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반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SNL코리아>의 콩트 ‘글로벌 텔레토비’가 떠올랐다. 크루 김민교가 북한의 김정은으로 분해 ‘핵핵핵’거리며 또를 연기하는 김슬기에게 딴죽 거는 시추에이션이 떠올라서다. 지구는 침략자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게 핵무기를 사용하고, 그 대가로 인류는 지구라는 안식처를 반납한다. 외계인에게 점령당해서가 아니라 핵 공격으로 지구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핵전쟁의 후유증으로 황폐화된 지구에서 정찰병으로 활동한다. 무인정찰기 드론의 고장 유무를 살피거나 지구의 바닷물을 퍼 올리는 작업을 하는 잭은 기억의 파편에 시달린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영상은 온전한 기억이 아니라 퍼즐 조각처럼 흐트러진 기억이다. 한 여자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는 한는데 어떤 여자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오블리비언>이라는 제목 자체가 관객에게 힌트를 제공한다. ‘망각’이라는 뜻, 지금 정찰병으로 활동하는 잭이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잭이 기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표현이 제목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잭이 잃어버린 기억은 어디서부터 되찾아야만 할까? 잭이 갖고 있는 기억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서이다.

<오블리비언>은 <매트릭스>와 일정 부분 맥락을 같이 한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 분)는 인공 자궁에 갇혀 지내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에게 지금 알고 있는 네오의 기억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는 선각자적 인물이다. 자유인으로 지내는 줄로만 알고 있던 네오의 기억이, 실은 AI의 매트릭스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억의 감옥 안에 갇혀 있다는 진실 말이다.

<오블리비언>의 말콤(모건 프리먼 분) 역시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처럼 지금 잭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준다. 잭이 잊혀진 기억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도록 만들어주는 조력자가 말콤이라는 이야기다. 잭의 기억에 어른거리는 여자는 과연 누굴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말콤은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로부터 내려오는 ‘흑인 선각자’의 전통을 계승한다.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 실감나는 액션을 관객에게 선보인 바 있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감각을 잃지 않고 무인정찰기 드론의 활약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공중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의 현란한 앵글 및 드론의 워프는 감독이 SF 추격전을 연출함에 있어 감독이 시각적인 효과를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게 됐지만 그 진실을 알게 된 본인에게 100%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함께 잔 그리스의 오이디푸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잭이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지 않고 진실을 모른 채 행복한 나날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진짜 기억의 파편을 알게 된 후 오이디푸스의 길을 걷게 되는가 하는 성찰을 담고 있는 SF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