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좀 까칠한 편이다. 얼마 전 동네에 있던 비디오대여점이 이웃 동네로 이사를 갔다. 1만 원씩 선금을 맡겨놓고 비디오를 빌려보던 아내는 "아직 칠천 원이나 남았는데, 돌려주지도 않고 가버렸다"며 씩씩댔다. 기어이 이사 간 곳과 전화번호를 알아낸 아내는 몇 번씩이나 전화로 실랑이를 하더니, 함께 돈 받으러 가잰다.

등살에 못이겨 따라나서긴 했지만, 속으론 은근히 겁이 났다. 전화로도 해결하지 못했다면 직접 가더라도 순순히 돈을 내줄 리 없을텐데, 고작 7000원 때문에 나보다 덩치 큰 아저씨와 입씨름을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는 도중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말고 차분하고 점잖게 이야기해라"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디오대여점 아저씨는 이사할 때 컴퓨터 기록이 사라져 얼마가 남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내는 "이런 식으로 다른 손님들 남은 돈도 모두 돌려주지 않은 것 아니냐. 이렇게 비양심적인 처사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아내의 추궁에 아저씨도 슬슬 열이 받는듯 했다.

그 때 내가 나섰다. "우리는 7000원 남았다고 하고, 아저씨는 기록이 없다고 하니, 적당한 선에서 5000원만 돌려주시죠." 아내는 "그런 법이 어딨느냐"고 했지만, 내가 만류했다. 결국 우리는 5000원을 받아 돌아왔다.

이 외에도 비슷한 일은 많다. 아내와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운전기사가 뒷자리에 앉은 우리의 동의도 없이 다른 손님을 앞자리에 합승시켰다. 아내는 즉각 "먼저 탄 손님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이래도 되느냐"며 항의했고, 운전기사는 인상을 쓰며 마지 못한 말투로 사과했다.

택시에서 내린 후 우리는 거리에 선 채 부부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진짜 성질 더러운 운전기사였다면 어쩔 뻔 했냐. 핸들을 쥐고 있는 사람은 우리의 생사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괜히 성질 건드려서 좋을 게 뭐 있냐"는 게 내 논리였다.

아내는 "잘못된 것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맞섰다. 또 "이렇게 지적해줘야 다른 손님에게도 그러지 않을 거 아니냐"고도 했다.

나는 "저 운전기사는 앞으로 평생 우리와 다시 마주치지 못할 사람인데, 굳이 싸워서 득 볼 게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결국 그 날의 부부싸움도 승패는 나지 않았다.

▲ 창원 촛불집회의 한 장면. 오른쪽에 '고시철회, 전면재협상' 빨간 손팻말을 들고 있는 이가 내 아내다. ⓒ김주완
엊그제는 삼양 '맛있는 라면'을 잔뜩 사왔다. 아내는 원래 '안성탕면' 아니면 먹지 않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다. 놀라서 "웬 맛있는 라면이냐"고 물었더니 "조선일보에 광고 주지 않았다고 보복을 당하고 있는 라면"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라면뿐 아니라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는 회사 제품은 아예 사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강호동이 나오는 '1박2일'(TV프로그램)에서 계속 농심 신라면만 먹더라"며 "거기도 항의전화를 해야겠다"며 흥분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랬더니 웃는다고 신경질을 낸다. 역시 까칠하다. 아내는 최근 조선일보로부터 경고 공문을 받은 '82cook' 사이트에도 가입했다.

이번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아내는 창원과 마산을 오가며 부지런히 집회에 참가했다. 그러더니 마산은 창원만큼 재미가 없다고 투덜댔다. 그래도 21일엔 강기갑 의원이 온다는 마산 집회에 참여했다. (나는 취재차 창원으로 갔다.)

다녀온 아내는 "강기갑 의원이 촛불집회는 과거처럼 엄숙하게 하지 말고 축제처럼 즐겁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내 생각과 똑같다"며 즐거워했다.

진주 촛불집회에 문화패와 가수들도 많이 나와 진짜 재밌더라는 후배기자의 이야기를 전해줬더니, 당장 다음주엔 진주로 가잔다.

군대라는 상명하복의 조직사회에서 자기의지를 거세당한 남성들은 거악에 대한 무력감이 잠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쉽게 포기도 잘한다. 아마도 여성들의 이런 지칠줄 모르는 까칠함이 이번 촛불정국을 만들어낸 힘이 아닐까 싶다. 조선일보,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한 성질 하는 내 아내가 나섰으니.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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