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2월 12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 이 보도를 통해 최일구 앵커는 "전 말레이 곰에게 이런 말 해주고 싶어요. 자꾸 도망다니지 말레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MBC뉴스데스크 화면

"말레이곰 자꾸 도망가지 말레이~"

'최일구 어록'이 있을 정도로 최일구 기자는 MBC를 대표하는 앵커였다. 최 기자가 2월 사표를 제출하며 MBC를 떠났을 때 많은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딱딱한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그의 모습을 더 이상 TV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진행자로 돌아왔다. 1985년 입사 이래 MBC 보도국에서 기자의 삶을 살아오던 최 기자가 교양·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미디어스>는 13일 서울 상암에 위치한 SNL코리아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최 기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미국의 코미디언들이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자유롭게 표현하고 풍자하는 날이 오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장진 감독이 진행하던 SNL을 보게 됐다"며 "그걸 보면서 '나중에 내가 꼭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아닌 방송인 프리랜서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에 부담은 없을까? 최 기자는 "겁이 난다" "두려움을 느낀다"며 솔직한 심정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했다.

최 기자는 지난해 '170일' 파업에 동참하면서 MBC로부터 숱한 징계를 받았다. 그가 MBC를 떠난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김재철 사장이 해임됐다. 최 기자는 김 사장에 대한 질문을 하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긴 침묵 끝에 최 기자는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이제는 MBC가 잘됐으면'이라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장이 들어와 MBC 정상화의 일환으로는 최일구 기자를 다시 부른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최 기자는 고민없이 웃으며 말했다. "고향에서 불러준다면 내가 마다할 이유가 뭐 있을까? 나는 마음 속에 MBC를 품고 있다. 내 평생 동안 밥을 먹여준 회사가 거긴데."

(인터뷰는 연합뉴스, 노컷뉴스, 스포츠경향, 텐아시아 등 5개 매체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던 SNL코리아

기자 : 근황이 궁금했다.

최일구 : MBC에서 있던 세월을 따져보니 만 27년 3개월이더라. 85년도 12월에 입사했으니까. 사표가 수리되고 나서 특강과 같은 새로운 분야에 나가볼까 생각을 했었다. 지방에 머리를 식히러 여행도 다녔다. 3월에야 돌아왔는데 마침 tvN 쪽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서로 얘기를 했고 4월 초에 이 곳에 오기로 결정을 했다. 작년 2월 말부터 앵커를 그만두고 파업에 참여했으니 쉬는 생활이 1년하고도 한 2달 정도 됐던 것 같다.

기자 : 왜 SNL코리아를 선택하게 됐나?

최일구 : 여행을 마치고 3월에 올라오니 tvN말고도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었다. SNL코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코미디언이 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자유롭게 표현하고 풍자하는 날이 오겠구나 생각을 했었고, 재작년 11월 말인가 장진 감독이 진행을 하던 SNL코리아 시즌1을 보게 됐다. 그걸 보면서 '나중에 내가 꼭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SNL코리아가 예능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됐다. 53세인 내 나이도 그렇고. 또 줄곧 해오던 일이 기자인데, 유명 연예인 속에서 이 일을 맡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렵게 결정했다.

▲ SNL 코리아로 컴백한 최일구 앵커 ⓒSNL코리아

기자 : 종편에서도 러브콜을 세게 했다고 들었다.

최일구 :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다른 제안보다도 하고 싶었던 건 'SNL 위켄드 업데이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자 : 항간에는 백지연 앵커의 피플 인사이드 후속 프로그램에 대한 tvN의 제의가 있다고 하던데.

최일구 :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여기 관계자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출입증도 지금 받았다. 명함도 없다. (웃음)

기자 : MBC에서처럼 재치있는 클로징이나 날카로운 촌평을 기대할 수 있나?

최일구 :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쪽의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첫날이고 해서 SNL 안상희 PD가 정해준 범위에서 내가 조금 수정을 했다. 차츰 맞춰가면서 해야지 처음부터 MBC에서 했던 것처럼 할 수도 없잖나. 여기 분위기도 있고. 봐가면서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줄 생각이다.

"가혹한 징계, 회의 느껴"

기자 : 김재철 사장이 퇴진했을 때의 심경이 궁금하다.

최일구 : 떠난 사람이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침묵)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떠난 입장이라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 김재철 사장도 자기가 생각할 때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고,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우리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 년 넘게 행동을 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이제는 MBC가 잘됐으면'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MBC가 잘되기만 생각한다.

기자 : 최 기자가 떠난 후 2달도 지나지 않아 김 사장이 떠났다. 'MBC에서 버틸 걸'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나?

최일구 :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프리랜서를 한다는 게 겁이 난다. 진짜 겁이 났다. 직장이라는 우산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많이 겸손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53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할 것 같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기자 : 징계 이후 모멸감이 컸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최일구 : 작년 2월 파업에 동참하면서 길어봐야 3~4달 안에 정리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다보니 170일 파업을 하게 됐다. 이후 정직이 내려지고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서 교육을 받게 됐다. 앵커를 하다보니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회의가 들었다. 인생이라는 게 한 번뿐인데, 나이는 점차 들어가고.

신천까지 왔다갔다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러던 차에 2월 4일 정직 3개월이 나왔다. 내가 사규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회사에 신고를 하고 특강을 해야 하는데, 신천 아카데미에 있다보니 하지 못했다. 신고를 하지 않고 특강을 해 인사위에 올라가게 됐고 정직 3개월을 받게 된 것이다. 회사가 나에게 더 이상 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과 회의를 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회사의 결정이 그렇게 나오니.. 정년 퇴직까지 동료 선후배들과 MBC에 뼈를 묻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보니 사직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 최일구 앵커가 지난해 언론노조 MBC 본부의 '170일 파업'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뉴스1

기자 : 현재의 MBC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

최일구 : MBC의 조직을 추스리는 문제는 새 사장이 와야 풀릴 것 같다. 지금은 과도기 체제인 것 같은데 MBC에 아직도 힘이 없는 것 같다. 새 사장이 온 뒤에야 조직이 재정비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MBC의 상황을 잘 모른다. 떠나다 보니 구성원들과 연락이 잘 안 되더라. MBC에 있는 선후배들이 내게 전화하기도 그런 것 같고 내가 그 쪽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일이 돌아가는 걸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기사 나오는 것 이외에는 MBC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기자 : 최 기자에 이어 오상진·문지애 아나운서가 사표를 냈다.

최일구 : 내가 사표내고 2주 뒤 오상진씨도 사표를 냈다. 오상진씨는 유능한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특별히 도움말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잘하실 것이다. 문지애씨도 사표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문지애씨는 마지막에 <뉴스데스크> 짝꿍도 같이 했던 사이다. 그래서 문지애씨엔 전화를 했다. '정말로 학업과 가정 때문에 그만둔거냐'고 물었다.(웃음) '네. 맞아요. 국장님' 그러더라. 그래서 '너까지 나간 거에 참 놀랐다. 네 뜻대로 집안에서 쉬면서 다음에 한 번 보자'고 말했다.

기자 : MBC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최일구 : 얼마 전에 한 후배와 통화를 했다. 후배가 '최 선배 이렇게 떠나가시면 어떻게 하나. 참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지만 이제부터 MBC 조직을 추스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외부적으로야 시청자들의 신뢰도를 옛날처럼 다시 향상시켜야 할 것이고. 후배들에게 미안함이 크고 대신 밖에 나와서도 후배들에게 누가 안 되도록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MBC가 부르면 마다할 이유 없어"

기자 : 앞으로 계획을 묻고 싶다.

최일구 : 지금 계획 같은 게 있을리 없다.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조금 전에 안영미 씨와 리허설 같이 해 봤다. 1년 2개월 만에 일을 하다보니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 PD나 스태프 등 이 곳의 많은 분들이 젊고 활력이 넘친다. 신동엽, 유세윤씨 등 에너지 넘치는 분들과 같이 호흡을 하다보니 젊어진 기분이 든다. 상당히 좋다.

기자 : 진행자로서의 역할만 하게 되는 건가?

최일구 : SNL코리아는 한국 최고의 희극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내가 그들처럼 할 순 없잖나. 예능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기자로서의 이미지는 가지고 가고 싶다.

기자 : MBC에서 새 사장이 프리랜서 진행자 최 기자를 부르면 갈 건가?

최일구 : 고향에서 불러준다면 내가 마다할 이유가 뭐 있을까? 나는 마음 속에 MBC를 품고 있다. 내 평생 동안 밥을 먹여준 회사가 거긴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