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하던 바람은 고개를 숙여, 어김없이 봄은 찾아들었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다. 봄은 축제의 계절이다. 봄은, ‘아름다움’의 계절이다. 한국의 봄은 아름다움을 선발한다. 해마다 재단장하는 꽃밭처럼, 미인 대회는 어김없이 개최된다. 아쉽게도 작년의 무대는, ‘가짜 논란’으로 멍에를 썼다. 미스코리아 진을 차지한 여신이, 의학의 수혜를 입었다는 뒷공론. 여론은 개탄했으며, 한 편 이죽거렸다. “이젠 아름다움의 가치까지 사고 파는 시대인가.” 2013년에도 5월은 논란과 함께 돌아왔다. 4월 25일(현지시각) 미국 뉴스공유사이트 ‘레딧’에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거기엔 바둑판처럼 배열된, 반명함판 규격의 사진들이 엮여 있었다. 2013년 미스코리아 지역 대회의 참가자들이었다.

 

미녀들은 판에 박은 얼굴과 닮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기사는 번져나갔다. 영국의 데일리메일, 미국의 허핑턴포스트, 중국의 인민일보에서도, 한국의 ‘만들어진 미녀’들을 보도하였다. 국내의 매체들은 국외의 시선에 빙의한 채, 자극적인 표제로, ‘성형 공화국’의 자화상을 자조했다. “미스코리아 후보 20명 모두 성형? 국제적 망신” (한국경제TV), “미스코리아 후보자들은 모두 '친자매'…외국 네티즌들 비아냥” (조선일보)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2013' 참가자 성형 시스터즈 "같은 병원에서 한 거야?"” (이투데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시 한 번 혀를 찼고 한숨을 터트렸다.

그녀들의 진료기록을 추적하지 않는 한, 정확한 내막을 알 수는 없다. 우선은 곡절이 있는 듯도 하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사진은 일본의 혐한 사이트 ‘카이카이’에 게재되었다 한다. SBS <한밤의 TV연예>는 5월 1일, 이 사안을 취재하며 주최 측과 성형 전문의의 소견을 첨부하였다. 요는, 얼핏 성형이 의심되나, 대회용 메이크업과 일률적인 패션 탓이란 얘기. 의문과 해명. 어느 것이 진실인가, 나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오해라고 방어하는 건 길을 잃은 반론인 것만 같다. 그저 머리 한구석 품고 다니던 익숙한 의문과 마주하였을 따름이다. 오늘날,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아름다움은 ‘획득’의 대상인가.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욕망하며, ‘아름다움’을 비난하는 것일까.

성형의 등장, ‘미녀’의 탄생

과거, 인간의 아름다움은 선택받은 특권이자 축복이었다. 시공마다 정해진 미의 기준, 그 기준을 충족하는 외모는 유전적 특혜의 결과였다. 소수의 미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선망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태어날 때 부터 이보다 분명히 정해진 재능의 격차가 있을까. 그 용모의 갭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좁힐 수도 없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아름다움의 성채는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성형’의 등장. 과거에는 미, 추가 고정된 채 분리돼 있었지만, 지금은 미의 기준에 자신을 뜯어 맞출 수 있다. 아름다움을 향한 통로가 개척된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에는 흑치(黑齒)가 미인의 조건이었다. 여인들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곤 했다. 중세 유럽에선 넒은 이마를 중요시 했기에, 눈썹을 뽑아 버리는 게 유행이었다. 태국의 카렌족은 목이 긴 사람을 미녀라 여겨, 어린 시절 부터 링을 차고 억지로 늘린다. 중국의 전족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손쉽고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유사 성형’은 차별적 위계라기보다, 전제조건이다. 동일한 기준에 맞춰 전체적인 하한선이 제시된다. 현대의 성형은 반대로, 그 범위가 방대할뿐더러, 시술 역시 정교한 높낮이를 가진다. 개인의 의욕과 여건에 따라 우월한 ‘여신’으로 승천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성형은 자신을 구원하는 동아줄이 된다. 과거의 여신들은 현실과 분리된 조형물 안에 존재했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그림과 조각상. 오늘의 미의 표상들은 살아 움직이며 우리 곁을 배회한다. tv와 인터넷에선 온갖 종류의 여신들이 범람하며 종일토록 우리를 유혹한다. 아름다움은 넘쳐나는 동시에, 너무도 가까이 있다. 서구적 미의 홍수는 한국인의 평균치를 타고 난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생래적 정체성은 외모적 결핍이 되고, 결핍에서 비롯된 죄의식은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진다. 이따금 유출되는 ‘여신급 미모’ 배우들의 과거사진은 내가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리하여 돈을 모으고 시간을 빼내 수술대로 달려갈 계획을 세운다.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Zeuxis)는 크리톤 시의 의뢰를 받아 당대 미인의 대명사, 헬레네를 그렸다. 그림의 완성을 위해 그는 다섯 명의 여인을 선발했다. 현실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다섯 명의 신체미를 조합해 한 명의 인물화를 완성하였다. 성형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 역시 제욱시스가 된다. 의뢰인의 한 몸에, 김태희의 눈, 한가인의 코, 한지민의 이마, 이나영의 턱, 김혜수의 가슴을 이식한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의사는 제욱시스의 재능을 소유하지 못했고, 사람의 신체는 화폭이 아니기에, 헬레네가 아닌 ‘성괴’가 탄생할 때도 있다. 성형비용은 견적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부위라도 가격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코 수술비용이 150만원에서 1000만원이라면, 코스에 따라 보형물이 달라진다. 요즘엔 터무니없는 금리의 성형대출까지 등장했다지만, 지출할 금전이 부족할수록 위험부담도 높아지는 셈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커질수록, 외모는 상품과 도구가 된다. 이 ‘상품’의 값어치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것은 어떤 헤게모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대중일수도, 자본일수도, 미인을 얻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엄친아들일 수도 있다. 성형기술의 발달로 너도 나도 김태희, 손예진이 되려는 미인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는 식별 과제가 된다. 같은 코와 같은 눈에 같은 입술. 타인의 이목구비를 보며, 그들은 병원의 브랜드를 탐문한다. 여신들에게서 ‘성괴’를 솎아내려 한다.

누구를 비난 할 수 있는가

미스코리아 대회는 언젠가부터, 불이 꺼져가는 무대였다. 한국의 미를 대표한다는 취지도, 스타 탄생의 교두보 역할도 달리 수행치 못하고 있다. '5월의 왕관'이 아름다움과 명예의 상징 이던 시절은 저물어 간다. 요즘 소녀들의 우상은 걸 그룹의 래퍼와 보컬이다. 대중의 우상이 되기 위해선, 일찌감치 SM과 YG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꿈과 영광을 원한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한다. 탤런트와 영화배우는 어떠한가. 모 아이돌 멤버가 배우로 데뷔했다는 단신은 한여름 매미소리마냥 쟁쟁 거리지만, 미스코리아 진이 어느 월화극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단 소식은 끊긴지 오래다.

사회는 이미, 아름다움을 전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에선 미모의 BJ가 아름다움과 ‘별 풍선’을 맞바꾼다. 케이블 TV에선 성형을 통해 삶을 구원하는 프로젝트가 방송된다. 결혼시장에서 외모는 스펙과 등급이 되었다. 기업은 ‘선한 인상’과 ‘호감형 외모’를 암암리에 가산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취업성형은 XXX의원에서” 라는 문구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취업의 활로는 쥐구멍만 하고, 스펙은 과포화 되어, 결혼의 압박은 거대해지는 산사태 속에서, 사회는 유력하고 또 다른 ‘신호’를 요구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진-선-미의 등급을 매기고 왕관을 수여하는 미인대회장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2013년의 미인 대회란, 우리 안의 미美의 부조리를 타자화 시켜 조소하는 해방구는 아닐는지. 이런 상상들이 비약일지라도, 아름다움의 경쟁이 일상의 구석구석을 잠식한 상황에서, 낡고 헤진 ‘미인대회’에 숭고함을 요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서두에서 말한 논란은 후일담으로 이어진다. 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수상자들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누리꾼들은 대회측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심사하기로 한 것이냐며 조소했다. 예년에 비해서도, 현격한 ‘수준’ 차이가 난다는 거다. 한 편으론 ‘성형’을 추궁하고, 한 편으론 ‘본판’을 질타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스펙화와 성형의 압박이 교차하는 포물선 위에 선, 우리 사회 딜레마가 상징화한 형상일지 모른다.

끝없이 부족함을 자책하게 만드는 미디어와 사회 속에서, 외모에 대한 죄의식은 일상화 된다. 아름다움을 타고 나지 못한 다수의 여성들은 '오크'로 남거나, 성형을 해야 하는 양자택일에 시달린다. 돈을 모으고 방학을 틈 타 어렵게 결심한 후엔, 낮지 않은 확률로 ‘성괴’가 될 위험에 처한다. 나는 성형수술을 반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를 뜻대로 변형할 자유와 권리는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다. 아름다워 지고 싶다는 욕망 역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소녀들이 수술대에 눕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힘들다면, 그녀들의 성형이 더 이상 비난받지는 말았으면 한다.

※ 이 글은 필자가 작성한 “미스코리아의 과거사진은 왜 입방아에 올랐을까?” (오마이스타)에서 몇몇 문단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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