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편리해졌지만, 반면에 쉽게 남의 것을 복사해 자신의 것으로 가장해 꾸미는 일도 ‘누어서 떡먹기’가 됐다. 대학생들이 과제물을 가볍게 ‘해피캠퍼스’나 ‘레포트월드’ 같은 사이트를 이용해 간단히 해결하는데, 이런 경우 모두 ‘F’ 처리해야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낙제점을 줄 수 없으니 난감하다. <동아일보>의 한 표절 관련 기사에서처럼, 학생들의 표절이 너무 심해 아예 리포트 과제는 없앴다는 한국에서 강의하는 외국교수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의 이러한 표절에 대한 몰이해는 단지 학생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학술적 글쓰기’, 인용법 등의 교육이 전혀 없는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

이렇게 ‘학술적 글쓰기’란 것에 대해 거의 교육받지 않은 학생들이 석사를 한들 갑자기 학술적 논문을 제대로 쓸 리 만무하다. 교수들도 표절을 일삼는 마당에 인맥 쌓기 위한 혹은 돈 주고 학위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00대학원’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에서 표절을 찾아내는 것은 쉬울 것이다. 물론 연구윤리에 어긋나지 않게 논문을 쓴 사람의 경우 자신마저 오해를 받을 테니 억울할 게다.

한 00대학원에서의 경험을 봐도 특수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언론인들이 주로 다니는 한 00대학원에서 강의를 담당한 필자가 ‘첫 시간부터 수업을 진행한 죄’로 수강생들의 불만이 많아, 그 대학원 책임 행정관이 ‘00대학원의 특수성’에 무지했던 필자에게 설명까지 해 주었다. 그에 따르면, ‘00대학원은 다른 대학원과 달리 공부하는 대학원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하지 않는 대학원’이 00대학원이란 것인데,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직장은 직장인데, 일하지 않는 직장’이란 말처럼 모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하지 않는 대학원’에서 쓴 석사학위논문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직장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성실하게 강의해야한다는 필자의 생각과는 다른, 강의를 대충 때우려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의를 열심히 하면’ 문제인 훼괴한 교육기관으로 여겨졌다. 당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실한 수강생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며, 논문표절 논란은 당연한 결과다.

<프레시안> 4월 19일자 기사 캡쳐

김미화, 논문표절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언론에 알려진 논문표절 논란들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을 들자면 방송연예인 김미화의 석사논문 표절이다. 김미화는 <프레시안> 온라인 4월 19일자 “김미화 논문 표절? 내 인생 자체가 '웃프다'"란 한림국제대학원 정치경영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심경을 다시 밝히고 있다. 논문표절의 정도를 따져 말한다면 그의 표절 정도야 한국사회에 널려있는데 억울할 듯싶다. 그것도 석사논문 표절인데 한국 대학원에서 쓴 석사논문들을 재검토한다면 표절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의 석사논문을 살펴보면 전혀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분명한 표절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표절시비에 휘말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표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표절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술적 글쓰기’ 혹은 ‘논문작성’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것은 단지 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대학, 지도교수, 심사자들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당사자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김미화의 석사논문은 해당 대학에서 표절검증에 들어갔고, 아직 판결은 나지 않았지만, 표절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검증에 문제가 있다. 다른 논문표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절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절의 심각성’이 문제가 된다. 표절의 정도로 봐서 학위를 박탈해야 할지, 또는 다시 논문을 수정 보완할 기회를 주고 학위를 다시 인정해 줘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석, 박사학위를 복사수준의 표절 및 대필로 획득하고, 교수들의 논문표절도 심각한 수준으로 문제가 됐음에도 직위나 학위를 박탈당한 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 봐서 김미화의 석사학위만을 박탈한다면 이것도 우스운 꼴이 된다.

그의 석사논문이 표절논란에 휩싸였을 때 필자 또한 문제의 논문을 검토했으며, 결과는 표절이 분명했다. 따라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보다 가능한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충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늦게나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방송에서 하차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한 달이 넘어 김미화가 최근 <프레시안>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표절에 대해 아직도 무지하며, 여전히 표절논란을 억울해 하고 있어 답답한 마음이다. 그동안 자신의 논문이 왜 표절인지 연구윤리규정을 살펴보고 꼼꼼히 따져봤다면, 분명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라 실망스럽다.

"(...) 나이 들어서 석사논문을 처음 써보는 거라 의욕은 넘쳤으나 실수가 있었다.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에 평판연구에서는 익히 알려진 학설이라, 외국학자의 번역을 인용하면서 옮겨 적은 한국학자 이름을 몇 군데 빼먹은 부분이 있다. 외국학자의 이론을 일부 재인용한 부분에서 그 이론을 인용한 한국학자의 이름을 함께 표기했어야 하지만 글귀를 일부 옮김으로서 연구자로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점 인정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소한 실수다 (...)"(프레시안, 2013.04.19)

<SkepticalLeft> 사이트의 김미화 관련 내용 캡쳐

3월 21일 종편채널 MBN 고승덕의 ‘집중분석’에 출연한 김미화는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는데, 아직도 그 변론은 변하지 않았다. 김미화의 논문표절을 제기했던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스캡티컬레프트(SkepticalLeft) 사이트에서도 비판하고 있는데, 김미화 논문표절 부분에 대한 지적은 옳은 지적이다. 수상한 것은 왜 유독 그들이 ‘친노좌파’, 혹은 ‘종북’으로 낙인찍은 인물들에게만 그토록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표절논문 소유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김미화의 표절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사 문제가 된 부분을 재인용으로 한국학자 이름을 넣었다 하더라도 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석사논문 평판연구의 이론적 배경 설명은 타 연구내용을 거의 그대로 짜깁기한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재인용은 원본을 찾기 어려울 때 피치 못해 하는 것이지, 본인의 설명이나 논리 전개 없이 재인용이나 짜깁기로 논문을 쓰는 경우는 없다.

논문에 거론되는 학자들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참고문헌을 찾아 읽어야하는데, 연구자가 실제 인용하는 것보다 보통 훨씬 많은 문헌을 읽게 마련이다. 학자 한 명의 이름은 단지 몇 페이지 혹은 수 백 페이지의 분량이 되기도 한다. 논문에 언급된 학자들의 수를 따져 볼 때 수 천 페이지 가량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방대한 분량의 문헌을 읽지도 않고 다른 학자들의 연구논문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아무런 수고도 없이 간단히 해결한 것이 된다. 즉, 엄청난 시간을 절약한 셈이다.

논문에서 이론적 배경이 차지하는 페이지 분량은 많지 않지만, 그 속에는 엄청남 양이 숨어 있다. 그래서 김미화의 표절은 ‘사소한 실수’가 결코 아니다. 물론 워낙 심각한 수준의 논문표절이 넘치다보니 타 표절들과 비교해 ‘사소한 실수’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도교수가 제자의 논문에 대해 아무런 상담도 해 주지 않았던 모양이며 표절논란 이후에도 아무런 대책을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미화는 지도교수의 연구논문도 표절하고 있는데 여전히 인용과 표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며 지도교수의 책임도 회피할 수 없다.

김미화와 좌파 인물들에 집중하는 <SkepticalLeft> 사이트 캡쳐
표절논란으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화가 치밀 때가 많다. 청와대 비서실장 허태열은 논문표절이 문제되자 “쉬는 김에 박사학위나 받아두자고 한 것이었다. 내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부족해서 실수를 좀 했다. 학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프레시안, 2013.02.20) 등의 해명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문대성의 경우처럼 대필 석·박사 논문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아’ 교수로 임용되는 사회에선 진정한 연구자들을 바보로 만들뿐이다. 학위논문 쓰기가 이렇게 쉬우니 전업주부들도 애들과 남편 챙기는 시간 좀 아껴 석, 박사논문이나 쓰시라 권하고 싶다.

김미화의 억울함은 논문표절 문제보다 ‘친노좌파’로 낙인찍혀 가혹하게도 매도당해 온 것이다. 언론에서 뿌려놓은 반김미화 정서는 일반인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으며, ‘코미디언이면 코미디나 할 것이지 (주제에) 무슨 시사프로를 하느냐’ 등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단정 짓지 않고 자기발전과 인생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코미디언은 코미디나 하라’, 혹은 ‘연예인은 연기나 할 것이지 석사학위는 왜 필요하냐’ 등은 마치 ‘아줌마들은 집에서 애나 봐라’ 식의 경멸적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을 발전시켜 새로운 혹은 여러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또한 권장되어야 한다. 문제는 정당하지 않은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학위로 쉽게 사회적 직위를 얻거나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떤 누구에게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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