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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압박, 헌법에 나와 있다![안영춘] '언론 자유'와 '집회 자유'에 관한 단상 ②
안영춘 기자 | 승인 2008.06.23 22:25

5년 전 대통령과의 '검사스런' 대화로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자료집을 빛냈던 대한민국 검찰이 다시금 자료집의 금문자에 불광질을 하고 있다. 비난과 성토는 어찌됐든 참아내도 조롱 앞에서는 파르르 떠는 게 권력기관의 속성인데, "나 잡아봐라"하며 대거리하는 누리꾼들 앞에서, 추상같던 사정기관의 위엄은 서릿발 맞고 참새에 쪼이는 허수아비보다 남루하다. 이제 '검사스럽다'의 개념은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에서 "논리 없는 남의 주장을 대신해주고 실컷 욕먹다"로 진화하고 있다.

제품값에 광고비가 포함된다는 건 '상식'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제품값을 따지는 건 보행자 신호가 들어올 때 무리지어 건너는 '횡단보도 시위'보다 명백한 '준법'이다. 1998년 영국 국제개발부 클레어 쇼트 장관은 500대 기업 대표들에게 공한을 보내, 사내 자판기에서 초국적기업 커피 대신 제3세계 농민들에게 제값 주고 산 '공정무역'(fair trade) 커피만 팔도록 했다. 검찰과 일부 신문의 '글로벌 스탠더드'한 논리대로라면, 일국의 장관이 업무방해를 한 셈인가?

   
  ▲ 검찰청 웹사이트 '국민의소리'에 조중동 광고 중단 소비자 운동 수사에 항의성 '자수' 게시글이 쇄도하고 있다.  
 
얼마 안 남은 위엄이라도 지키려면 '업무 방해' '협박' 따위 헐거운 형법 논리를 들이대느니, 가치 논쟁을 벌이는 게 차라리 낫다. "광고주 압박은 언론 탄압"이라는 이달 초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주장은 그나마 언론 자유의 본뜻을 되돌아볼 작은 빌미라도 주지 않는가 말이다. 과거 신문 절독운동 때도 대응논리로 써먹었던 진부한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김 고문의 주장은 광고주 압박 운동과 신문 절독운동이 헌법 21조와 관련해 하나의 쟁점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김 고문은 동명이인 대통령이 언론사를 세무조사 할 때부터 줄기차게 언론 탄압에 맞서는 언론 자유의 전도사 노릇을 자처했다. 그 전엔 어땠을까? 그의 말마따나(8일 조선일보 인터넷판 특별기고) 30여 년 전에 "정치권력이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도록 협박해서 동아일보를 죽이려 했었"지만,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조선일보는 최소한의 사실보도조차 외면했다"고 회고한다. (<한겨레> 10일치)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언제부턴가 헌법 1조의 '국민' 가운데서도 특정집단에 의해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특정집단은 다름 아닌 몇몇 신문기업과 현실 정치권의 한 축, 그리고 걸핏하면 거리에서 마이크를 빼앗고 멱살잡이를 하는 관광버스 애호 단체들이다. 이들의 수많은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언론 자유'라는 말만 꺼내도 '친북·용공·좌파·빨갱이'라는 딱지를 서슴없이 갖다 붙이던 과거를 짐짓 숨기거나, 아예 까먹고 있다는 것이다.

(앞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언론의 자유, 나아가 모든 자유는 경합한다. 나의 자유와 타자의 자유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유는 영토를 확보한다. 언론 자유의 영토에서 일방적으로 옹호되는 가치는 두 가지뿐이다. 다름 아닌 '언론의 자유' 자신과,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신장하려는 실천'이다. 나머지 가치는 모두 언론 자유의 이름 아래 경합한다. 이와 관련한 최고의 정언명제가 존 밀턴의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아레오파지티카>, 1644년)이다.

   
  ▲ 지난 22일 '82쿡닷컴' 회원들이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당한 소비자 운동을 '사이버 테러' '업무방해' 등으로 표현하는 등 명예를 훼손했다며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곽상아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은 의견을 공표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기술적 제약도 없는 완전자유경쟁 상태를 상정한 것이다. 존 밀턴에게 사상의 완전자유경쟁은 목적 자체가 아니었다. 한 사회가 가장 완벽한 사상을 식별해내기 위한 절차적 도구였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완전자유경쟁 아래서 쓰레기 사상은 시장에서 저절로 걸러지게 된다. 그러나 이같이 완전한 도구적 조건이 현실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역시 자본과 기술이었다. 처음엔 인쇄기를 가질 수 있는 소수 자본이 언론시장을 독과점했다. 라디오로, TV로, 필요한 자본의 규모는 커져갔고, 밀턴의 이상도 갈수록 공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기술 발달이 독점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최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온라인 디지털에 의해 해체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이른바 1인 미디어는 이런 매체발달사적 흐름 위에서 고전적인 언론 자유의 이론을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헌법 21조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놓였다. 이전까지 언론의 자유는 자본과 기술의 장벽 안에서 부분적으로만 실현됐다. 아니, 소수 언론기업에 의해 일상적으로 참칭되고, '언론기업만의 자유'로 신화화됐다. 그 신화는 조·중·동의 자유가 헌법 1조의 '국민'의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데 복무했다. 그 신화 체계가 지금 발가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헌법 1조와 21조 사이의 현실적 간극이 좁혀질수록 그 실체는 더욱 확연해질 것이다.

국민의 조·중·동 불매운동과 광고주 압박운동이 언론 탄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신장하려는 실천'이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유경쟁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는 개방 구조를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소수의 폐쇄적인 구조를 공략하는 것, 독과점 안에서 사익을 공익으로 둔갑시켜온 몇몇 언론기업과 그 일속을 찌질이로 낙후시키는 것, 이는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헌법의 정언명령으로 옹호된다.

이 운동을 방해하거나 억압하는 누구도 언론 자유의 적이 될 수 있다. 조·중·동뿐 아니라 어떤 언론기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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