18대 국회 원구성도 하기 전에 여야 모든 정당 소속 의원 개헌 작업에 몰두

놀라운 것은 5월 30일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 가는 데도 여야 정당들이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인선을 포함한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사실상의 개헌 작업을 담당할 모임을 만드는 데는 의기투합(?) 했다는 사실이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들의 면면과 지역구, 그리고 ‘연구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권역별토론회 계획과 주제를 보면, 흥미롭다기 보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연구회와 여야 주요 참석자들이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는 권력구조의 윤곽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조선에 따르면, 대통령제 권력구조에 관한 지역 토론회는 8월 26일 충청도에서, 다음날인 27일에는 호남권에서 의원내각제 토론회를, 그리고 그 다음날은 영남권에서 이원집정부제를 주제로 각각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일사천리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 미래한국헌법연구회 명단

기자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지만, 충청권에서 대통령제 권력구조 토론회를 갖겠다는 것은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배한 뒤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으로 복귀해 대선 3수를 노리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충청도 출신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권역별 권력구조 토론회 계획도 정치적 의도 엿보여

또한, 호남지역에서 의원내각제 권력구조 토론회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다시 말해,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이후 뚜렷한 유력 대선 후보군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호남지역 정치인과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할 경우 결속력이 강한 호남 지지를 기반으로 내각제 정부에 참여하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의원내각제라는 권력구조의 특성상 어느 특정세력이 단독으로 집권이 불가능해도 연정이나 ‘캐스팅 보트’ 등의 행사를 통해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앞서 말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통합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3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 7명이 호남지역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영남권에서 이원집정부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영남 출신인데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말도 안되는 'TK(대구·경북) 푸대접 론' 등으로 인해 다음 선거에서 TK와 ‘PK(부산·경남)’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따라서 영남권 주자들이 5년 뒤 집권하기 위해서는 이원집정부제에 따른 권력분점 구도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개헌에 집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야당의원들까지 가세한 것은 의아스럽다. 야당의원들이 여당의 들러리 서는 것인지, 모종의 물밑 합의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고,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이 여야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이토록 일사분란하고 용감하게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자신있게’ 개헌을 추진하도록 만들었을까?

우선, 얼핏 보면, 각 정파가 예측을 불허하는 5년 뒤를 생각해 어렵고 힘든 길보다 상대적으로 쉽고 편안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촛불집회 진정성과 취지에 역행하는 정치권의 기도 저지해야

두 번째는 40일 이상 계속되고 있는 촛불시위를 통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촛불시위 혹은 촛불혁명 자체가 국회와 정당 등 기성 제도 정치권의 사실상의 식물상태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과, 앞으로 촛불시위가 어떻게 발전할이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기자는 어떤 형태의 개헌논의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현재 기존 제도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절대다수 서민 대중과 촛불시위에 나왔거나 촛불시위를 안방에서 지지했던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왜?

개헌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개헌론자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직선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5년 단임제 등 권력구조의 변경뿐만 아니라 재벌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그들과 한 통속인 한나라당 등이 호시탐탐 없애려고 노력해 온 헌법 119조 2항 삭제를 비롯하여 경제관련 조항 전반을 재벌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악하려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헌법 119조 2항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왜 이 조항이 중요한가?

다음 주제는 “헌법 119조2항 사수, 왜 중요한가 : 김종인 의원의 예언과 삼성의 위헌소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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