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김재철 전 사장이 떠나자 여의도 술집이 가득 찼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김재철 전 사장의 전횡을 몸소 겪은 MBC 사람들에게 김재철 사장 해임 소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차기 사장이 '김재철 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서다.

2일 MBC 사장 후보 최종 1인이 결정되는 가운데, MBC 안팎으로 증폭되고 있는 우려는 무엇보다 김종국 대전 MBC 사장과 안광한 MBC 부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의 사람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김재철 라인으로 분류될까? 그리고 김재철 라인은 무엇이 문제일까?

김재철 라인 공통점, 노조 죽이기

김재철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언론노조 MBC본부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김종국 사장은 '노조 탄압 전문가'로 꼽힐 만큼 악명이 높다. 현재 김종국 사장은 여당 이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차기 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국 MBC 사장은 2010년 3월 진주·창원 MBC 겸임사장을 맡은 이후 두 지역사의 통폐합을 주도하면서 정대균 전 언론노조 진주 MBC 지부장을 해고했다. MBC 경남이 출범한 시기인 2011년에는 13명의 사원들에게 해고, 정직, 감봉과 같은 중징계를 내렸다.

같은 해 3월에는 진주·창원 MBC 통폐합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MBC 진주지부 조합원 및 일부 간부에 대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노조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언론에 무작위 배포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현재는 조합원들이 김종국 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에 있다.

김종국 사장이 밖에서 전횡했다면 안광한 부사장은 김재철 사장 밑에서 그를 도우며 MBC본부 조합원들에 징계를 남발했다.

안 부사장은 최승호 전 MBC PD와 박성제 전 언론노조 MBC 본부장의 인사위원회 재심 때 위원장을 맡아 원심(해고)을 확정하는데 일조했다. 또, 70여 명 조합원들의 대기발령도 안 부사장이 주재한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최근에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복귀한 기자들을 신설 부서인 '보도전략부'에 배치하고 라디오 PD 3명을 '야간 전담 MD'를 맡게 해 법원의 취지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재철 전 사장을 포함한 '김재철 체제'에서의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조합과의 갈등을 대화나 협상을 통한 조정보다는 자신의 '자리'에서 비롯된 인사권, 즉 해고와 같은 중징계로 풀고자하는 욕망을 언제나 드러냈다.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들이 과거 MBC에서 공유했던 경험들을 되짚어 보면 노조에 대한 반복되는 탄압은 그들이 젊은 시절 타도하고 싶었던 '그것'의 탄압 방식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재철 라인'의 과거…92년 '50일' 파업 투쟁

필자는 김재철·김종국 등 김재철 체제의 대표적 인사들이 참여했던 92년 파업의 기록을 돌이켜 봤다. 새언론포럼에서 발간한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을 참고했다.

MBC 노동조합의 1992년 50일 파업투쟁은 지난해 170일 파업투쟁이 있기 전까지 MBC에서 최장기 투쟁으로 기록돼 있다. 80년대 말부터 MBC는 노사 합의된 추천권 등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부인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던 공정방송협의회도 거부하는 등 갈등을 자초했다.

공영성을 보장하는 제도가 허물어지자 방송은 5공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1990년 9월 <PD수첩>의 <농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편이 사장에 의해 방송 몇 시간 전에 불방이 결정됐고 1991년 1월부터 인기리에 방송되던 대하드라마 <땅>이 일방적인 지시로 중도하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에 우호적이고 편향적인 보도가 계속되던 것 역시 당연지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MBC 노동조합은 MBC와 1992년 5월 교섭을 갖게 됐는데 노사 양측은 추천제, 공정방송협의회 등 공정방송 관련조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측은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고 노조는 결사 반대 의사를 표했다. MBC는 교섭의 과정에서 3년 전의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고 노조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인상 지급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결국 MBC노동조합은 9월 1일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김재철, 손석희, 김종국, 한선교, 이진숙 등 50일 파업 참여

파업이 진행되던 상황 속에서 MBC는 노조 간부와 조합원 15명을 업무방해 및 노동쟁의조정법 등 위반으로 9월 19일 고소했다. 3일 뒤 검찰은 이들에 소환을 요구했고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이 타결될 때까지 검찰소환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30일까지 노사 대화의 결실이 없을 경우 강제구인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30일까지 단체교섭이 지지부진하자, 10월 2일 공권력이 MBC에 투입됐다. 전경 8개 중대 1000여 명은 여의도 MBC본사를 에워싸며 MBC 노동조합을 압박했고, 5개 중대 600여 명이 사내로 들어와 노동조합과 대치했다. 그 사이 경찰은 MBC가 '쟁의주도 혐의'로 고소한 노조 간부 11명을 연행했다.

연행된 11명에는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손석희 교수(당시,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 김종국 대전 MBC 사장(보도부문 부위원장), 최용익 전 MBC 논설위원(전 사무국장) 등이 포함돼 있었다. 수의를 입은 손석희 교수가 손이 묶인 채 웃고 있는 사진은 현재까지도 92년 파업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김종국 사장도 강제구인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김종국 사장은 MBC 노조위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노동조합에 힘을 기울였다. 이 파업은 KBS와 CBS 등의 방송사를 비롯해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 확대될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고 전한다. 파업은 10월 21일 MBC에서 이뤄진 노사 양측의 최종 협상을 통해 끝이 났다.

김재철 전 사장은 당시 보도국 조합원으로 참여해 거리에서 파업 선전물을 돌렸고 이진숙 MBC 기획조정본부장도 조합원으로서 파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언론장악'의 주역 중 하나로 꼽히는 한선교 새누리당 국회의원, 백지연 앵커 등도 92년 50일 파업에 참가해 공정방송 수호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되질 않는 '김재철 라인'의 투쟁기였다.

자리에 눈 먼 기회주의자들의 모습

혹자들은 '노동조합 집행부는 회사 임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코스를 밟아 임원이 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투쟁'이라는 경험은 희생적 결단을 필요로 했고 참여한 이들은 투쟁의 성과로써 사회적 훈장을 받곤 했다. 이런 코스가 당연시될 만큼 독재 정권에서 비롯된 한국사회의 폭압적 사회 구조는 많은 이들을 핍박하며 체제를 유지했다.

방송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87년 꿈에 그리던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새 정부는 군부 정권의 연장과 다름 없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갈증이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92년의 열망은 MBC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발현됐다.

현 김재철 라인들이 92년에 외치던 공정방송 쟁취와 20년 뒤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외친 공정방송 쟁취는 다른 것이었을까? 질문의 답은 '김재철 라인'만 알 테지만 세월이 흘러 사장직이라는 훈장을 단 이들은 그들이 타도하고 싶던 MBC 모습을 철저하게 답습하며 공영방송사를 망가뜨렸다.

20년의 세월 속에서 이들이 변모한 이유와 무관하게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자리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책임' 대신 MBC 사장직 '도전'을 선택한 김재철 라인. 훗날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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