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인 2012년 11월 20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에서 열린 지방분권 촉진 전국기초광역의원 결의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뉴스1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은 앞다투어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이 원한다는 명분 하에 이 약속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기득권 내려놓기’의 과정으로 포장되었다. 특히 당시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중심으로 이해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 담론에 대처하기 위해 앞다투어 이런 종류의 정책들을 남발했다.

그러나 정당공천권이나 중앙당을 축소하는 등 정당의 역할을 제한하는 정책들이 과연 정치개혁에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나온다.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의 주최로 지난 29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지하1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기초단체·기초의회 정당공천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토론회는 2명의 주제발표자와 4명의 토론자의 견해를 소개했다. 주제발표자는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김영태 교수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고경훈 수석연구원이었다. 토론자는 성신여대 법학과 정연주 교수, 고려대 행장학과 최흥석 교수, 신라대 국제관계학과 강경태 교수, 원광대 행정학과 서휘석 교수 등이었다. 크게 나누면 주제발표자 중 김영태 교수와 토론자 중 정연주, 강경태 교수가 폐지 반대론자였고, 주제발표자 중 고경훈 연구원과 토론자 중 최흥석 서휘석 교수가 폐지 찬성론자였다.

논의는 물론 현재의 지방자치 제도가 중앙 정당의 개입 속에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현실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현실태를 개선하는 방안이 정당공천제 폐지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가장 강력하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법학 전공의 토론자 정연주 교수였다.

정연주 교수는 헌법 제8조 1항을 근거로 우리 헌법에서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정당을 통해 이루어내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기능적 권력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인 지방자치에서 정당을 통한 정치형성기능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정교수의 논지에 따른다면 설령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 한들 위헌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 그는 비례대표의원제도의 존재 자체가 정당투표를 통한 정당의 개입을 전제하는데, 정당공천제를 없애면서 어떻게 비례대표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토론회에서 사실상 정당공천제 폐지의 관점에선 고경훈 연구원 역시 정연주 교수의 주장을 일부 긍정한다. 그는 “원래 나는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란 제목으로 발제문을 쓰고 싶었는데 우리 헌법에서 정당공천이 생각보다 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문제점’으로 고칠 수밖에 없었다”며, “정 교수의 헌법 8조1항 해석이 조금 과도하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우리 법률 체계에서 정당공천이 기본이라는 전제 하에 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경훈 연구원은 발제문에서 해외의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도에 대해 폭넓게 다뤘는데, 이중 지방선거에 중앙당의 공천을 금지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의 사례는 미국 정도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는 중앙당의 지방자치 개입의 폐해가 보이거나(영국, 프랑스), 지역당이 따로 존재하거나(독일), 무소속이 폭넓게 당선될지언정(일본) 정당의 지방자치에 대한 개입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정당공천제 찬성의 관점에서 발제문을 쓴 김영태 교수의 주장의 핵심 역시 “정당을 표방하지 않고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듯 정당을 표방하고 선거에 출마할 자유도 마땅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당공천제의 문제는 대체로 중앙당의 지방자치에 대한 지배나 지역독점 구조에서 특정당의 지역의원이 지방자치 후보들을 ‘줄세우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완화될 수 있다거나, 정당공천제 폐지가 지방자치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토론회에서 폐지의 입장에선 고경훈 연구원의 정책대안에도 역설적으로 ‘지역정당의 허용’이 그중 하나로 들어가 있는 등, 결국 지방자치에 대한 정당의 개입은 근절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현행의 문제점들을 줄이도록 방법을 개선할 수 있을 뿐이다.

또 토론자 정연주 교수의 지적처럼 현행 정치문화와 유권자의 의식 수준을 그대로 둔 채 제도만 다르게 바꾸면 온전한 지방자치가 기능할 거라는 ‘제도결정론’적 태도로 추구할 수 있는 개혁은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불신과 불만을 받아들이는 정책대안은 적어도 정치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어야지 함부로 정치의 공간을 줄이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럴 때에 그 ‘정치개혁’은 오히려 유권자들을 시장의 정글자본주의 속으로 내모는 역설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정치’와 ‘소통’과 ‘기득권 내려놓기’의 수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치혐오의 포퓰리즘’에 휩쓸리는 것과 정치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대의하는 것의 차이와 거리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토론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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