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노골적인 두괄식 구성으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시사회로 보고 왔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재미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재미있는 수준이 아니라 몹시 매우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전편을 보신 분이라면 분명 더 좋아하실 겁니다. 전편을 안 보셨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저랑 같이 본 띠동갑의 여성은 스타트렉을 알기는커녕 SF 영화는 질색이라고 했는데, 결단코 과장이 아니라 극장을 나오는 길에 수도 없이 "우와~ 진짜 재미있어요!!! 친구들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저 역시도 보는 내내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 정도의 전율마저 느꼈으나 감히 저 친구가 가진 경이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왕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려거든 반드시 아이맥스로 보세요. 저는 시사회로 보는 특권을 노린 주제에 3D라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맥스를 본 만족도는 2D가 월등했거든요. 직전에 본 <아이언맨 3>는 일반적인 DMR이었던 데다가 입체효과마저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웠던 탓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오프닝부터 이 우려를 말끔히 없앴습니다. 새삼 J.J. 에이브럼스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 요인이기도 했고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시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아이맥스로 가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결론을 토했으니 읽으실 분도 드물겠지만 서론으로 들어갈까요?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연출한 J.J. 에이브럼스는 메이저 리그로 치면 페드로 마르티네즈보다는 마리아노 리베라에 가깝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지고 있는 경기에 패전 처리의 용도로 나서는 운명을 갖고 있었지만 기적을 일으켜 경기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운 투수입니다. 그의 활약은 <앨리어스, 로스트>와 같은 미드를 거쳐 진출했던 <미션 임파서블 3>에서부터 곧장 시작됐습니다. 흥행을 떠나서 평이 좋지 못해 더 이상 관심을 얻지 못할 것만 같았던 시리즈를 놀랍도록 탈바꿈시켜 부활하게 만든 인물이 J.J. 에이브럼스였죠. 전 그의 미드를 뒤늦게 봤었지만 이 영화 한편으로 왜 그리 인구에 회자가 됐던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이어진 <스타트렉: 더 비기닝>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제작됐던 스타트렉의 영화 버전이 나빴다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사실 저는 '트렉(Trek)'보다는 '워즈(Wars)'의 팬이라 이전까지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원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드라마는 손 댈 엄두도 못 냈고요. 기껏해야 가끔 AFKN 등에서 보는 것이 전부였던 제게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흥미와 재미를 선사하기에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역으로 저와는 달리 오리지널의 팬이라면 의견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J.J. 에이브럼스는 스타트렉을 특정 부류에만 머물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타트렉을 전혀 모르는 관객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전편으로부터 약 4년이 흘러 개봉할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또 한번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증명합니다. 당연하게도 전편과 맞닿은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한 미지의 행성에서 커크 일원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흥미로운 오프닝을 통과하면 존 해리슨이라고 하는 전직 스타 플릿의 대원이 테러를 가하고, 위기에 빠졌던 커크가 다시 엔터프라이즈의 대원들와 함께 그를 처단하러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 여전히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에 군더더기 없고 빠른 전개, 누군가는 감탄하고 다른 누군가는 맥이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 등에서 이전보다 더 강화됐습니다. 더욱이 오리지널을 알거나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가울 클링온도 적게나마 등장합니다.

종종 적지 않은 사람들이 J.J. 에이브럼스를 두고 '천재'라고 지칭하는데, 저는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면서 또 한번 그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이 글의 제목에 썼다시피 '천부적인 재능'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체감할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J.J. 에이브럼스뿐만이 아니라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알렉스 커츠만, 데이먼 린델로프 등이 참여한 각본도 꽤 탄탄합니다. 오프닝의 행성에서 감행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은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극의 구성단계에서 첫 디딤돌이 되는 '발단'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동시에 9.11 테러 등과 같은 몇 가지 다른 소재를 곳곳에 효과적으로 심어두고 있다는 것은 더 본받을 일입니다.

이런 각본까지 가세한 이상에는 J.J. 에이브럼스의 연출은 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적어도 상업/오락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천재라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스타트렉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무수한 팬을 거느린 작품을 만지면서도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 <어벤져스>의 조스 웨든과 동일한 부류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것은 '근자감'이 아니라 '굳건한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율을 느낀 몇몇 장면에서는 감탄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특히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아이맥스로 보면 J.J. 에이브럼스가 왜 단순 DMR이 아니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는지 절절하게 깨닫게 되실 겁니다.

J.J. 에이브럼스가 더 놀라운 건, 각각 어떤 면에서 오리지널을 아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의 이야기를 차용하면서도 스타트렉을 모르고 보더라도 몰입할 수 있도록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심었습니다. 비록 100%의 만족도를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이것은 분명 배려라면 배려고 영악하다면 영악한 것이겠죠. 엔터프라이즈가 워프하는 것을 묘사한 장면 같은 건 양쪽 모두를 섭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커크와 스팍에서 그치지 않고 각기 주요한 캐릭터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것 역시 좋았습니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테두리 안에서 이토록 재기발랄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뛰어노는 걸 보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을 기대해도 좋겠습니다!

★★★★☆

덧 1)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베네딕트 컴버배치입니다. 전 <셜록>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연기는 듣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더군요.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그의 연기로 인해 비중이 더욱 커지고 도드라졌습니다.

덧 2)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캐릭터는 얼마 전까지 베일에 쌓였었죠.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감독이 다름 아닌 '떡밥의 제왕'인 J.J. 에이브럼스니까요. 과연 여러분이 예상하고 있는 그것이 맞을까요?!

덧 3) 클링온은 3편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줄 알았는데 결말을 보니 아닌 것 같네요. 그래도 3편에서야말로 진짜 스타트렉의 여정이 펼쳐질 것 같다는 것은 희소식입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이 있어서 언제 나올지 의문인 건 함정.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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