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발제자의 '공적재원 안정화' 등 중요한 제안은 평화로운 시기와 정권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현재 정권하에서 KBS와 MBC 등이 처한 상황은 전두환 정권 때와 다를 게 없다. 왜냐면 대통령-방통위-KBS이사회-국회 등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앞으로 현 정부는 공영방송에 대한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것이다. "

"요즘 신문방송을 보면 민망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언론학자가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주제연구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지난 24일 오후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방송법과 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 토론회에서 오간 내용이다.

이날 토론회는 △방송법과 제도 개선 관련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 △방송재원 등 3개 주제에 대해 각기 발제와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술적인 주제'의 토론회였지만 언론학자들은 현 정권의 미디어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최영묵 교수 "방통위, 미디어정책 기본과 핵심 전혀 이끌지 못하고 있다"

▲ 2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주최 '방송법과 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 토론회. 제1주제를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정영은
제1주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과 방송규제기능에 관한 검토'의 발제를 맡은 최영묵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이다보니 이명박 정부에 권력적으로 예속화되어 있다"면서 "대통령 취임 100일을 넘어선 시점에서 정부가 방송통신분야에 대한 내용규제와 인사압력 등 총체적인 언론에 대한 압박을 하고 있어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방통위는 미디어정책의 기본과 핵심을 끌고가야 하는데 그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경진 교수(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방통위원장은 정치가가 아닌 행정가다. 미디어의 공공성을 담보해 내야하는 위치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그간의 책임을 물어 인적쇄신의 대상에 포함해 경질해야 한다"면서 "언론상황이 5공시절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학계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새 정권의 신문방송겸영허용 정책에 대해서도 "논란의 핵심은 한국사회 특유의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언론재벌에 있다"며 "여론독과점 심화와 미디어재벌의 횡포를 묵과하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도입하게 되면 우리 사회가 다양한 여론이 보장되는 선진사회로 가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황근 교수(선문대 신문방송학과)는 "방통위가 통제기구라면 '나가라' 밖에 답이 아닌데, 과연 우리시대의 답이 '이명박 아웃(out)'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소유겸영문제도 방통위라는 새로운 기구탄생에 따라 구조적으로 규제대상 확대 욕구에 따른 것이지 언론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황 교수는 "최영묵 교수의 발제는 보다 아카데믹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김진웅 선문대 교수가 제2주제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을 위한 법제정립 방향'을 발제중이다.ⓒ정영은
제2주제 '공영방송 정체성확립을 위한 법제 정립의 방향'에서 발제자 김진웅 교수(선문대 신문방송학과)는 "공영방송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집단적 자유권'을 행사하는 사회적 제도"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의 인사권 핫라인이 형성되면 공영방송이 사회여론비판을 형성하는 미디어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웅 교수 "한나라당 국가기간방송법, 공영방송 기능 제대로 작동시킬지 의문"

김 교수는 한나라당의 국가기간방송법에 대해 "KBS와 EBS관련 법을 합치고 KBS이사회를 경영위원회로 대체한 정도라 과연 공영방송의 제기능을 위해 제대로 작동할 지 의문"이라면서 "공영방송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도록 안정화시킬 수 있는 '내부의 공적 통제 기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영국 BBC 트러스트 등 해외사례를 인용하면서 "공영방송은 국가행정관리 대상이 아니므로 외부 통제 기구인 방통위 등의 감독을 최소화하고 '시청자위원회 강화' 등을 통한 지역시청자 대표성을 반영해 '시민참여의 원칙'으로 내부적인 감독기구를 재구성 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수신료의 객관적 징수기구 설치와 수신료 지역별 분권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윤석민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는 "김 교수의 발제는 국민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과 믿음이 과잉되어 있다"면서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미성숙한 시민들의 과잉정치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발제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영주 연구원(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은 "국민이 정치적이면 안되느냐는 쟁점도 있다"고 반박하면서 "현재 텔레비전과 수용자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새 정부는 민영화에 집중하는 것은 중단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논쟁 과정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정두남 KOBACO 연구원이 제3주제 '방통융합시대 방송재원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발제하고 있다. ⓒ 정영은
제3주제 '방송재원 관련 법제 개선방안'의 발제를 맡은 정두남 연구위원은 "유료방송이건 무료방송이건 광고의존도가 심화된 현재 방송환경에서 수신료 인상 등을 통한 공영방송의 안정적 재원 확보가 우선되어야 전체 방송재원구조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요지의 발제를 했다. 중간광고나 간접광고 등의 규제완화 시도 역시 공적재원의 안정화를 통한 공민영방송 구조의 확립이 이루어져야 효과를 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승수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는 "앞으로 5년간은 수신료 인상을 통한 공적재원 확보는 어렵겠고 뉴스에 대한 일방적 통제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현 시점에서는 공영방송서비스를 최대한 지키고 버티는 게 필요하다"면서 "지금 유례없는 KBS 내부 종사자들끼리의 분열사태를 보면 과연 공영방송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승수 교수 "향후 5년간 뉴스에 대한 일방적 통제 예상"

이날 토론회에는 정부와 한나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연주 KBS 사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축사에서 "오늘날 방송법과 제도 중 'KBS 예산의 국회승인 의무화' 등이 포함된 한나라당의 '국가기간방송법'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최근 NHK 경영진과 자주 만났는데 일본의 경우 1월부터 3월까지 국회의 예산승인 때문에 정신이 없다더라"면서 "예산승인을 받기 위해 어떤 정치적 타협이 이뤄지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KBS 2TV, MBC 민영화가 공공연한 화두로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과연 공영방송제도가 굳건히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높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고민을 절실히 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가기간방송법안'은 최근 청와대에 입성한 박형준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2004년 대표발의한 법으로, 한나라당은 올해안에 입법화하겠다는 계획하에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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