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토요일 일요일에는 쉬고 싶습니다”

지난달 24일 노동조합을 결성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8일 저녁 8시 30분, 광화문 태광그룹 사옥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바람까지 불어 봄이라고 하기엔 제법 쌀쌀했지만 2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촛불문화제 행사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가입자 주택을 방문해 케이블을 설치해주고 고장신고가 들어오면 셋톱박스를 교체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설치·A/S기사들이다.

▲ 4월 18일 저녁 8시 30분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노동자들이 광화문 태광그룹 사옥 앞에서 '정규직화', '영업 강요 중단', '주5일 근무', '점심시간 보장' 등을 요구했다. ⓒ미디어스

이날 한 참석자는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씨앤앰이나 KT, SK브로드밴드 등에 비해 최악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특별관리감독을 촉구하기도 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노동이 기본이었다. 토요일 월평균 4회 노동에 일요일 당직횟수도 월평균 1.7회로 나타났다. 주 6일 근무에 월 평균 고작 2~3일 쉬는 게 전부라는 얘기다. 또 토요일·일요일 노동은 법정 시간외수당을 받아야하지만 95.7%가 적용받지 못했다.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 식사시간도 부여되지 않았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노동자들을 이 같은 노동 형태를 “무료 강제노동”이라고 표현했다.

▲ 티브로드 비정규직 지부 조합원들이 노조결성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 미디어스

“티브로드에서 18년 일했는데 받는 임금은 200만원이 안됩니다. 나도 나의 삶을 살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김 아무개 조합원>

“티브로드에서만 14년을 일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힘이 없어서 영업은 물론, 설치, 밤 10시까지 전단지를 접으라면 접는 등 티브로드가 쥐락펴락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제 노조로 뭉쳤으니 우리가 이길 차례입니다”<김 아무개 조합원>

“결혼한 지 2년 됐고 애기가 20개월 됐습니다. 아내가 애기를 낳는데 18시간 진통 끝에 낳았고 (상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이제 출근해’였습니다. 할당 구역이 있으니 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티브로드는 우리가 자신들의 가족이 아니라고 합니다. 배신감을 느낍니다. 우리의 피땀으로 성장한 거 아니겠습니까”<최 아무개 조합원>

“쉬는 날은 일요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노조를 만드는 문제 때문에 매주 일요일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언제는 아이들이 ‘아빠, 일요일인데도 나가?’라며 놀아달라고 보채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에게 ‘아빠가 앞으로 너희들과 토요일·일요일에 함께 놀아주기 위해 나가는 거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이 아무개 조합원>

“나도 놀 수 있다”, “쉬고 싶다”는 한 조합원의 눈물에 한 순간 숙연해졌다. 노동자들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티브로드’ 직원이 아니다. 그러나 ‘티브로드’ 로고가 박힌 명함을 가지고 다니고, 옷을 입고 있고, 차를 타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티브로드 직원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이시우 티브로드 지부장이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하고 있다. ⓒ미디어스

이날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측에 △티브로드의 실질고용(정규직화) △기본급과 통상수당 중심 임금체계 개선 △영업 강요 및 실적 할당 중단 △1일 8시간·주40시간·주5일 근무 실현 △시간외 근로 및 휴일근로 수당 지급 △점심시간 보장 등의 요구안은 전달했다. 이 가운데, ‘점심시간 보장’이 눈에 띈다. 케이블방송 1위 업체 ‘티브로드’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 중 상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며 “여러분의 요구는 너무나도 정당하다 못해 소박하다”고 말했다.

이남신 소장은 “이건 노예의 삶”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도록 돼 있다. 여러분들은 ‘법대로만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 왜 최소한의 노동자들에게 부여된 근로기준법마저 이들에게는 꿈이 되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진보정의당 조준호 공동대표는 “티브로드의 행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법은 우리가 아니라 사용주가 어긴 것”이라며 연대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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