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등이 아무리 과장하고 떠들어도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설사 겉으로 약간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있어도 실제 수입과 검역 및 유통 등의 과정에서 지켜지리란 보장이 전혀 없다. '담보장치의 작동'에 관한 '실효적인 담보장치'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만의 평가는 아니다.

이제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나 관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일반 국민들이 이번 추가 협상은 실질적으로 얻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눈속임이라는 것을 잘 안다.

▲ 경향신문 6월 20일자 1면

그래서 국민들이 촛불을 끄지 않는 것이다. 촛불 시위 참가자들이 이제 지칠 때도 되었건만 촛불을 끄지 않고 주말 집회에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것은 바로 추가협상의 실상과 실체를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결과는 사실 처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고, 상당수 국민들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미국의 국익을 뛰어넘는 한미동맹은 없다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관계의 본질과 실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관계의 기본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추가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19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선 미국의 국익과 한미동맹과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미국의 국익분류 방식과 기준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워터게이트(Watergate) 도청사건에서 거짓말만 하지 않았으면 닉슨 대통령은 탄핵 위기 앞에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닉슨의 불명예 퇴진에도 불구하고 그는 퇴임 후 국제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며 뉴욕타임스 등에 고정적으로 기고하기도 하고 많은 국제관계 서적을 저술하기도 했다. 키신저라는 뛰어난 외교 참모가 있었지만 닉슨 스스로가 전략적인 사고를 갖고 접근하지 않았다면 당시 중국(당시 중공)과의 수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 한겨레 6월 20일자 4면

닉슨이 1992년 출간한 "순간을 포착하다(Seize the Moment)"는 제목의 저서에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기술하고 있다.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 공화당이 집권하건, 민주당이 집권하든, 아니면 같은 당 안에서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의 국익에 대한 분류 기준이다.

미국의 국익의 3등급: Vital, Critical, Peripheral

닉슨 전 대통령이 앞에서 말한 저술에서 이를 일목요연하게 분류, 정의(定意)하고 있다.

첫째가 미국의 존립이나 안보(security)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정도의 중차대한 이익(vital interests)이다. 'vital'은 글자 그대로 '생명에 관계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 볼 때 'vital signs'부터 체크하는데 호흡, 혈압 그리고 맥박 등이다. 이 세가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생명이 바로 위태로운 것이다.

미국의 국익 중 어떤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까? 닉슨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역의 경우, 서부 유럽, 일본, 캐나다, 멕시코, 중동(걸프) 지역의 존립과 독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감스럽게도(?) 미국과 '혈맹관계'에 있는 한국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과 관련된 문제 중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북한 핵문제다. 닉슨은 개발도상국가들 중에서 잠재적 침략자들이 핵무기를 획득하는 것을 막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적고 있다.

미국은 이런 중차대한 이익이 위협 받을 때 이를 물리치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적고 있다.

그 다음, 한 단계 아래가 '대단히 중요한 이익(critical interests)'이다. 'critical'이란 단어는 사람이 위독할 때, "He is in a critical condition"과 같이 쓰고, 물이 끓는 등의 임계점을 critical point, 임계량을 critical mass 등으로 표현한다.

한미동맹 불구, 미국은 한국관련 모든 문제를 'Vital Interests'로 보지 않아

닉슨의 정의는 이렇다. 어떤 이익을 잃을 경우, 그것이 앞에서 언급한 'vital interests' 중의 하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때라고 말한다. 지역적으로는 중앙아메리카나 한국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닉슨은 말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소련의 스파이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열렬한 공산주의 반대자가 되었던 휘태커 챔버스(Whittaker Chambers)의 말을 인용하여, 한국에서의 전쟁은 한국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에도 해당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안전보장은 미국의 'vital interests'인 일본의 안전보장에 직결되므로 중요하다는 식이다.

세번째 중요한 이익이 'peripheral interests'이다. 닉슨은 안보와 관련된 이유 외에도, 민주주의 국가들의 생존,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번영과 발전, 민주적인 제도의 확대 발전 등에도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고, 가령 한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민주주의 체제들이 위협 받을 때 필요하면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국가이익을 냉혹하게 구분하고 이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고 대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나 우리 보수세력들이 하는 것처럼,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수사적인 표현에 매몰되거나 도취되어 국익을 그르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쇠고기협상은 원칙적으로 별개의 문제

한미동맹은 동맹이고 쇠고기 협상은 쇠고기 협상인 것이다. 단순히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카트 같이 타고 몇시간 함께 지냈다고 해서 부시나 미국정부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지 한국의 국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외교가에서는 "강대국에게는 국제법이 필요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상대적으로 약자인 나라는 국제법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와 뭉치고, 견제와 균형의 전략과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지와 자세 그리고 원칙이 중요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미국 정부가 동물성 사료에 대한 규제 조치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화한 사실이 드러났으면, 국제법상 통용되는 '상황변경의 원칙(the doctrine of rebus sic stantibus)'과 비엔나 국제조약법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상의 관련 조항(49조: 위계; 62조: 중대한 상황변경)을 들어 쇠고기 협상의 파기 혹은 취소 등을 무기로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했어야 한다.

미국 같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을 상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한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려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미리 주눅들 필요도 없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일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단들을 쓰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중요한 외교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 때 "너 죽고 나 죽고 모두 죽자(You die, I die and all die)"는 전략을 구사한 북한의 외교를 세계 13대 교역국이자 대외 경제의존도가 70% 이상인 우리나라가 그대로 답습할 수 없으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단들을 쓰겠다는 의지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지만, 1년에 미국에서 사들이는 무기수입액이 도대체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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