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아베노믹스’로 표현되는 일본 정부의 엔화 절하 정책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현지시각으로 12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엔화 약세 정책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은 일본의 ‘엔저’에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부의 이 보고서가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국면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언론의 기사 등이 어려운 경제용어로 채워져 있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미디어스 역시 어려운 경제용어를 마구 동원하여 그간 알아듣지 못할 기사를 써왔다. 때문에 오늘은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동에 대하여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아베노믹스란?

1989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이후 일본은 장기불황에 시달려왔다. 부동산에서 시작된 거품경제의 붕괴는 경기를 위축시켜 기업 활동에 치명적 피해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됐고 이는 다시 경기위축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경기 부양에 힘을 쏟았으며 상당 부분의 국가 재정이 이를 위해 소요됐다.

결국 비교적 건전한 편이었던 일본의 국가 부채 수준은 GDP대비 200%(한국의 국가 부채 수준은 34% 정도이다) 이상까지 치솟았다. 국가 부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출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지키려 했지만 지출을 줄이면 경기가 위축되고 또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또 다른 악순환이 반복됐다.

여기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까지 터졌다.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대표적 기업들의 설비가 무력화되면서 일본을 대표했던 제조업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집권을 하게 된 아베 신조와 자민당 내각의 고민은 어찌됐건 경기 위축이 이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아베 신조 제90대 일본 총리 (사진 출처 : 가디언)

따라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 공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정도였다.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는 조치를 취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의도다. 돈이 더 많이 돌면 투자도 늘고 소비도 늘고, 이런 얘기다. 이를 ‘통화완화 정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면 개별 통화가 갖는 가치는 당연히 하락한다. 즉, 이런 이유로 아베노믹스가 엔저(円低)를 유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통화량이 늘면 개별 통화가 갖는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전체 경제가 이를 떠받치지 못하면 물가가 오른다. 1,000원으로 설탕 1kg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800g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것을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한다”고 말한다. 즉, 인위적 경기부양의 마지막에는 물가상승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물가상승이 위험 수준에 도달하면 정부는 경기부양을 중단한다. 이를 보통 ‘출구전략’이라고 한다.

엔저로 인한 환율전쟁 시작될 수도

일본 정부가 밝히는 출구전략의 시행 기준은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이 목표를 2년 안에 달성하겠다는 아베 내각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그만큼 앞으로도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화완화 정책은 필연적으로 주변국과의 갈등을 일으킨다. 환율은 각 국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환율의 변동에 따라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베 내각이 엔저를 계속 밀어붙일 경우 일본의 기업들은 결과적으로 좀 더 높은 수익을 내는 수출을 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지만 그렇게 되면 교역 상대국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엔저로 국내의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받았다는 보도를 보면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9일 오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엔 환율이 전일대비 소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뉴스1

국제투기세력의 자금을 의미하는 소위 ‘핫 머니’의 이동도 문제가 된다. 일본이 통화완화정책을 통해 공급한 싼 엔화가 제3국에 투자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헝가리 등의 시장에서 통화가치가 급등하는 등 이상기류가 관측된다는 소식은 통화완화책의 이러한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금리를 조정하거나 환시장에 개입하는 등의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게 심화되면 서로 앞 다투어 시장에 개입하는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세간의 우려다.

때문에 일본이 이 정도의 통화완화정책을 펴려면 미국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북한의 핵실험은 이러한 미국의 양해가 가능한 상황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위기 국면에서 미국은 일본, 한국을 자기편으로 묶고 중국을 견제하는 판을 만들기 위해 움직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의 통화완화를 비난하려는 유로존의 불만을 무마시켰다. 지난 2월 일본의 통화완화 정책에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됐던 G7의 공동성명이 예상보다 후퇴한 수준으로 발표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미국의 사정

이후 미국은 일본에 TPP참여 논의 시작 등을 촉구했고 그간 농업부문의 피해 등을 들어 TPP에 반대해온 일본은 못 이기는 척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태세다. TPP는 미국이 중국의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틀을 만들려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에서도 슬슬 TPP 가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외경제연구원의 김규판 연구위원은 지난 11일 ‘일본의 TPP협상 참여 선언’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TPP참여가 단기간에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이를 대비해 한국이 TPP참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중일FTA 등에 무게를 둬온 그간의 정책 방향과는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의도한 대로 판이 짜이고 일본 정부의 통화완화가 예상보다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자 이 시점에서 미국은 유로존과 국내 산업계 등의 반발을 감안해서라도 더 이상 엔저를 용인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미국 재무부의 보고서는 이러한 미국의 곤란한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 참석한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때도 엔저가 용인돼 아베노믹스의 위력이 가속화 됐다는 평가다. ⓒ뉴스1

18, 19일 양일간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예정돼있다는 점도 미국이 이러한 입장을 내놓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G20 회의에서 유럽연합이 공공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90%이하로 줄이는 등 긴축의 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조약 상 공공부채 비율을 60% 이하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제기로 영향을 받는 국가는 앞서 설명한 일본과 이와 마찬가지로 3차에 걸친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GDP대비 106%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G20 회의를 무사히 넘기면 다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 용인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세계에서 여전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며 미 재무부의 보고서 역시 “일본의 정책수단은 국내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로서는 이 국면을 넘어 경제 회복을 기치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이후 헌법개정요건을 규정한 헌법96조 개정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9조를 개정해야한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의 일단이 G20 회의에서의 논의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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