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 중에서도 위스키에 정통한 이라면 ‘앤젤스 셰어’가 무엇을 지칭하는 용어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앤젤스 셰어를 문맥 그대로 풀이하면 ‘천사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나무로 된 오크통에서 와인이나 위스키가 숙성될 때 매년 2% 남짓의 알코올이 자연으로 증발해서 없어진다고 하는데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앤젤스 셰어’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실패자다. 주인공 로비는 분노지수를 억누르지 못해 우발적인 폭행을 저지르고 사회봉사 300 시간의 명령을 받는다. 또한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손이 조건반사처럼 자동으로 먼저 반응하는 좀도둑 모, 기차역을 자기 집 안방으로 착각하고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된 알버트와 같은 영화의 주인공들은 정상적인 규범에서 일탈한 인생 낙오자 종합선물세트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없어도 그만인 불쌍한 청춘이다. 아니, 어쩌면 스코틀랜드의 공익을 위해서라면 없어지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청춘이다. 영화 제목과 이들을 유비하여 살펴보자. 매년 오크통에서 증발하고 사라지는 2%의 알코올은 이들 영화 주인공을 가리키는 은유화법이다. 스코틀랜드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청춘이 아니라 오크통 속에서 증발될 2%의 알코올처럼 증발해서 없어져도 무방할 청춘이라는 의미.

하지만 이들 주인공이 오크통의 사라질 알코올처럼 사회에서 휘발되기만 기다릴 청춘이라면 이들의 부모 혹은 이들의 2세는 어떻게 될까. 만일 주인공 로비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면, 로비의 갓 태어난 아들은 제대로 된 아비의 정서적인 사랑과 물질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채 아비의 뒤를 이어 오크통의 증발할 2% 알코올과 같은 인생을 유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앤젤스 셰어> 가운데 사회에 불필요해 보이는 이들 가련한 청춘들이 감옥이나 혹은 사망이라는 증발을 당하면 그의 주변 혹은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앤젤스 셰어>의 미덕은 사회에서 증발될 위기에 처한 가련한 청춘들을 거두는 따스한 시선이다. 만일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청춘들을 관리하는 해리와 같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없었다면 로비는 자신의 갓 태어난 아들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로비의 친구들 역시 감옥을 들락날락하다가 결국에는 사회에서 증발할 존재로 전락했을 것이다.

로비와 그의 친구들을 증발하고 말 2%의 알코올로 만들지 않고 사회 적응이라는 오크통 안으로 밀어 넣는 이는 해리다. 사회적 잉여를 전전하다가 종국에는 사회에서 격리되거나 감옥에 갈 운명의 낙오자를 경멸의 시선이 아닌 따스하게 바라보는 해리의 시선은, 마치 <레미제라블>에서 은그릇을 훔치다 경찰에게 적발된 장발장에게 도리어 은촛대를 선물해준 미리엘 신부의 자비로운 시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앤젤스 셰어>는 낙오자 인생을 한 방에 극복하려는 로비와 그의 친구들의 위스키 한 탕 프로젝트보다, 이들을 사회에서 증발해야 할 낙오자 인생이 아니라 오크통에 남아있어야 할 인생으로 보아준 해리의 따스한 시선에 주목해야 할 영화다. 배척보다 관용이 우선시될 때 세상은, 이솝 우화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해님처럼 따스한 곳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영화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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