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장르 가운데서 오페라는 여자의 신분이 얼마만큼 제한되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르다. 굳이 <라 트라비아타>의 웃음을 파는 여인 춘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오페라에서 여자의 신분이 얼마만큼 제약이 심한가를 보여주고 있던가. 오페라가 쓰일 당시의 시대관은 여자에게 특별한 직업이 주어지지 않는 한 결혼을 통해서야 여자의 신분이 남자의 신분으로 상승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금 나와라 뚝딱>은 이런 오페라의 세계관을 드라*마에서 구현하고 있다. 드라마에서의 신분 상승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격으로 출중한 직업을 통해 성공의 입지를 다지는 방식의 신분 상승이 아니다. 오페라나 혹은 <청담동 앨리스>처럼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은 상류층과 사돈이 되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와 가족의 신분 상승

만일 박현태(박서준 분)가 상류층 자제가 아니라면 정몽현(백진희 분)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기 바쁜 박현태와 결혼할 당위성은 없어진다. 곧 결혼할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연애질에 정신 팔린 플레이보이가 상류층 진입이라는 사다리가 아니라면 박현태 같은 플레이보이는 결혼상대로는 빵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정몽희(한지혜 분)는 동생의 결혼을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21세기판 심청’이다. 몽희가 하기 싫었던 일은 박현수(연정훈 분)의 사라진 아내 유나(한지혜 분)을 대신하여 유나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일이었다.

한두 번만 대신하면 될 것을 계속하여 유나의 대역을 하는 건 동생의 혼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수에게 일억 원을 빌린 탓이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팔려가는 것을, 드라마는 동생의 혼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언니가 하기 싫은 대역을 해야 하는 고충으로 변주하고 있다.

<금 나와라 뚝딱>은 분명 <귀여운 여인>과 이를 모사한 <그림자 애인>을 드라마로 변주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중산층 여자 혹은 거리의 아가씨가 상류층 남자를 만남으로 인생의 전환기가 마련된다는 모티브로 본다면 말이다. <금 나와라 뚝딱>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함의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개인적 신분 상승의 의미만 내포하고 있지만은 않다.

신분 상승을 위해 21세기 버전 인당수에 빠지는 몫은 몽희 혼자만의 몫은 아닐 듯하다. 몽현 역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플레이보이와 결혼을 강행하는 건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오를 수 있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놓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발로다.

동시에, 자신의 결혼이 식구 모두의 신분을 동반 상승시키는 정략적인 의미를 담는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결혼은 하지 못할망정, 결혼을 통해 식구가 덩달아 상류층과 사돈이 되는 신분 상승효과를 몽현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몽희와 몽현 자매 모두는 동생을 위해, 혹은 가족 모두가 신분이 상승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결혼을 위해 자신들의 가치관과는 상반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심청 자매임에 분명하다.

돈도 벌고 복수도 하고

그런데 몽희가 사라진 유나의 대역을 연기해야 하는 당위성이 하나 더 생겼다. 애초 몽희는 유나의 그림자 역할은 다시는 하기 싫다고 현수에게 큰소리 칠 정도로 끔찍하게 생각하던 여자다. 그런데 현수의 제수인 성은(이수경 분)에게 복수하기 위한 명분이 하나 더 첨가된다.

지난 시절 성은은 몽희가 사랑하던 남자를 빼앗은 연적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몽희가 유나인 척 연기할 때, 성은에게 "서방님 만나기 전에 특별히 사귀던 사람은 없었고?" 혹은 "동서처럼 얌전한 척하는 여자가 이야기를 들으면 밤잠 편히 잘 수 있겠어? 하지만 소문이라는 건 말이야,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동서 귀에까지 들어가는 날이 있지"라는 독설을 서슴없이 날리는 건 평소 몽희의 다정다감한 성격과는 상반된 태도다.

이로부터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몽희가 현수 아내를 연기하는 건 동생의 혼수 자금 마련을 위해 연기하는 것이지 아내가 없어진 현수를 위한 자선봉사가 아니다. 몽희가 유나의 대역을 하는 와중에 과거 사랑의 연적인 성은에게 태클 거는 건 현수에게 돈을 받으면서 복수도 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이중 혜택을 의미한다. 몽희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복수도 하는 특이한 캐릭터를 구축한다.

반면 성은은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난다’는 격언을 몸소 겪을 캐릭터다. 몽현과 몽희의 어머니 윤심덕(최명길 분)에게 사사건건 태클 거는 걸림돌인 성은이 시월드에 입성하면 반대로 유나의 대역을 연기하는 몽희에게 어떤 태클을 당할지가 궁금해지는 성은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핑퐁 게임은, 심덕과 몽희에게 준만큼 몽희에게 혹독하게 된서리 취급당할 제로섬 게임이자 동시에 유나를 연기하는 몽희에게 복수당하는 희생양이 될 것을 암시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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