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김종국 호'가 출항했다. 곳곳에 널린 암초를 피해 안전한 항해가 가능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선장의 몫이다. 다시 말해, 김종국 MBC 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의 행보를 따를지 아니면 MBC 정상화에 기여를 할지는 본인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10일에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진 MBC 본사의 이사 선임 문제, 9일에 MBC 아카데미에서 돌아오게 되는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에 대한 부서 배치, 5월 중순까지는 완료될 MBC 감사, MBC 지역사·관계사 임원 선임 등이 김 사장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김종국 MBC 신임 사장ⓒ뉴스1

시험대 ① 김종국의 첫 인사, MBC 본사 이사 선임

오는 10일 방문진 임시 이사회가 열린다. 이날 이사회에는 MBC 본사 이사 선임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고 김종국 사장의 첫 인사이기에 MBC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MBC 이사는 김종국 사장, 안광한 부사장, 이우철 디지털본부장,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4명이다.

'김재철 체제'에서 핵심 요직에 있었던 안광한 부사장,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의 거취를 통해 김종국 호의 향후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이 MBC 이사로 재선임되는지 여부로 김종국 사장의 '의중'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방문진의 한 이사는 3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장 선임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를 보좌할 본부장 선임도 매우 중요하다"며 "김종국 사장이 김재철 인사라고 비판을 받는 상황이지만 그가 본부장, 국장, 부장 등 주요 보직에 어떤 사람들을 배치하느냐가 향후 MBC 내부의 분위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이사는 "김종국 사장은 '김재철 사장과는 공적인 관계일 뿐'이라고 밝힌 만큼 보직 간부 인사를 통해 그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재철 시즌2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험대 ② '신천 교육대'에서 돌아오는 18명의 조합원들

9일이면 '신천교육대'라고 불리는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 18명이 돌아온다. 지난 2월 김재철 전 사장은 2월 9일자로 이들에게 교육발령을 냈고, 3개월 뒤인 오는 9일 이들의 교육일정은 마무리된다. 앞서, 안광한 MBC 사장직무대행은 MBC아카데미에서 돌아온 기자들을 신설된 '보도전략부'에 배치하고 라디오 PD들을 '야간MD'까지 부활시켜 일선에서 배제했다. 안광한 사장직무대행의 결정은 법원 취지에 어긋나는 배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종국 사장이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들이 일선에 배치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유배된 조합원'들에 대한 김종국 사장의 '선택'이 '해고자 복직'에 대한 그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는 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언련, 언론연대, 언론노조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종국 사장은 부당 해고된 언론인들과 유배된 조합원들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조합원들의 빠른 복귀를 촉구했다.

시험대 ③ 또, 지역사 낙하산?

5월 중순 전에 완료될 것으로 관측되는 MBC 지역사·관계사 임원 선임 문제도 김종국 사장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김재철 전 사장이 지난 3월 해임된 결정적인 이유도 방문진과의 조율 없는 지역사·관계사 임원 선임 때문이었다. 당시 김재철 전 사장은 자신의 측근을 중심으로 지역사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다. 대표적으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은 부산MBC 사장으로 내정해 언론노조 부산MBC지부 조합원들의 큰 반발을 샀다.

서울 중심의 정책을 강조했던 김재철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김종국 사장도 스스로 "지역사보다 본사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밝힐 정도로 서울 중심의 사고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전MBC 사장으로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본사 사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낼 만큼 그의 '서울 우선주의'는 내부 구성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지역 MBC의 한 구성원은 "현 부산MBC 사장도 부산 MBC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부산MBC가 아닌) 서울의 이익만을 대변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에 '투쟁'을 하게 된 것"이라며 "그러나 서울 MBC의 경영진들은 이런 노사의 갈등을 '(부산MBC 출신이 아닌) 낙하산을 내려보내도 되겠다'는 의미로 오인했다. 이 지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구성원은 "김종국 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지역사 사장을 구성할까봐 두렵다"며 "작년에 정관이 개정되면서 서울 중심의 이해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본사 경영진들이 보여왔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MBC 관계회사부가 지역MBC에 IPTV협상권 위임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역의 특색을 강화할 수 있는 사장이 선임되는 것이 지역사 구성원들에게 가장 중요하며 그렇게 돼야만 지역사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험대 ④ 겸임 사장 임명, 통폐합 가능성은?

낙하산 문제뿐 아니라 겸임 사장 임명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이 취임 후 창원과 진주, 강릉과 삼척, 청주와 충주 6개 지역사에 3명의 겸임 사장만 임명했다. 김종국 사장은 당시 진주·창원 MBC 사장으로서 통폐합을 추진하는 데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언론노조 진주MBC지부 조합원들에게 중징계를 남발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진행된 통폐합이었으나, 정작 MBC경남의 경영 성과는 저조했다.

MBC 관계자는 "지역사 선임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겸임 사장을 임명하느냐일 것이다"라며 "임기가 10개월 불과한 상태에서 통폐합을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가 연임이 된다면 통폐합 문제를 또다시 들고 나올 수 있다. 김종국 사장은 MBC경남을 업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역시 노보를 통해 "강제통폐합 이후 서울MBC와 지역MBC간의 논의 구조는 더욱 수직적으로 변했다"며 "창원-진주에 이어 추진된 강릉-삼척, 청주-충주 통폐합 과정에서 지역민과 구성원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됐으며 상명하복만이 강요됐다. 작년에 이뤄진 지역MBC이사회와 주총 정관 개정은 그나마 남아있던 지역MBC의 손발을 자른 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MBC본부는 "자율경영과 책임경영, 그리고 논의구조와 협조체제 회복이라는 '정상화'를 위해서는 서울 MBC 이사들이 지역 MBC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만든 정관을 바로 잡아야 하며 경남MBC 강제통합의 실패를 더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통폐합 이후 지난 1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밀실에서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하는 구조가 아닌, '사장추천위원회'와 같은 공적 논의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지역사 사장 선임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시험대 ⑤ '총체적 부실' MBC 감사, 해결할 수 있을까?

언론노조 MBC본부는 2일 노보를 통해 "김재철 사장 해임 이후, 법적으로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임진택 감사는 '김재철 감싸기'로 일관해왔고 민감한 감사가 본 궤도에 오를라치면 해당 직원을 가차 없이 다른 부서로 보내버렸다"라며 "열 명 남짓한 감사실 인원 가운데 4명이 이같은 인사이동 대상이 됐고 업무는 마비됐다"고 지적했다.

노보에 따르면, MBC 감사실은 울산MBC가 제작해 전국 방영된 드라마 <욕망의 불꽃>과 관련된 회계 장부에서 세트장 건설비 26억 원이 시공사로 입금됐다가 곧바로 2억 3천만원이 드라마 제작을 맡았던 특수목적회사 SPC로 돌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리베이트 관련 배임 혹은 횡령, 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울산MBC 사장과 임진택 감사와의 만남 이후, 현재까지 감사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되레 이 건을 감사하던 감사실 부국장은 다른 곳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MBC 안팎에서 'MBC 감사가 무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MBC 감사 결과는 지난 2월 감사원으로부터 "엉터리 감사"라고 질타 당했을 정도로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들은 이 밖에도 많다. MBC본부는 작년 1월, MBC본사가 주최한 한류 패션쇼에서 기대와 달리 적자의 폭이 컸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계약직 직원 이모 씨가 김재철 사장과의 친분으로 책임과 징계를 면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K.I.S.S'라는 이름으로 열린 한류 패션쇼는 당초 흑자를 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이는 창사 이래 단일 사업 가운데 38억 원의 적자를 본 '엠빅 월드 어드벤쳐' 다음으로 최고의 적자였다. 이 건을 기획하고 진행한 사람은 계약직으로 고용된 이모 씨(같은 인물)였지만 김재철 전 사장과의 '인연'으로 그는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외려 항공료 등 출장비를 MBC가 보전해 물의를 빚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감사의 선임뿐 아니라, 감사 자체도 총체적인 부실로 이뤄졌다"며 "자칭타칭 '사장 친구'라는 사람들은 수시로 '특채'돼 갑자기 큰돈을 만지는 자리 요소요소에 배치됐다"며 "MBC 정상화의 많은 과제 가운데 첫 단추로 지난 3년간 벌이진 일들에 대한 '전면 감사'를 감히 첫 번째로 올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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