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시험’으로 어린이들의 책읽기마저 경쟁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KBS <어린이 독서왕>이 정규 프로그램 편성을 취소하는 등 사업을 전면 수정할 계획이다.

<어린이 독서왕>을 주관하는 KBS 한국어진흥원은 6일 KBS 홍보실을 통해 낸 입장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 중단’을 알렸다. 앞선 2일, 박현우 KBS 한국어진흥원장은 프로그램 폐지 촉구에 앞장섰던 바람직한 독서문화 시민연대(이하 독서시민연대)에 ‘프로그램 폐지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전한 바 있다.

KBS 한국어진흥원은 “최근 학부모 단체 등의 비판 여론을 고려해 KBS <어린이 독서왕> 사업을 전면 수정, 정규 프로그램 편성은 추진하지 않고 선정도서 운영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KBS는 <어린이 독서왕>을 9월 중 방영할 예정이었다.

KBS 한국어진흥원이 밝힌 수정된 방향은 △선정도서를 기반으로 한 독서왕 검증시험 폐지 후 학교/개인별 자율적 참여 유도 △정규 프로그램 편성 중단 및 참가 신청 학생들을 위한 별도 행사 준비 △도서 판매 대행사의 판매 수익금 공익적 목적 사용 등 총 3가지다.

▲ 지난달 30일 바람직한 독서문화 시민연대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도 교육청의 KBS 어린이 독서왕 대회 참가 철회 촉구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바람직한 독서문화 시민연대

이번 결정은 공영방송 KBS가 어린이들의 책읽기를 자율에 맡기지 않고, 특정 선정 도서를 바탕으로 한 시험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독서의 경쟁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수렴해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독서·어린이 단체들이 모인 독서시민연대는 KBS가 <어린이 독서왕>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 등을 통해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해 왔다.

<어린이 독서왕>을 공식 후원하기로 했던 각 시·도 교육청이 비판 여론을 의식, 후원 철회를 밝힌 것도 프로그램 중단의 주된 이유로 보인다. 지난달 경북도교육청이 <어린이 독서왕> 사업에서 빠지겠다고 입장을 냈고, 이달 들어 서울시교육청, 울산시교육청도 후원 철회 의사를 알렸다.

김영미 어린이책시민연대 강사부장은 6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어진흥원 측은 지난달 16일 독서시민연대와의 만남 이후 관련 기사나 KBS 입장에 대한 반박자료 등을 보며 논의를 많이 했고, 독서에 대한 인식을 좀 달리하게 됐다고 말했다”며 “(<어린이 독서왕> 폐지는) 어린이날을 맞은 아이들에게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미 강사부장은 “KBS <어린이 독서왕> 대회 계획을 세운 관계자들, 교육청 담당 장학사, 학부모와 교사들이 어린이와 독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기를 기대했다”며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지만 지금이라도 KBS가 폐지를 결정해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방향이 정해진 프로그램을 어린이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친구들과 사귀는 시간을 더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사회가 어린이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살 권리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KBS <어린이 독서왕>은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KBS 한국어진흥원에서 선정한 도서를 읽게 한 후, 책 내용 숙지 여부를 시험을 통해 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예선, 본선 등 몇 단계의 시험을 거친 어린이들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풀어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또한 이건희 회장 등 재벌을 미화하는 내용이 도서도 포함돼 있어 ‘선정 도서 부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독서까지 경쟁시킨다’, ‘아이들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게 할 자유를 뺏는다’ 등 교원·학부모·독서·어린이 단체 등의 항의가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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