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배수지. 1994년 10월생. 2010년 JYP 소속의 미쓰에이라는 걸그룹으로 가요계 데뷔.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을 발표하고 뒤이어 여러 편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 현재 드라마 ‘구가의 서’ 에 여주인공 담여울 역을 맡아 열연 중. 바로 수지에 관한 간략한 프로필이다. 대충 훑어 봐도 놀랍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감히 넘보기도 힘든 비중 있는 주역을 꿰차게 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이와 비슷한 선례 아이유가 있다. 여고생 가수, 국민여동생 등의 별명을 얻으며 가요계에서 성장한 걸로 치면 아이유가 수지보다 한참 선배다. 그녀는 얼마 전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그런데 아이유는 이순신 역을 따내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수지는 그녀가 수고한 절반가량의 시간으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게 될 드라마의 여주인공역을 거머쥐게 된 것이고.

그 동안 아이돌 가수들의 연기 도전기를 면밀하게 떠올려 봐도 수지만큼 빠른 시간 안에 대단한 성적을 거둔 이가 없다. 소녀시대의 윤아도, 애프터스쿨의 유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구가의 서’처럼 화제를 몰고 온 작품들도 아니었거니와 작품 속 그들의 캐릭터가 시작도 전에 초미의 관심을 받을 정도가 아니었단 거다. 제법 괜찮은 연기를 선보여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데에 그칠 뿐이었다.

수지의 프로필은 생각보다 굵직하다. 3년 내내 드라마 연기에 빠진다 해도 주연을 맡게 된다는 보장이 없고, 영화만 파고든다고 해도 대표작을 남기기 힘든데 수지는 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시간 동안 드라마와 영화 양쪽을 오가며 이미 자신의 또렷한 자취를 남겼다. 드라마 ‘드림하이’를 잊을 수 없고 ‘건축학개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수지다. 자신의 연기 인생에 벌써 굵직한 기둥 몇 개를 심어 놓은 셈이다.

도대체 수지의 매력은 뭘까? 아이유, 윤아, 유이와는 무엇이 다르며, 또 수많은 연기자들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기에 몇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이력들을 어떻게 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룰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배우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연기만 공부해 온 이들에게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황당한 일이지 않았겠는가.

필자의 생각에 수지는 신데렐라며 행운아다. 배우로서 그녀의 실력이나 자질은 모자라도 한참이 모자라다. 그럼에도 그녀는 웬만한 주연급 여배우들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으며 남들에게 어렵게 가는 기회가 그녀에게는 꽤 쉽게 찾아온다. 그녀에게 유리구두를 신겨 주겠다는 왕자님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유리구두들은 수지에게 모두 딱 들어맞았다. 아직 구두를 신고 훨훨 날아갈 듯 춤을 추거나 뜀박질은 못하지만 수지에게는 어울리는 구두들이다. 수지에게서만 풍겨져 나오는 ‘첫사랑’의 이미지. 그녀는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소녀를, 등굣길마다 마주쳤던 길 건너 여고를 다니는 여고생을,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은 추억의 그녀를 참 많이 닮았다. 그 이미지가 구두를 어울리게 했다. 그리고 구두를 들고 누군가를 찾아 헤맸던 왕자님들은 모두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수지는 ‘첫사랑’ 그 자체였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의 영향 때문이었지만 그로부터 얻어진 이미지는 지금까지 그녀를 ‘첫사랑’ 아이콘으로 만들어 놓았다. 대중들은 물론이고 남자 연예인들까지도 수지는 ‘첫사랑’ 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다. 단순히 여고생 연예인을 좋아하는 삼촌 팬의 마음과는 사뭇 다른 더 오묘하고 아련한 것이다.

그런데 수지는 ‘구가의 서’의 담여울을 맡음으로 ‘첫사랑’ 아이콘을 버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평탄하게 배우의 길을 걷게 해준 등불을 훅 불어 꺼버린 것이다. 담여울은 첫 등장을 하자마자 최강치의 목숨을 구해준다. 위험에 빠진 최강치를 자신의 현란한 검술로 지키려 하고, 급기야 그의 손목을 먼저 잡으며 달리고 또 달린다. ‘첫사랑’ 이미지가 사라지고 ‘여장부’ 이미지가 들어서는 순간이다. ‘첫사랑’ 수지가 초승달 빛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수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중들이 자신을 보며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지, 또 어떤 캐릭터로 분해 연기를 선보이기를 원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수지는 과감하게 버렸다. 적어도 몇 년은 ‘첫사랑’ 의 이미지로 풋풋한 전성기를 맘껏 누릴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달콤한 유혹에 안주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녀는 누구로부터 보호를 받는 첫사랑이 아닌, 본인이 지키려 하는 적극적인 순애보로 돌아오고 말았다.

수지의 연기력은 다른 출연 배우들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다. 표정도 대사 연기도 고쳐야 할 부분이 상당수 남아 있다. ‘첫사랑’ 아이콘일 때의 수동적인 연기력으로는 담여울을 표현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스스로 담여울 캐릭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과감한 도전이며 지독한 결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욕먹을 줄 알면서도 한 번 시도해 보겠다는 그녀의 뚝심 하나만은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이승기와의 호흡이 수지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의 연기를 잘 따라가 주지 못하면 수지는 ‘구가의 서’ 의 총알받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승기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지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첫사랑’ 아이콘이라는 달콤한 구름방석을 박차고 일어난 수지인 만큼 그 지독한 도전 정신이 ‘구가의 서’ 에 온전히 드러나길 바란다. 일단 행운의 신데렐라가 아닌 여배우로 살아가고픈 그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모쪼록 ‘첫사랑’ 을 벗고 ‘여배우’를 입는 수지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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