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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물질보다 사랑? 백만장자의 옛사랑 찾기[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3.05.17 00:28

토요일 밤마다 사람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여는 백만장자가 있었다. 수백 명의 손님들은 초대장도 받지 않고 이 남자의 집에 들어와서 재즈와 술, 댄스의 향연으로 질펀하게 놀아나기 일쑤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누구도 토요일 밤마다 거대한 파티를 열어주는 이 남자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미스테리한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의 정체는 백만장자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심청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온 나라의 장님을 불러 모아 연회를 베푸는 것처럼, 개츠비 역시 잃어버린 옛 여인을 위해 매 주 토요일 성대한 연회를 개최한다.

개츠비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여인은 다름 아닌 데이지(캐리 멀리건 분). 개츠비가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열렬하게 사랑하던 데이지는 지금은 남의 아내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데이지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위대한 개츠비>는 전과 후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는 U2의 ‘러브 이즈 블라인드네스’, 제이지의 ‘노 처치 인 더 와일드’ 등의 OST과 융합된 화려한 파티 장면과 같은 시각적인 성찬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화자인 닉(토비 맥과이어 분)이 호텔 방에서 술에 취해 여자들과 환락을 즐기는 장면 역시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도배된 연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시각적인 화려함에만 공을 들이진 않는다. 시각적인 화려함은 분명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장기이기는 하지만 개츠비가 사랑하던 여인인 데이지와 재회하는 장면부터는 드라마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전반부가 시각적인 연출에 공을 들였다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이야기에 힘을 쏟는다는 뜻이다.

개츠비는 이상주의와 물신주의를 혼합한 기이한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그는 자금을 축적하는 데 있어 합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다. 금주령과 같은 법적 제재를 우롱이라도 하듯 몰래 술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개츠비라는 인물이 단지 돈을 숭앙하는 차원의 일차원적인 인물이었다면 이상주의자라는 분석이 나올 리 만무했을 터, 20세기 최고의 소설에 꼽힐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사랑하는 여인과 재회하고 그녀와 다시 결합하기 위해 그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바치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까지 하는 개츠비의 모습은 물신주의의 화신으로 보이는 개츠비라는 인물에 이상주의자라는 층위를 한 꺼풀 덧입힌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는 남자 개츠비는 불륜이라고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남자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개츠비는 여성 관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주의적 사랑의 인물로 대변될 수 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이 쌓아놓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려놓을 남자가 현실에선 얼마나 있겠는가.

   
 
더불어 개츠비는 비록 자신이 물신주의의 추종자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음에도 물신주의가 전부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만나더라도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칠 각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살던 대로 물질에 천착하여 살겠지만 개츠비는 예전에 자신이 최상으로 생각하던 물신주의를 내려놓고 사랑만이 내 삶의 전부라고 외친다.

개츠비가 물신주의를 극복하게 된 것이 사랑으로 표현되지만, 이는 실제 사건의 전조로도 읽어볼 수 있다. 바로 대공황이다. 당시 미국의 많은 서민을 궁핍의 늪에 빠뜨린 대공황은 개츠비가 부를 축적한 물신주의라는 가치관, 혹은 영화 전반부에 흐르는 재즈와 술이 어우러진 화려한 파티의 외양과는 반대 지점에 놓인 현실의 비극임에 분명하다.

개츠비가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버린다는 설정은, 개츠비가 살아가던 시대의 영광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마하는 징조와도 같다. 개츠비의 사랑 지상주의는 허무맹랑한 이상주의자의 얼빠진 사랑 타령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현상으로 바라보면 물질적인 풍요가 종말을 맞이할 때 물신주의가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조로도 읽을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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