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환경이 변화하면서, 더 이상 시청자들의 리모콘이 지상파 채널에만 머무르지 않는 시대가 됐다. 비록 시청률은 낮아도, 화제성 파급력 등에서 비지상파 프로그램의 '활약'이 눈부시다. <미디어스>는 지상파 방송에서 볼 수 없는 '도발적' 프로그램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꿀재미" "본방사수" "요새 유일하게 챙겨보는 건 썰전 밖에 없다" "썰전이 공중파로 나왔음 좋겠다"

요새 한창 인기몰이 중인 JTBC <썰전>에 대해 SNS 이용자들이 남긴 감상평 가운데 일부다. 비록 시청률은 1%대 밖에 안되지만, 방영 다음날 포털사이트에서 쟁쟁한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TV교양 일간 검색어' 2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성이 높다.

▲ JTBC <썰전>

'시청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독한 혀들의 전쟁'(목요일 저녁 11시 방송). 이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강용석-김구라-이철희 삼각구도에서 나오는 아저씨들의 깨알같은 수다는 전두환 억대 경호, MB 테니스 논란, 국정원 댓글사건과 같은 각종 시사 관련 이슈들을 감칠맛나게 버무려 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MB테니스 논란에 대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잘못했으면 사과라도 해야 하는데, 이게 뭐야?"라고 직격탄을 날리면, 왕년에 친이계였다던 강용석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과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이 전 대통령을 감싼다. 이때 화면 하단에 뜨는 자막은 '사건에 따라 입장이 너무 다른 강변'.

MC 김구라는 "이런 거 좀 치지 말고 동네 어르신들하고 게이트볼 치면 좋잖아" "(MB를) 강호동의 우리동네 예체능에 추천한다"며 특유의 개그와 화법으로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토크'를 정리해 낸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수사는)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네 엄마는 아니다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어법이 왜 생기냐면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이철희)라며 각종 썰들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민감한 이슈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침묵 속에 갈 길을 잃은 시청자들은, (비록 종편이라는 게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들의 통쾌한 돌직구에 짜릿함을 느낀다. 허지웅-강용석-김구라-박지윤-이윤석이 나오는 '예능심판자' 역시 '종편이 종편을 말하다'를 방송하는 등 방송가 이슈들을 성역없이 '턴다'.

거침없는 혀들의 전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이 목말라 하는 지점을 정확히 공략한 예능PD의 감각 덕분이다. '비지상파'라는 환경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 김수아 PD
스스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예능PD"라고 표현한 김수아 <썰전> PD는 지난달 26일 <미디어스>와 만나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나 시사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제가 볼 때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을 정도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도발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려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 예능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건 다 나온 것 같더라구요. 연예인 토크, 리얼리티, 이제는 힐링까지. 다큐에서 다뤘던 분야조차 예능프로그램이 진출했잖아요. 원래 토크쇼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했는데, 더 이상 연예인 토크쇼는 뚫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어요. 게스트 없이도 할 수 있는 '아저씨 토크'를 생각했는데, 아저씨들은 정치와 뉴스에 관심이 많으니까 주제로 삼은거죠. 정치적으로 뭘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매회 강도높은 발언이 나가고 있지만 방송 이후 항의가 들어오거나 수위가 높아서 편집한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까지는 자유롭게 제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두분(강용석-이철희)이 하는 센 발언이라는 게, 사실 저희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수위의 이야기들 아닌가요? 수위가 높다고 해서 편집하진 않아요. 재미없어서 편집된 건 많지만.(웃음) 어제도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다룰 때 시청률이 가장 높더라구요.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은데, (기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풀어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김수아 PD는 "썰전을 시사토론 프로그램으로 (심각하게) 접근하는 것은 싫다. 토크쇼 중 하나인데, 다루는 주제 가운데 뉴스가 포함돼 있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두분(강용석-이철희)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강변과 이철희 소장님 중 한 명이 상대방을 몰아붙였다고 해서, 제작진이 누구에게 압력을 넣은 건 절대 아니에요. 두분 모두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고 안좋은 날도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것도 있는 그대로 다 살리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강변쪽 의견을 가진 분들은 '강변한테 압력이 들어왔다'고 보시기도 하더라구요. 이런 우려들이, 오히려 두분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실, 김수아 PD는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해피선데이, 천하무적 토요일, 스타골든벨 등을 맡았던 잔뼈굵은 KBS PD출신이다. 김 PD는 '1박2일'을 기획한 김시규 KBS PD(현 JTBC 예능국장) 등이 JTBC로 옮기던 2011년 8월 함께 JTBC에 둥지를 틀었다. 10년동안 일해온 안정적인 직장에서 신생매체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 PD는 "(KBS에 있을때) 제가 잘은 몰라도, 방송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기운을 조금씩 받았었다. 몇년 전부터 방송시장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KBS 안에만 있으면 그걸 잘 실감 못한다"며 "KBS를 나오면 왠지 더 재밌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특히, "평소 김시규 국장님을 매우 능력있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 분이 헤드로 있는 파트라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 좋은 환경일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맞는 것 같다"며 "만약 KBS에 있었다면, 썰전 기획안 자체가 통과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JTBC로 옮긴 지 1년 정도는 "정신도 못차리고 힘들었다"던 김 PD는 "JTBC는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바깥의 터치를 전혀 안받게 해주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만족한다"고 한다. 김 PD가 말하는 '바깥의 터치'란 소위 '정치적 외압'이 아니었다.

"KBS에서는 시즌마다 '관제쇼'라는 걸 해야 해요.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이 승진을 하고, 그런 분들이 윗선으로 올라가면 또 (관제쇼와 같은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죠. 예능 PD로서 답답한 게 있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어디 갔다가 돌아오면 축하쇼도 해야 하고, 경찰의 날이면 또 뭔가를 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되게 자연스럽게 이뤄지죠. KBS니까, 어떻게 보면 해야만 하는 일일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본래의 업무 외에) 신경쓸 게 많았던 KBS와 달리, 여기는 만들고 싶은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하면 되죠."

KBS와 달리 스튜디오, 카메라 등 모든 게 부족한 제작환경. 그 가운데서도 김 PD를 제일 답답하게 했던 것은 '시청자들의 낮은 호응'이었다. 김 PD는 "저희들은 시청자들의 리액션을 받으면서 성장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답답했다"면서도 종편 출범 초반에 '깰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지상파 방송과의 격차가 이제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콘텐츠만 좋다면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플랫폼이 크게 중요치 않은 시대가 됐다는 것. 실제, 지상파3사가 야심차게 배치하고 있는 저녁 11시대 예능은 모두 한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상파가 종편이나 케이블처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상파에는 어느정도 지켜야 할 선 같은 게 존재하니깐요.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이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어요. 콘텐츠가 소구력이 있다면,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점점 더 보게 될 겁니다. 저녁 11시대 시청률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상황이 됐어요. 앞으로, 이 격차도 좀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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