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일 넘게 촛불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오후 7시가 되면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자연스레 서울시청 광장을 찾는다. 수천 명이 모이는 평일 촛불문화제에서부터 수만 명이 모이는 주말 촛불문화제까지, 현장 곳곳을 둘러보면 끊임없이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 기자들이 있다.

'PRESS'완장을 두르고 카메라와 취재수첩 혹은 노트북으로 중무장한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조금 튈 법한 사람이 포착되기만 하면 기자들은 벌떼처럼 몰려든다. 이 때 주의할 점은 기자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괜히 그 앞에서 뭉그적거렸다간 험한 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난 6월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6.10 100만 촛불대행진'에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예고 없이 갑작스레 현장을 방문했다. 어느 순간 무대 뒤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우르르 몰려가 정 장관 주변을 둘러쌌다. 가장 좋은 각도를 잡기 위한 기자들의 치열한 몸싸움 근처에도 가까이 가지 못한 기자는, 어떻게든 정 장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종종 들어가며 기자들 틈 사이에서 버텨야했다.

▲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타난 정운천 장관. 무리 안에 '정운천' 장관이 있다. ⓒ송선영
촛불문화제 무대 뒤에서는 취재기자들의 속보 경쟁이 치열하다. 무대에 오른 발언자들의 멘트를 기록해 현장에서 급하게 기사를 쓰는가 하면, 광우병대책회의 관계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수시로 현장 상황, 이동 경로, 참가 인원을 챙겨야한다.(실제로 여러 기자들의 다발적 질문 공세에 힘들어 하는 대책회의 관계자의 모습을 종종 본다.)

촛불문화제 마다 주어지는 '포토타임' 때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가장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는 이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폭이 큰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갔다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카메라 기자로부터 "빨리 올라가!"라는 고함을 들은 후부터는 '포토타임'이란 말이 들리자마자 후딱 무대로 올라가곤 한다.

매일 현장에 나가는 기자들은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만나본 기자들 모두 방송사, 신문사, 주간지 등 매체의 구분을 떠나 취재 현장에서 느끼는 '말 못할 고민'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시민 의견과 반대되는 보도 나가면 회사로 수백통의 전화 온다"

A 방송사의 한 기자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시민들 의견과 반대되는 보도가 나가면 곧바로 회사에 수백 통의 전화(폭탄 수준)가 온다"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기사를 쓸 때마다 다음 날 현장에 취재하러 가는 기자에게 해가 될 까봐 조심스러워 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조금 어긋난 기사를 내보내는 날이면 '어용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B 주간지의 한 기자는 '주간지'가 갖는 한계로 인해 촛불문화제 취재를 하면서 많이 좌절했다고 한다.

"시류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기자이지만 기자들 틈에 끼지 못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현장에 있지만 현장감을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안타까움 뭐 그런 거다. 일간지 기자는 수시로 선배들과 통화하면서 현장을 전달하고 보도하지만 주간지이기 때문에 속보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괴로웠다"

오후 7시에 시작해 밤늦게 행진으로 이어지는 촛불문화제. 매일 이를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은 육체적 힘듦(?)에 대해서도 하소연했다.

"취재하는 기자들, 과로사 일보 직전"

"취재하는 이들 모두, 과로사 일보 직전이다"라고 지금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한 mbn 윤범기 기자는 "취재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매일 현장을 지키는 전경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윤 기자는 이어 "힘들긴 하지만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니까 괜찮다"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회를 쉽게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촛불문화제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A 방송사 카메라 기자도 "일반적으로 기자들 모두 힘들어 하고 있다"며 고충을 표했다.

"6월 13일의 경우, 시민들이 서울시청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여의도까지 행진을 했다. 이동 경로가 정해진 경우였다면 차량을 타고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행진 방향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장비를 들고 시민들을 따라 걸어야 했다. 이처럼 단순하게 몸이 피곤해서 힘든 것도 있겠지만 촛불문화제가 장기화 되면서 다른 취재할 영역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도 힘든 부분 중 하나다"

▲ 기자들을 위해 마련된 '포토타임'. ⓒ정은경
"한달 째 이어지는 저녁 취재, 정말 괴롭다"

이 밖에 C 전문지 기자도 "매일 저녁 취재 나가는 생활이 한달 째 이어지는데 정말 괴롭다. 점점 우울한 표정의 소유자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고, D 방송사 카메라 기자 또한 "다들 힘들고 피곤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 지나 조금 꺾이는 추세라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꺼려하는 현장을 자진해서 찾는 기자, 취재한 기자 중 유일하게 딱 한명 있었다.

"힘든 면이 있는 것은 맞는데 궁금해서라도 현장에 많이 나가는 편"이라는 경향신문 A 기자는 "취재가 없는 날에도 현장을 찾는다"라고 답한 유일한 기자였다.

기자는 "현장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역동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현장을 방문하면 중요한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언론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 보다는 내 눈을 통해 직접 현장을 보는 것이 좋아서 현장에 간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자신이 속한 언론사가 공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촛불문화제로 일부 언론에 시민들이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는 달리 일부 언론을 향해 날카롭고도 매서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취재를 할 때 자신의 소속 언론사를 숨기고 취재를 하거나, 카메라 기자의 경우 최대한 언론사 마크가 보이지 않는 요령을 피우기도 한다.

오늘도 계속되는 촛불문화제

고백하건데 현장에서 만난 기자들과 "촛불문화제가 끝났으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도 시민들도 참 징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한 손에 촛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수 천 명의 시민들을 보면서 '촛불문화제가 곧 끝나리라'는 기대(?)를 버렸다.

오늘도 촛불문화제는 계속된다. 시민들은 여전히 '헌법 제 1조' 노래를 부르고, 기자들은 이 모습을 취재하려 부단히 애를 쓸 것이다. 언로를 닫은 대통령이 시민들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촛불문화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와 함께 취재로 인해 점점 무거워지는 기자들의 어깨만큼이나 촛불문화제를 바라보는 기자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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