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여파, 석유 등 원자재가격 폭등, 30년만에 곡물가격 급등 등등 세계경제는 이미 적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대통령, CEO대통령을 자처하는 이명박 정부는 무리한 성장정책을 밀어붙였다. 고환율정책이 그것이다.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환율상승이 수출을 촉진해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수출현장에서는 환율상승에 비례해 수출이 증가하지 않는다. 수입업자는 수출업자가 환차익을 본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때문에 환율인상만큼 가격인하를 요구해 수출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

다시 말해 고환율정책이 수출촉진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하나 환율인상이 원자재 수입가격을 상승시켜 그 효과를 상쇄해버린다. 따라서 수입 원자재를 쓰는 수출제조업은 꼭 환율상승만큼 이득을 누린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무역업에 종사하는 대기업이 어느 정도의 환차익을 얻을 뿐이다. 결국 수출산업에도 큰 이득을 주지 못하는 고환율정책이 고유가와 겹쳐 서민경제에 무차별적인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 경향신문 6월20일자 17면.
한국은행의 5월 수입물가 동향에 따르면 수입물가가 1년 전에 비해 44.6%나 폭등했다. 이것은 1998년 3월의 수입물가 상승률 49.0% 이후 최고치이다. 국가경제가 파탄에 직면했던 IMF 사태 당시와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수입물가 상승률 44.6% 중에서 환율상승에 따른 인상률이 17.0%나 차지한다는 점이다. 환율이 오르지 않았다면 수입물가는 27.6% 상승에 그쳤을 것이란 소리다. 반면에 수출물가 상승률은 24%로서 수입물가에 비해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고환율정책이 실효를 나타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특히 석유, 곡물, 광물 등 5월 원자재 수입가격은 1년 전에 비해 무려 83.6%나 뛰었다. 여기서도 환율상승분을 빼면 원자재 수입물가는 64%로 떨어진다. 원자재 가격상승은 그대로 국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충격을 완충할 탄력관세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환율상승을 유도해 국민경제에 충격파를 증폭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대기업은 선물거래, 결제통화 다변화, 사내유보를 통해 환율상승의 압박을 완화해 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수입물가상승에 그대로 노출된다. 중소기업의 경영난은 가중되는 가운데 화물노조, 건설노조에 이어 버스업계도 총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달리면 달릴수록 손해가 커져 더 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두바이유 평균도입가격이 119.5달러로 작년 5월에 비해 84.8%나 올랐다. 물류-교통-건설대란이 이미 예고됐지만 무리한 환율인상으로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킨 것이다.

택시기사들도 핸들을 놓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LPG 가격이 뛰는데다 손님이 끊겨 굴리기 어렵다는 소리다. 식당들도 손님 끊길까 값은 못 올리고 그저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고 푸념한다. 식재료 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취사용 연료도 올라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솔벤트를 쓰는 세탁소도 마찬가지다. 택배기사들도 오르기만 하는 기름 값을 견디기 어렵다며 적지 않게 그만 둔다. 장바구니 물가는 아무리 안 올라도 20% 이상 올랐고 주부들은 입을 모은다. 여기에다 각종 생필품에 학원비, 유치원비 등등 오르지 않는 것이 없다. 봉급만 빼고 말이다.

환율상승→수출증대→경제성장이란 잘못된 정책방향이 물가상승→소비위축→내수침체→고용불안을 이어져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 쓰나미가 예고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민생경제는 뒷전에 두고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등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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