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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에서 벗어나 벽장 밖으로 나서다육우당 10주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에 가다
윤다정 기자 | 승인 2013.04.28 21:39

   
▲ 27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에서 고 육우당을 추모하는 내용의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미디어스

바람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답변은 ‘아직 어리니 그런 것을 정하면 안 된다’, ‘이성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바람은 “정체성은 20살 생일에 받는 선물이 아니라 깨달아가는 것”이라며 이와 같은 시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가온은 최근 자신을 ‘여성 양성애자’에서 ‘트랜스젠더 범성애자’로 정체화했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여기는 FTM이다. 가온은 “성전환증이 의학계에서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질병이 있든 없든, 저도 여러분과 별다를 게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동글이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한 지는 올해로 8년이 되었다. 동글은 “눈썹이 연하다거나, 요리를 잘 못 한다거나, 곤충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며 “왜 성소수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정의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이들은 모두 청소년 성소수자이다. 고 육우당이 10년 전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당시의 나이도 19세였다. 육우당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육우당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존재를 부정당해야만 했던 이들이 대한문 앞에 차려진 무대에 올라 크게 외쳤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여기에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주간의 마지막 행사인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가 27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우리가 여기에 있다’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적힌 걸개가 무대 뒤편에 걸렸다. 2시간 30분 남짓 이어진 문화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문구였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 동성애가 좋아요!”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의 힘찬 구호가 끝나기 무섭게 무대 밑에서 폭소와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곧이어 “동성애가 좋아요!”라는 구호가 몇 차례 더 장난스럽게 반복되었다.

   
▲ 27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에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이날 문화제에서는 각계각층의 지지발언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저희의 봄은 (육우당이 세상을 떠난) 2003년 4월에 머무르지 않고, 성소수자를 함부로 혐오하거나 차별해도 된다고 하는 이들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통합당 소속 윤명화 서울시의원은 “민주당 의원이 섣부르게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내고 결국 그것을 철회했기 때문에 송구스러운 마음에 이 자리에 오기 어려웠다”면서도 “(지난 2011년 당시) 여러분이 뒤에 있어 힘을 잃지 않고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고동민 씨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이야기는 이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멈추자는 것”이라며 “여기 있는 성소수자들이 말하는 인권과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는 모두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는 목소리”라고 격려했다. 발언을 마친 고동민 씨는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쳐 참석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자아냈다.

“LGBT,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요”

   
▲ 27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문화제'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 문예모임 'RainbowS'가 공연하고 있다.ⓒ미디어스

문화제 진행 시간의 절반 정도는 노래, 춤, 율동 등 각종 공연으로 채워졌다. 그 때마다 문화제 참석자들은 저마다 열띤 호응을 무대 쪽으로 돌려주었다. 대다수가 성소수자인 참석자들은, 이날 하루만큼은 벽장 문을 열고 나와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대한문 앞을 뜨겁게 달구었다.

문화제의 대미를 장식한 곡은 팝 가수 레이디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였다. “우리들의 노래에 맞춰서 제대로 놀아 보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차놀이를 하는 일군의 무리가 참석자들이 앉은 자리로 파고들었다. 곧이어 참석자들은 “나는 나대로 아름다워. 신이 실수 없이 만드셨으니까”라는 노랫말에 맞추어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25일 열렸던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추모 기도회에 모인 이들은 육우당을 비롯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지 못한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난 모든 성소수자를 조용히 애도했다.

그러나 10년 전의 시간 속에서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분명히 하듯, 이날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은 추모 기도회의 엄숙함에서 탈피해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나섰다.

윤다정 기자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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