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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 서사 발레로 재해석한 유니버설발레단 ‘심청’,[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3.05.10 12:25

드라마와 영화에서 어떤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때에는 시간여행이 대세인가 하면, 또 어떤 때에는 복수극이 횡행할 때가 있다. 요즘 문화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이 남성을 구하는 맥락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아어언맨3>의 페퍼는 위기에 빠진 토니 스타크를 구하고 <고령화가족>의 엄마(윤여정 분)는 전화 한 통으로 목 매기 일보직전의 아들 인모(박해일 분)의 목숨을 구한다. <남자가 사랑할 때> 첫 회에서 서미도(신세경 분)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스폰으로 제안하기까지 한다.

<구가의 서>의 담여울(수지 분)은 죽을 뻔한 강치(이승기 분)의 목숨을 구하고,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분)은 회사 조직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해주는 구원투수가 된다. 여자가 위기에 빠진 남자 혹은 집단을 구한다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 심청-2막-용궁 ⓒ유니버설발레단
이런 맥락으로 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의 서사 역시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즉 여성이 남성을 구원하는 주체로 나타나는 요즘의 문화 콘텐츠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고유한 레퍼토리 <심청>은 원작의 이러한 서사에 재해석을 가한다.

본래 <심청>의 텍스트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로 남성은 보조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발레의 1막 2장은 원작에서는 보조적인 캐릭터에 불과한 중국을 항해하는 선원을 역동적인 캐릭터로 끌어올린다.

마치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것처럼 선원들의 역동적인 군무는 ‘아버지 구하기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심청을 선원들이 왜 바닷물에 빠뜨려야 하는가를 무언의 춤동작과 연기로 풀어가고 있었다. 원작의 뺑덕어멈이라는 악역을 배제한 것도 눈에 띄는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 심청-2막-심청과 용왕의 2인무 ⓒ유니버설발레단
2막에서 관찰되는 재해석은 용궁 캐릭터의 묘사에 있다. 본래 용궁은 동양의 개념이지 서구의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발레는 용궁을 형상화함에 있어 동양적인 디자인보다는 서구적인 면모로 캐릭터를 형상화하고 다채로운 디베르티스망의 성찬을 펼치고 있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오네긴>과 같은 감성적인 발레도 선보이긴 하지만 <라 바야데르>처럼 <심청>에서도 유니버설발레단의 화려한 장기인 디베르티스망을 2막과 3막에서 유감없이 펼쳤다. 용왕이 심청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그의 구혼을 거절하는 장면 역시 발레만의 재해석이다.

3막은 피리 부는 도령이라는 캐릭터의 삽입과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의 재해석에 있다. 심청이 연꽃에서 나온 후, 달빛 아래에서 심청을 향해 퉁소를 부는 도령은 발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스터 에그와 같은 캐릭터다. 왕과 심청이 달빛 아래에서 춤추는 그랑 파드되 역시 재해석의 묘미이자 3막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심학규가 눈을 뜬 후 그 기쁨을 자기 자신만 갖지 않는 것도 재해석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눈을 뜬 심학규가 궁중 잔치에 초대된 다른 장님들의 눈을 만지자 이들이 연쇄적으로 눈을 뜬다는 설정은, 개인적인 행복의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희망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 심청-3막-문라이트 파드되2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는 세 가지 요소로 관객에게 어필한다. 맨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건 무용수의 춤 동작과 연기다. 두 번째는 무용수와 동작과 합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세 번째는 조명이다.

<심청>은 조명의 힘에도 큰 빚을 지는 발레다. 조명의 힘이 관객에게 가장 어필하는 부분은 크게 두 장면이다. 선원들에게 심청이 팔려갈 때 조명은 돌연 파란색으로 바뀐다. 심청과 같이 있던 심학규의 세계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조명은 놓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심학규가 눈을 뜨는 순간이다. 대사 하나 없이도 조명 하나만으로 관객은 심학규가 눈을 뜨는 장면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 다른 발레와는 달리 <심청>은 조명 하나 하나에도 유의하고 관람하면 장면 전환 때 어떤 의미를 이야기하는가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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