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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합법적 노예…하지만 우리가 더 문제다"[기획] 방송가 사각지대를 찾아가다 - ③ 코미디언 편
곽상아 기자 | 승인 2013.05.22 08:16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한 엄용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국내 대표적인 코미디언 가운데 한명이다. 데뷔 후 33년간 단 한주도 방송을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금도 엄용수 회장은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엄 회장은 개별적인 활동과 별개로 13년이나 지속적으로 코미디협회 활동을 할 정도로 코미디언들의 권익 개선을 위해 힘써오기도 했다. 친목단체에 불과했던 코미디협회를 2010년 사단법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로 전환해 사비를 들여가며 협회를 꾸려온 것도 엄 회장이다. "코미디로 번 돈을 (동료) 코미디언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유에서다.

   
▲ 엄용수 회장

2010년 이후부터 협회장을 맡아온 엄 회장은 20일 오전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일이 많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코미디언들이 일이 많아야 하는데…"라며 방송가 사각지대에 놓인 대다수 코미디언들의 열악함에 대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기자가 준비해온 질문을 미처 던지기도 전에, 엄 회장은 "상위 몇몇 코미디언들만 배부르고, 밑에 있는 대다수 코미디언은 죽더라도 (사람들이) 모를 지경"이라며 진지하게, 때로는 참담한 표정으로 코미디언들의 현주소를 들려줬다.

"협회원 750명 가운데 실제로 방송하는 사람은 150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600명은 실업자인 셈이죠. 공채, 특채 등을 합쳐 매년 1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코미디언으로 수급되지만 살아남는 이들은 3%밖에 안됩니다. 인기있는 코미디언은 허리만 좀 다쳐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중병에 걸려 죽어도 아무도 관심을 안가집니다.

참으로 비정한 '승자독식' 세계지만, 정작 코미디언들은 이 사실을 별로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내요. '언젠가는 나에게도 곧 햇볕이 온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런 날은 끝내 오지 않아요."

탤런트 보다 더 열악한 코미디언

코미디언도 다른 문화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러나, 야외수당 등 별도 수당이 전무해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하다. 방송사 공채로 정식 코미디언이 되어도 수습 기간(보통 3~6개월)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 남짓. 수습기간 종료 이후부터는 정해진 등급에 따라 회당 출연료를 지급받는데, 가장 아래 단계인 6등급의 경우 20만원 내외다. 방송사마다 개그프로가 한개씩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이 돈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지사다.

한 지상파 공채 개그맨 A씨는 "프로그램 숫자에 비해 개그맨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어느 누구도 출연료 올려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말했다가는 곧바로 잘리기 마련"이라며 "신입들의 경우에는 열악한 처우를 전혀 모른 채 코미디를 하고 싶어서 이 바닥에 들어온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인식할 때쯤 되면 (나이가 들어) 다른 업종으로 가기 힘들기 때문에, 알더라도 아무런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엄용수 회장의 태도는 되레 담담했다.

"일반 시민들은 잘나가는 연예인들만 생각하죠. 고급차타고, 몇십억 짜리 빌라에 산다고.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고, 대다수가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희는 (방송사의) 말을 잘듣고, 알아서 기고, 주는대로 받습니다. 노예랑 뭐가 다른가요? 합법적인 노예나 마찬가지죠.

(극단적으로) 저희는 녹화하러 가다가 죽어도 산재 인정이 안돼요. 방송사가 몇푼 주면 감사하다고 해야 하죠. 아니면 소송을 걸든지. 절대권력자인 방송사들은 국민정신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코미디언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코미디언들이 놓인 토양의 척박함은 '코미디계의 황제'도 피해갈 수 없었다. 원로 코미디언 고 배삼룡씨(2010년 2월 23일 타계)는 병마와 싸우던 34개월간 치료비만 3억5천만원이 나왔으나 당장 갚을 돈이 없어 장례식 마저 외상으로 치뤄야 했다. 나이 들어 더 이상 방송을 못하게 된 모 코미디언은 돈이 없어 찜질방과 노인요양병원을 전전하기도 한단다. 최근 개그프로그램의 패턴이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코미디 유형으로 바뀌면서, 고정 소득이 사라진 데다 '전무'한 복지로 인해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코미디언들도 많다.

엄용수 회장은 "노조지부장도 10년 했었는데 당시 방송사를 상대로 나이든 코미디언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었다. 그런데, 방송사들은 시청률이 안나와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라며 "그런데 클래식, 국악 프로도 시청률 때문에 존속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라고 반문했다. 엄용수 회장은 코미디언들이 놓인 열악한 환경은 '코미디'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식도 한몫했다고 분석한다.

"예전부터 한국사회는 길거리에서 웃음을 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높지가 않았어요. 대중들이 탤런트, 영화배우는 멋있고 고상하게 보면서도 코미디언은 그렇게 보지 않잖아요? 제가 데뷔했을 당시에도, 코미디언들은 탤런트보다 출연료가 적었고 등급도 잘 안올려줬습니다.

드라마는 제작비가 몇십억인데, 코미디는 같은 한시간 분량이어도 비교가 안되죠. 코미디 프로는 가볍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드라마와 형평을 맞추려면, 방송사마다 적어도 코미디 프로 2개 이상은 해야 해요. 지금이라도 방송사가 코미디 프로에 공을 들여 질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정치, 시사 풍자도 자유롭게 하게 해야하죠."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비정한 현실

하지만, 엄용수 회장은 "(방송사나 정부가 아닌) 우리 자체의 문제가 더 크다"고 털어놓았다. 한해에 몇십억씩 버는 스타 코미디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코미디언들을 위해 기금을 내놓는다든지 코미디언들의 권익개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문제를 들춰낸 엄 회장은 심경이 복잡한 듯 때때로 말을 잊지 못했다.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한 이들이 (동료 코미디언들을 위해서는) 단돈 10원도 기부를 하지 않습니다. 코미디계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고민하기 보다는, 다들 빨리 성공해서 벤츠 끌고 다니고 빌딩 사고…이런 차원의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코미디의 황제였던 대선배(고 배삼룡씨)가 식물인간으로 아산병원에서 34개월을 누워계셨는데, 문병 온 코미디언은 30명도 안 됩니다. 3억5천만원의 치료비를 갚기 위해 저희가 2년간 모금운동을 진행했으나 겨우 1300만원을 모았을 뿐이에요. 연 소득이 몇십억씩 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니까 빈소에는 제일 먼저들 오더군요. (취재나온) 카메라가 있으니까. 비정한 현실입니다.

이게 진짜 코미디 아닌가요? 방송사나 정부가 '스타 코미디언들도 많은데, (코미디계 차원에서) 왜 먼저 동료들을 돕지는 않느냐'고 묻는다면,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엄용수 회장은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협회장직을 그만둘 계획이다. 사비를 털어 관련 활동을 해왔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13년간 협회 활동을 하면서, 우리 내부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엄 회장은 후배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저도 다른 코미디언들에 비해서는 특혜받은 사람 중 한명이지만,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몰라요. 그동안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잘리는 것을 봐왔는데, 저 역시 잘리면 소득이 하나도 없게 되죠. 그동안 모든 비용을 제가 책임져 왔지만, 저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나보다 더 유능한 후배들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그만하려 합니다.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이경규 정도 되는 이들이 협회장을 맡아 코미디언들의 권익 개선을 위해 힘써주길…강력히 바라고 있어요."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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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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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리수 2013-05-22 08:38:51

    연예계란 곳이 젊을때 한철이고 후배들도 자기 미래 준비하기 빠듯할텐데 기부 안한다고 탓하는건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이런 마인드 자체가 빨리 사라졌으면싶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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