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같은 대학에서 강의했던 다른 학과의 ‘K' 동료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강탈당했다며 울분을 토하며 필자에게 털어놨다. 얘기인 즉은, 어느 날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째로‘ 충청권의 한 대학연구소의 연구프로젝트 논문으로 올라간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즉시 달려가 항의했더니 그 연구소 소장은 발각된 것에 대해 당황해하며 미안해하더니, 곧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식의 반응을 보여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 연구소 소장의 부정은 연구소 관계자들에게도 이미 알려진 것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타인의 학위논문을 그대로 ’강탈‘해 연구실적을 부풀리고 연구비를 타내는 수법은 상습적이란 얘기다.

그 이후 문제가 더욱 가관이었다고 한다. 남의 논문을 강탈한 범죄행위로 책임을 물어 연구소 소장과 연구원들이 고소를 당하고 직위를 박탈당해야 함에도, 그러기는커녕 ‘한 번만 봐달라는’ 통사정과 함께 이미 그 연구소 연구논문으로 공표되는 과정에 있기에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K' 동료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돈을 투자해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논문에 이름을 함께 올리는 것뿐이었단다. 자신의 학위논문, 그것도 박사학위논문이 타 연구기관의 연구프로젝트 논문으로 탈바꿈한 것은 물론, 원저자인 자신의 이름은 주저자도 아닌 공동저자로 올라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학위논문을 자신도 타기관의 연구논문으로 ‘재활용’한 것이 되었으니, 차후에 이러한 부정 행위가 밝혀지면 본인이 허락한 것이 되어 공범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왜 고소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 분야의 학계가 좁은 곳인데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언론에 폭로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 소장의 인맥과 영향력이 학계에선 비정규직보다 훨씬 넓고 클 것이며, 또 표절이 밝혀져도 무마되기 일쑤고, 이런 문제로 차후에 교수임용에 자신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문제는 이렇게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 글을 그 연구소 관계자들이 언젠가 읽게 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 의문이다. 너무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일이라 꼭 밝혀져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일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아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표절문제는 고위공직자, 학계, 방송연예, 음악, 예술, 게임, 디자인, 종교계 등 어디 한 군데 깨끗한 곳을 찾기 힘들다. 단순 표절을 넘어 논문을 ‘통째로’ 강탈하고도 대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고, 논문대필, 남의 논문 짜깁기 사실이 들통이 났어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의 강건함이 놀랍다. 논문표절은 거짓으로 치장된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표절로 쌓은 한국대학들의 외형적 거대화는 아슬아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사상누각의 학문세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제저널에 실렸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던 이들의 논문들이 차후에 표절로 드러나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당했고, 희대의 사기극으로 악명을 날렸던 황우석 교수 이후에도 계속되는 표절과 연구결과 조작 등이 수차례 밝혀졌는데, 앞으로도 국제저널에 실린 연구논문들의 표절이 밝혀지는 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CI 같은 국제저널 혹은 국내 등재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어야 실적으로 인정되는 한국학계의 괴상한 실적주의가 국제적 망신을 양산하고 있다. 허울 좋은 ‘명문대학’이니 ‘명품대학’이니 ‘글로벌 리더’ 운운하는 공허한 외침에 대학들은 세계 최고의 등록금으로 건물을 높이 올리며, 마치 대학의 위상도 높아진 것처럼 자부하고 있다.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자신들의 논문실적을 표절로 채우고 학위를 남발하고 표절이란 부정행위로 얻은 학위로 대학교수, 총장이 되거나 고위공직자 또는 국회의원이 되어 부당이득을 취해온 이들이 학위박탈과 직위박탈도 당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강탈하는 뻔뻔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석, 박사학위 논문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하는 인고의 결과물로 무형의 지적재산인데, 이렇게 타인의 석, 박사학위 논문 전체를 가져다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거나 혹은 대필로 학위를 얻고도 무사한 모순 덩어리인 이 사회엔 더 많은 진통과 대수술이 요구된다.

심지어 ‘도적’이나 ‘도둑’을 ‘도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난무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고, 또 ’스스로에게‘ 아주 관대한 분위기로 몇 줄, 몇 페이지 정도의 표절쯤이야 어디 표절이란 딱지를 붙일 수 있으랴! 이러한 ’표절 만능사회‘에서 요사이 논란이 됐던 석사학위 논문표절로 학위를 반납하거나 방송프로에서 하차한 김미경, 김혜수, 김미화 방송연예계의 ’3 김‘의 경우는 오히려 과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김혜수는 논문표절로 즉시 사죄하고 학위를 반납한다는 이유로 ’타의 모범이 되어‘ 칭찬까지 받는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대학에선 석사논문이건 박사논문이건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는 말이 비밀도 아닌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는데, 논문심사에 돈이나 접대를 요구하는 사례도 흔하게 듣는 얘기다. 그러니 제자가 지도교수의 논문을 표절해도 논문이 통과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논문 한편 쓰고, 이것을 여러 편으로 만드는 수법도 성행하는데,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연구자들이 서로 이름 올려주기를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다른 연구에 참여한 것처럼 말이다. 표절과 논문실적 부풀리기 수법이 워낙 교묘하고 다양하니 ‘창조경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국의 지식사회는 온통 표절이란 지적도적질로 세워진 허상에 가까우니 ‘표절한 교수들을 모두 공개하면 한국대학 전체가 무너진다’라는 말은 알면서도 더 이상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결론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부정행위로 얻은 교수직은 박탈해야 하며,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논문은 모두 재검토해 '논문표절 인명사전'을 만들어 공개하고, 윤리적 책임과 함께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미래창조과학부’까지 신설하고 ‘창조, 창조’를 외치며 ‘창조경제’를 고안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마당에 온 사회가 고질적 표절문제로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 분위기로 봐서 ‘창조경제’도 모방이나 표절하면 되는데 뭐 그리 고심할 일도 아니다. 어쩌면 공무원들이 뉴스타파의 보도처럼 “창조경제를 창조하느라” 표절할 자료를 분주하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자료1: 시사IN 사이트 캡쳐. 박상기 교수의 시사에세이 첫 문장부터 박길홍 교수가 표절하고 있다
표절 비판하며 표절하는 표절불감증 세상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조선일보의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을 비롯해 각 언론마다 표절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해외사례를 들어 한국사회의 표절불감증을 다루기도 하는데, 기사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바로 한국경제 온라인사이트에 실린 ‘박길홍의 세상돋보기’란 칼럼 중 하나다.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의 “표절 아니면 논문도 못 쓰는 사람이 웬 창조경제?”란 칼럼(2013.4.11)은 바로 주간지인 시사IN의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시사에세이(2013.4.6. 제290호, 80쪽) “메르켈 총리는 무엇이 달랐나”를 표절했는데, 이 글은 시사IN 온라인 4월 9일자에 “메르켈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점”이란 제목으로 다시 게재된 것이다. 부끄럽게도 박길홍 교수는 표절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자신도 박상기 교수의 칼럼을 표절하고 있다. 다음은 고려대 박길홍 교수가 쓴 칼럼과 박상기 교수의 칼럼을 비교한 내용이다.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의 “표절 아니면 논문도 못 쓰는 사람이 웬 창조경제?”>

최근 김혜수·김미화·김미경씨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들도 학위논문 표절이 논란이 되자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그만두거나 학위를 반납하는 등 나름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은 논문표절에 대하여 더욱 엄격하다. 무역수지 흑자가 세계 최고로서 중견기업의 창의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역량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2명의 장관 교체를 단행하였다. 지난 2월 아네테 샤반 연방교육장관이 30여 년 전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이 대학 심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학위를 박탈당하고 교육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2011년 3월에는 30대 젊은 나이에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높던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 2007년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취득한 법학박사 학위논문이 표절이었다는 대학 조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박사학위가 취소되고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다. 두 장관 모두 메르켈 총리의 최측근 인사로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물러난 샤반 독일 교육장관은 재임 시절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던 인물이었고 메르켈 총리와의 각별한 인간관계는 같은 당 소속이라는 동지애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알려져 있다.

(...)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이 논문을 표절한 경우는 이들이 막강한 영향력으로 나라의 틀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정립하는 소임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또한 취득한 학위로 인해 그동안 보직 등에서 부당한 혜택을 입었을 수도 있다.

<박상기의 시사에세이 “메르켈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점”>

지난 2월 독일의 아네테 샤반 연방교육장관이 30여 년 전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이 대학 심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학위를 박탈당하고 교육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후임에는 동독 출신 수학 교수가 장관에 임명됐다. 2011년 3월에는 30대 젊은 나이에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높던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 2007년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취득한 법학박사 학위논문이 표절이었다는 대학 조사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박사학위가 취소되고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다. 두 장관 모두 메르켈 총리의 최측근 인사로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메르켈 총리는 표절논란이 일던 초기에는 이들을 옹호했지만 결국 여론의 비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김혜수·김미화·김미경씨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학위논문 표절이 논란이 되자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그만두거나 학위를 반납(학위반납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하는 등 나름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논문표절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학벌주의·간판주의, 요즘 표현으로는 스펙 중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이들에게 직업상 학위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왜 이런 불필요한 일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논문을 표절한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고, 취득한 학위로 인해 그동안 보직 등에서 부당한 혜택을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쓰고 안 쓰고는 인사권자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 기준이 중요하다. 친소관계나 개인적 충성심 여하만으로 정부 인사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공적인 관계에서는 그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물러난 샤반 독일 교육장관은 재임 시절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던 인물이었고 메르켈 총리와의 각별한 인간관계는 같은 당 소속이라는 동지애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알려졌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장관 교체를 단행했다.

사진자료2: 한국경제 온라인 박길홍 교수의 칼럼 사이트 캡쳐
표시된 부분은 단어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표절한 것으로 짜깁기 수준이다. 문장을 변형한 표절도 들어 있다. 참으로 할 말이 없다. 박 교수는 표절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도 표절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토록 능청스럽게 표절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아마도 칼럼은 논문이 아니니 표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대학교수들조차 무의식적으로 혹은 아예 습관적으로 표절하고 있으니 표절교육은 대학교수들부터 받아야 할 것 같다. 박 교수의 칼럼제목을 약간 바꾸어 표현하면, 소위 명문대 교수들조차 ‘표절 아니면 글 한편 못 쓰는데 웬 창조경제?’란 말이 절로 나온다. 사회 지도층이 본보기를 보여야함에도 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헛수고로 느껴져 허망하며, ‘짝퉁의 세계’인 대한민국 표절공화국에선 누구를 탓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해당기사 링크>

박상기의 시사에세이 “메르켈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점”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의 “표절 아니면 논문도 못 쓰는 사람이 웬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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