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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돈 카를로’, 죽음이 손자를 구원하리니![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3.04.29 11:22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아들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한 남자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이 개념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돈 카를로>는 수많은 오페라 가운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오페라 작품이다.

아버지 필립 2세는 아들인 돈 카를로가 사랑하는 여자 엘리자베타를 아내로 맞이한다. 아들은 사랑하던 여자가 졸지에 어머니가 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자를 앗아간 연적으로 돌변한다.

그런데 <돈 카를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관점은 아버지가 아들의 여자를 빼앗는 에로스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아버지를 반대하는 정적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가 아들로 묘사된다. 플랑드르는 아버지 필립 2세의 학정에 시달리는 지역, 이 지역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고자 아들 카를로는 지배자인 아버지에게 자신을 플랑드르의 총독으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한다.

   
▲ 돈 편지를 전해주는 로드리고와 엿듣는 에볼리 ⓒ국립오페라단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이러한 요청을 거부하고 플랑드르에 자비가 깃드는 기회를 박탈한다. 폭압의 정치를 지속하고자 하는 아버지와,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아들의 개혁 의지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플랑드르 백성에게 자유를 안겨주기 위해서라면 아들은 아버지의 정책과는 반대 노선을 가져야만 한다. 오페라의 2막 2장은 돈 카를로가 아버지 필립 2세에게 갖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돈 카를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두 번 강화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만은 아니다. 신의 이름을 자처하며 벌이는 사적 폭력에 관해서도 베르디는 오페라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플랑드르 백성의 독립 열망을 국가 폭력으로 억압하는 아버지 필립 2세의 플랑드르에 대한 학정은, <레미제라블> 가운데서 자유를 갈망하는 대중의 열망과는 대척점에 위치하는 지점인과 동시에, 현실 속 억압기제, 이를테면 심각한 경제난과 같은 세파와 유비하여 바라볼 수 있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만일 후자의 관점으로 조망한다면 정리해고와 취업난에 시달리는 21세기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16세기 플랑드르 식민지 사람들의 상황과 맞물려 바라볼 수 있다. 16세기 베르디의 오페라 속 플랑드르 사람들이 당하는 정치적 탄압이 21세기 현대인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중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돈 화형식 ⓒ국립오페라단
할아버지의 유령이 손자 카를로를 무덤으로 데리고 가는 마지막 장면은 비극이 아니라 손자를 구하는 할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들 필립2세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희생될 게 뻔한 손자를 현세가 아닌 내세로 끌어들인다는 건 손자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끄는 할아버지의 만행이 아니다.

도리어 아들에 의해 정치적인 죽음 혹은 생물학적 죽음을 면치 못할 손자를 내세로 인도함으로 편히 쉬게 만들어주는 할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죽음을 한 생명의 소멸이라고 보면 <돈 카를로>의 결말은 비극이 맞다. 하지만 카를로를 무덤으로 이끄는 할아버지의 죽음의 손길을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죽음을, 반대로 손주를 구원하는 손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타나토스 만세!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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