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화요일 저녁이었다. 출입처 중 하나인 EBS를 돌고 EBS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 삼성동 코엑스로 향했다. 다음 아고라 네티즌들이 코엑스 건물에서 열리는 'OECD 장관회의'에 참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규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이미 아고라에서는 최시중 위원장의 이동경로에 대한 추측과 함께 효과적인 집회 장소를 담은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언론현업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아닌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최시중 사퇴를 촉구하기 때문이었을까.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정국'으로 인한 피로함에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렘'과 '짜릿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최시중 사퇴'를 촉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다음 아고라 네티즌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최시중 사퇴 촉구'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언론단체 관계자들은 정작 이 자리에 별로 보이지 않았다. 넉넉 잡아 50명도 안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최시중씨가 있는 회의장 앞에서 경찰차와 대치해가며 목소리 높여 '최시중 사퇴'를 외치는 이들은 아이와 손잡고 온 부모, 학생 등 정말 평범한 시민이 훨씬 많았다.

참석한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촛불집회 배후세력'이라고 지목받기 싫어 타이틀없이 조용히 결합하기로 했다"고 한다. '배후세력'이라.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은 정부의 7,80년대식 '배후론'에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고 있다.

언론단체 관계자들은 '배후론'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어이없음'을 과감하게 뛰어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일까? 설령 '배후세력'이라면 뭐 어떤가.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최시중씨가 한 나라의 방송과 통신정책을 관장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더 어이없는 상황 아닌가. 이에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연대해 '최시중 사퇴'를 당당히 외치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일까.

지난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규탄에서 자연스럽게 '조중동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촛불문화제의 자유발언에서는 '조중동 비판'이 결코 빠지지 않았다. 평소 언론단체관계자들이 '공공의 적'이라고 비판해온 조중동의 실체와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정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된 것이다.

▲ 촛불집회 현장에 나온 시민들의 손팻말 ⓒ송선영 기자
언론이슈에 대해 시민들이 이만큼 공감한 적이 있었던가. 연일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내도 많은 시민들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문제'나 'MBC민영화론' 등 각종 언론 이슈에 대해 냉담했었다. 이들이 외치는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솔직히 많은 시민들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그러다 이번에 터진 미 쇠고기 문제는 시민들에게 '언론의 중요성'을 생활 속에서 일깨워줬고 이는 솔직히 말해 언론단체에게 '완전 호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언론이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들의 공감을 더욱 이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인 집회현장에서 이들 단체의 활발한 활동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시민들에게 언론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며 이 국면을 이끌어가기보다 오히려 자신들보다 '조중동 규탄'에 더 적극적인 시민들의 반응에 놀라워하며 이들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현재 집회현장에서 '최시중 사퇴' '공영방송 수호'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은 'MBC민영화', '최시중 위원장 문제' 등에 대해 핵심을 꿰뚫고 있다. 현장에서 듣게 되는 그들의 주장은 미디어 전문지 기자들 뺨칠 정도로 명쾌하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통해 '감'으로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슈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던 언론단체들이 촛불집회 현장에 적극 참석해 각종 언론 이슈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어떨까.

"지금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임원 임명권한을 갖고 있어요.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MBC민영화에 최씨가 결정적 역할을 하겠죠?" "MBC가 민영화되면 <PD수첩>보기가 어려워져요. <무한도전>도 좋아하시죠? 초기에 부진을 면치 못했던 <무한도전>도 민영화되면 보기 힘들어져요.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없애버리니까요" "여러분 조중동 싫어하시죠? 조중동같은 방송국이 하나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등등

방통위원장 문제, MBC민영화 외에도 신문방송겸영 허용, 신문고시 폐지 등 작금의 시민들에겐 자신들의 '공정한 방송을 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언론 현안들은 산적하다. 언론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은 언론단체들이 외쳐왔던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절호의 기회'인 집회 현장을 이용하지 않는 걸까. 기자회견 개최, 성명서 발표 등 기존의 운동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초년기자의 눈으로 보기에 정말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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