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 1편부터 쭉 극장에서 봤었지만 이다지도 장수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분노의 질주는 자동차 액션의 <007>까지는 아니더라도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쏘우>를 노리는 단계까지 다다랐습니다. 지금까지 오는 데는 난관도 분명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건 3편에서 느닷없이 도쿄로 건너가 드리프트에 매달리면서 1, 2편의 성격을 크게 벗어났던 것이 컸습니다. 설상가상 폴 워커까지 빠지면서 거의 외전에 가까운 영화가 됐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만든 인물이 바로 지금의 감독인 저스틴 린이었고, 부활시켜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까지 이끈 인물도 저스틴 린입니다. 4편에서 복귀한 빈 디젤의 공로는 말할 것도 없죠. 이들이 여전하고 5편에서 합세했던 드웨인 존슨 등이 자리를 지킨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을 만났습니다.

우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시작합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어디까지나 마초의 본성을 모조리 자극할 요소와 목적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따라서 테스토스테론의 함유량이 많은 남성일수록 열광하기 마련이죠. 과장을 조금 보태서 신이 금속체로 만든 사물에 사족을 못 쓰도록 하는 장치를 내장한 종족이 남성입니다. 원래부터 남성은 그런 기질을 타고 나는 것 같지 않나요? 애나 어른이나 자동차, 전자기기, 군사무기 등에 대체로 관심을 가지는 편입니다. 여성들이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에 열광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양쪽 다 절대성은 없습니다만, 이것에 근거하여 보자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남성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화로 제격입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 대한 기대는 전편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 일찌감치 격발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레티가 돌아올 것임을 예고하면서 끝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4편인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은 빈 디젤이 복귀하고 분노의 질주 버전의 드림팀이자 <오션스 일레븐>으로 제작해 시리즈를 되살렸으나, 하필 홀로 남성성에 맞서 강인한 여성성을 드러냈던 레티가 사망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에 대한 팬의 염원을 알았는지 저스틴 린은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 레티가 복귀한다는 것을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도미닉의 일원이 아니라 악당에 가담한 채로 돌아온다는 설정을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진부하지만 갈등을 유발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 큰돈을 손에 넣은 도미닉과 브라이언 등은 지명수배를 피해 한적한 마을에서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도미닉은 엘레네와 여가를 보내고 브라이언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홉스가 나타나 제안을 합니다. 군사무기를 골라서 털어가는 일당을 잡는 걸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도미닉은 단번에 거절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바꾸고 맙니다. 그 사진 속에 있던 인물은 바로 레티였습니다. 이에 또 다시 각지에 흩어졌던 친구들이 죄다 뭉쳐서 런던으로 향하고, 마침내 도미닉은 레티와 조우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깊은 애정을 간직한 도미닉은 사건의 해결과 레티의 복귀를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은 오프닝부터 영화가 어떻게 변하고 무엇을 추구할지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전편에서 브라이언이 미아와의 연애로 말랑말랑해진 것이 못내 맘에 걸렸는데, 시작부터 나타나는 일종의 복선을 보면서 조바심을 가지게 됐죠. 다행스럽게도 이건 기우였습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은 시종일관 아드레날린이 폭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 실망했던 탓인지 이번에는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에 버금갈 정도로 화끈하고 거침없는 액션으로 일관합니다. 이번에는 자동차 액션과 더불어 육탄전과 총격전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 역력합니다. 드웨인 존슨을 영입한 효과로 치자면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이 전편보다 더 두드러지는 셈이죠.

특히 저스틴 린의 연출력은 이젠 정점에 다다랐다는 감탄을 내뱉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실은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를 볼 때만 해도 대체 어떤 X이 이리도 만신창이 영화로 전락시켰는지 분노했는데,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에서 일취월장한 것을 보면서 크게 놀랬습니다. 전편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는 촬영과정이 궁금하다고 했던 장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는 그것에 못지않은 액션을 두 차례나 유감없이 선사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스틴 린은 어떤 액션을 고안하고 그걸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도로를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탱크에다가 대형 수송선까지 도입한 시도에 따른 결과를 훌륭하게 제시했습니다. 심지어 유머감각도 한층 발전했습니다. 간간이 황당한 대목도 없지 않으나, 이런 걸 관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영화의 재미에 달렸습니다. 한번 몰입하면 이야기의 부실함도 잊은 채로 푹 빠지게 만들 수 있거든요.

방금 이야기가 부실하다고 했던 건 전면에서 표방했던 가족주의를 가리킨 것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차고 넘치는 소재를 굳이 이 시리즈에까지 유입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녹아들었다고 보기도 힘들고요. 하지만 3편인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와의 연계성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사실 전 4편을 보면서부터 대체 3편과는 어떻게 이을지, 혹은 이을 의도가 있기는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 완전한 문장으로 들려주더군요. 애초부터 갖고 있던 복안은 결코 아니겠으나,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바통을 넘겼습니다. 당연히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를 먼저 관람하고 극장에 가면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겁니다!

★★★★☆

덧 1) 지나 카라노가 제법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더군다나 미쉘 로드리게스와 대결 구도를 이뤄서 더 흥미진진합니다. 둘의 격투는 <헤이와이어>에서 마이클 패스벤더와 보여줬던 액션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살벌해요!

덧 2) 마지막에 무지 반가운 인물이 별안간 나타납니다. 그것만으로도 7편에 대한 기대는 업! 다만 감독이 저스틴 린에서 제임스 왕으로 바뀐 건 불안요소입니다. 드웨인 존슨도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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