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비서로 파견한 인턴 여직원 A(21)씨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1

“청와대 출입기자 78명, 청와대 수행요원, 실무수행요원, 뉴욕주재 한국문화원 직원이 있는 곳에서 제가 여자 가이드에게 술을 하자고 권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1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 같이 말하며 자신의 떳떳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난 사실은 바로 그 한국문화원 직원이 해당 인턴의 하소연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현실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홍보직원인 한국문화원 소속 여성 직원이 피해 여성과 함께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신고했으며, 당일 사의를 표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언론보도에서 알려진 바다.

해당 직원이 피해자의 고발을 돕고 곧바로 사표를 낸 정황은 그가 상부 보고를 통해 상급자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전혀 가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직원이 순전히 지레짐작으로 청와대나 주미대사관의 성추행 사건 대처능력을 평가절하했을 가능성도 ‘0%’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추론할 때는 자신의 직장을 내건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그토록 경솔한 판단을 내렸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한국문화원 직원이 애초에 상부에 보고를 했으나 그 대처에 실망해 미국 경찰에 신고를 했을 거라는 교포 사회의 소문이 심상찮게 다가오는 이유다.

여기서 한미정상회담을 따라간 저 78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처신이 궁금해진다. 윤 전 대변인의 주장대로, 그들은 사건이 보도되기 전에 사실상 ‘윤창중의 알리바이’ 역할을 했다. 사건이 보도되고 나서야 윤 전 대변인이 9시30분부터 30분간 술을 마시고 호텔에 돌아갔다는 주장과는 달리 밤 12시30분부터 새벽2시까지 그가 술을 마셨으며 새벽5시쯤 그의 취한 모습이 다시 목격되었다는 기자단의 증언이 나왔다. 새벽4시쯤 “내가 왜 여기서 새벽까지 대기를 해야죠”라는 인턴 직원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마저 나온다.

물론 전후 정황을 돌이켜보건대 78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인지하는 게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의 직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동선으로 움직였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를 챙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추행 사건과는 별개로 기자단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이상기류’를 느낄 여지는 충분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창중 전 대변인은 ‘도피’한 그날 저녁 뿐만이 아니라 그 전날 저녁 브리핑도 주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단은 청와대 대변인이 이틀이나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선 윤창중 전 대변인의 ‘개인 성향’과 당시의 ‘정치적인 처지’에 관한 해석이 가능하다. 기자들 사이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은 원래부터 업무에 충실하지 않고 기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지 못하는 이로 평가받았다. 즉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겐 윤창중 전 대변인이 하루 이틀 청와대 기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그런 상황이 아쉬운 일도 아니었을 거란 해석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도피’는 박근혜 대통령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기자들이 그의 ‘도피’를 놓친 것 정도야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 보도 이후 당일 호텔에서의 윤창중 전 대변인 행적에 대한 기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기자들은 대통령보다도 윤창중 전 대변인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피해여성의 신고가 미시USA 게시판에 알려져 CBS에서 보도될 때까지 사태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피해여성이 당일 새벽 짜증 섞인 전화를 했다는 전언, 다음날 오전에 호텔에서 울고 있었다는 전언이 후일담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그렇다면 피해여성과 그를 돕는 이들의 입장에선 주미대사관 만큼이나 78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시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여기서 윤창중 전 대변인이 말한 ‘문화적 차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은 개인의 품성 문제일 수 있지만, 그 성추행이 그렇게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는데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 자체는 개인의 품성 문제를 넘어 그들만이 존재했던 리그의 어떤 문화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윤창중 전 대변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청와대 인사들도 특정 여성 인턴을 지목해 술자리로 나오라고 요구하는 등의 추태가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인턴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의 행위도 있었다고 한다.

무급이지만 엄청난 경력으로 인지되어 수많은 재원들이 신청하고 선발된 인턴 자리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면피성 변명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한국의 부유층이 서비스 직종에게 하는 그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의 문맥 속에서의 ‘가이드’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가이드라고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될 리 없건만 그들은 그들의 상식 속에서 행동했고, 기자들 역시 그걸 곱지 않은 눈으로 봤더라도 ‘범상한 일’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서였든, 정권 초엔 크지 않은(?) 문제로 각을 세우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든, 순방에 동행한 언론인들은 이러한 ‘습속’을 방조하는데 한 역할을 한 것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추태보다도 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부끄럽게 하는 것들은 피해자의 고발을 도운 이가 사의를 표하는 것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윤창중의 알리바이가 되고 CCTV가 그걸 허무는 기제가 되는 것이 너무나도 납득이 가는 우리 삶의 경험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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