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루카스 아츠(Lucas Arts)의 로고. 많은 게이머들을 추억에 젖게 만든다.

고전게임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만한 게임 제작사인 ‘루카스 아츠(Lucas Arts)’가 사라졌다. 지난 4일, 월트디즈니 측이 6개월 만에 개발인력 150명의 해고와 개발 중이던 모든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등 루카스 아츠의 실질적인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게임의 자체 제작보다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 IP) 라이선싱이 안정적 이득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월트디즈니 측의 설명이다.

2012년 10월 월트디즈니가 우리 돈으로 약 5조원을 들여 조지 루카스가 세운 영화사인 ‘루카스 필름(Lucas Film)’을 인수하면서 루카스 필름의 영상 및 컴퓨터 게임 자회사인 루카스 아츠도 월트디즈니의 것이 됐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그야말로 전설적인 게임 제작사 하나가 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

루카스 아츠는 수많은 명작 어드벤처 게임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드벤처 게임이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토리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의 게임이다. 주로 아이템의 적절한 이용 등을 통한 퍼즐의 풀이나 수수께끼의 해결 등이 핵심 내용이다.

▲ 루카스 아츠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원숭이 섬의 비밀. 해적들의 틈바구니에서 세치 혀로 여자친구를 구해내는 못난 주인공의 모험을 그렸다.

루카스 아츠의 대표적인 고전 명작 어드벤처 게임으로는 1990년 발매된 ‘원숭이 섬의 비밀’이 있다. 이 게임은 루카스 아츠의 그야말로 대표작으로 꼽힌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믿을 것이라곤 오로지 세치 혀뿐인 주인공인 가이브러시가 카리브 해의 해적들을 상대로 벌이는 낭만적인 모험은 많은 게이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 게임은 그야말로 대단한 인기를 기록해 2000년까지 3편의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숭의 섬의 비밀은 1987년 발매된 ‘매니악 맨션’의 제작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매니악 맨션의 제작은 루카스 아츠로서는 어드벤처 게임에 대한 최초의 도전이었다. 이전까지는 그들의 주업종이었던 ‘영화’를 게임으로 옮기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에 부딪치기만 했다. 하지만 시에라 온라인의 ‘킹스퀘스트’ 같은 어드벤처 게임을 연구하게 됨으로써 루카스 아츠 개발진들은 영화에서 활용되는 시나리오와 게임의 그것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는 통찰을 얻게 됐다.

때문에 매니악 맨션의 경우에는 영화가 아닌 순수한 게임용 오리지널 스토리가 사용됐다. 독특한 유머와 아이러니한 긴박감이 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남을만한 것이었다. 덕분에 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어 영화와 독립된 형태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어드벤처 게임의 제작 시도는 원숭이 섬의 비밀과 1993년 발매된 ‘텐타클 최후의 날’로 이어지게 된다.

▲ 매니악 맨션의 후속작인 텐타클 최후의 날(The Day Of Tentacle). 주인공들이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세계 평화를 이루는 과정을 그렸다. 과거의 시점에서는 토마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를 게임으로!

하지만 영화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영화사인 루카스 필름의 자회사로 루카스 아츠를 설립한 것은 영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게임의 형식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원숭이 섬의 비밀과 매니악 맨션의 성공은 일종의 과도기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과도기를 통해 쌓은 경험을 이용해 영화를 게임으로 제작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루카스 아츠는 1989년 제작된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기본으로 한 어드벤처 게임을 제작했다.

물론 이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화 내용을 100%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의 게임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게임적’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학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의 내용을 큰 줄기로 하되 세세한 부분에서 영화와는 다른 진행을 보여주거나 플레이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됐다.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은 영화를 기반으로 만든 어드벤처 게임으로 영화 속 내용이 게임으로도 잘 표현돼있다.

이를테면 인디아나 존스가 아버지인 헨리 존스를 구출하러 브룬발트 성에 진입하는 장면은 영화에서는 다소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게임에서는 여러 명의 보초들을 속이고 골탕 먹이며 퍼즐을 풀어가야 간신히 헨리 존스가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영화에서는 지면의 균열로 떨어진 성배를 현명하게 포기하면서 교훈을 얻게 되지만 게임에서는 ‘채찍’ 아이템을 이용해 성배를 획득해 성배의 기사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게 된다. 게임의 엔딩에서는 플레이어가 획득한 점수가 표시되는데 원작인 영화를 잘 재현했으면 높은 점수를 얻게 되지만 영화에서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부분 등에서 재치를 발휘하여 이를 좋은 결과로 돌려놓으면 추가적인 점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원작 영화를 본 플레이어라도 게임 플레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993년 루카스 아츠는 그 유명한 ‘스타워즈 : X-윙’이라는 액션게임(오늘날의 세분화된 기준으로는 우주비행전투시뮬레이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을 제작하는데 이 역시 영화 ‘스타워즈’를 소재로 한 게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반란군 전투기를 타고 제국군 전투기들과 싸워 이기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 게임이 그게 성공하자 루카스 아츠는 스타워즈를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비행시뮬레이션, 1인칭 슈팅,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롤플레잉 등의 장르에서 스타워즈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속속 개발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루카스 아츠는 스타워즈 게임의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영화를 통해 기본적인 소재를 생산하고 이를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들을 통해 재생산하는 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국군의 전투기인 '타이 파이터'를 타고 반란군을 제압하는 내용을 즐길 수도 있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월트디즈니가 루카스 필름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캐릭터를 재생산해 판매하는 것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다. 이들은 스타워즈의 등장 캐릭터가 가진 상품적 가치를 대단히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루카스 필름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인 인디아나 존스의 경우 배급사였던 파라마운트 등과의 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스타워즈의 경우 판권 전체를 월트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앞으로 월트디즈니는 원래부터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만화 캐릭터에 스타워즈를 포함시킨 캐릭터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월트디즈니 측은 당장 스타워즈 에피소드 7, 8, 9에 대한 제작의사를 밝혔고 이 중 에피소드 7의 경우 기초적인 수준의 작업이 진척돼 있는 상태다.

▲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루카스 필름의 인수 계약에 서명하는 조지 루카스(오른쪽). (출처 : 월트디즈니)

하지만 루카스 아츠의 폐쇄는 영화와는 달리 게임 개발을 월트디즈니가 포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신 IP 라이선싱을 통해 다른 게임사가 제작한 게임에서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배경, 설정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대신 돈을 받겠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개념으로 보면 ‘앉아서도 돈을 버는’ 방법인 셈이며 이것이야말로 그간 월트디즈니가 성장해온 핵심 전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문화산업을 성장시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는 그 자체가 가진 산업적 파급력에 대한 기대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지만 지적재산권과 연관된 부가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더 큰 이윤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고려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화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콘텐츠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문화 융성’ 등의 구호를 동원해 홍보하고 있는 문화정책도 월트디즈니가 갖고 있는 정책적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델일 가능성이 크다. 즉, 루카스 아츠의 폐쇄와 월트디즈니의 전략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경제’의 한 단면을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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