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nymous)의 해킹을 토대로 종북몰이에 나선 5일자 조선일보 1면.

‘해킹’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사회적 물음

지난 1월, 인터넷 공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RSS’(Really Simple Syndication,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된 정보를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도 자신의 PC에서 쉽게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형식)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던 천재 프로그래머 에런 스위츠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유족들은 3월 시작될 재판에 대한 부담감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검찰과 MIT대학을 규탄했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지향했던 스워츠는 2010년 유령계정을 통해 MIT 대학이 운영하는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제이스토어(JSTOR)에서 480만 건의 논문을 내려 받아 공유했다. 애초 MIT대학은 스워츠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를 기소하겠다는 미국 검찰의 입장은 강경했고 결국 기소됐다. 미국 검찰은 그를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훔친 테러범’ 취급했다고 한다.

스워츠의 자살은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그에게 해킹 당했던 제이스토어 마저 추모를 할 정도였다. 제이스토어는 그의 죽음 이후 “학술적 지식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우리 조직이 이번 기소에 끌려들어 간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발표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현행 법률 상 그는 학술 논문을 해킹한 범죄자였지만, 그가 한 행위 공익성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는 현행 법률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nymous)는 스워츠의 죽음을 추모하며 MIT대학의 홈페이지를 해킹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그 해커집단이다.

▲ 북한의 사이트가 해킹당했다는 내용을 전한 3월 31일자 외신 보도 화면 캡처.

북한 사이트 해킹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는 누구인가?

‘어나니머스’는 2003년 미국에서 결성된 국제 해커그룹으로 알려진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검열 반대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의를 주장하며 갖가지 범죄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간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위키리크스의 금융 활동을 차단한 금융회사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에 대한 디도스 공격’, ‘IMF와 FBI 해킹’, 파일 공유 사이트 폐쇄에 대한 항의 활동으로 ‘미 법무부와 정부 관련 사이트 디도스 공격’ 등이 있다. 이들이 북한 정부 사이트와 대남선전사이트 등을 해킹하며 요구한 것은 ‘핵무기 개발과 핵을 통한 전쟁 위협을 멈출 것’,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퇴진’ 등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향후 “사이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애초, ‘어나니머스’의 북한 사이트 해킹은 제대로 보도지지 않은 채, 소셜 사이트의 관심자들을 중심으로 정보가 먼저 퍼져나갔다. ‘어나니머스’의 북한 공격은 지난 달 29일 우선 북한 정부의 영문 사이트와 문화 관련 부서 및 고려항공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시작됐고, 2일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해킹하는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역시 빨랐는데, 지난 달 30일 이미 북한은 ‘사이버 전시 상황’을 선포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은 이 상황이 한국을 향한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한국 정보당국이 ‘어나니머스’의 북한 사이트 해킹을 어느 시점에 파악하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한국 언론이 관련 내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늦게 인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도 ‘어나니머스’가 북한 정부 사이트 등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세계 최강 해킹조직, 북한이 해킹 당했다는 ‘통쾌함’

외신 등을 통해 ‘어나니머스’의 해킹 사실을 먼저 접한 이들은 소셜 사이트들을 통해 뭔가 ‘통쾌한’ 감정을 나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굵직한 사이버 문제들이 죄다 북한 소행의 해킹 사건으로 지목되던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해킹 집단은 그렇다면 북한이냐’는 자조가 횡횡하던 터에 북한이 역으로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국내에선 생소한 ‘어나니머스’라는 해커집단의 집단이 정보 공개에 있어 더 신비로운 북한의 뭔가를 빼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신세계였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것마저 북한의 소행이 아니냐’는 이중의 음모론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국내 언론의 경우 관련 보도를 2일에 이르러서야 몇 군데가 외신을 인용해 간헐적으로 했고, 본격적인 보도는 4일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리고 하루 만인 5일에 이르러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는 기사로 쏟아지고 있다. 국내 언론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은 것은 사건이 최초 알려진 당시와는 사뭇 달라졌는데, 북한의 정부 사이트 등이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우리민족끼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들을 바탕으로 한 ‘종북몰이’에 치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조선일보는 ‘충격’이라는 말머리만 달지 않았을 뿐, “통진당 전교조 등 상당수 회원 확인”이란 제목의 1면 탑 기사를 통해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상당수의 생활인들이 가입해 마치 대단한 간첩행위라도 하고 있는 듯 ‘암약’하고 있단 부풀리기에 나섰다.

▲ 5일자 중앙일보 1면.‘어나니머스’(Annymous)가 해킹했다는 '우리민족끼리' 가입 명단에는 다수의 언론사 계정의 메일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종북몰이’의 도구가 된 해킹 내용

사실, ‘어나니머스’의 요구는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현실적으론 ‘철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철옹성 같은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이 몇 번의 해킹으로 붕괴되리란 상상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결국 북한이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상식을 위배하는 국가이며, 전 지구적 민주화 흐름에 반하는 매우 낙후된 나라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통쾌함'은 이들의 행위가 '공익적'인 것으로 인지됐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상징적인 것이라면, 우리민족끼리에서 유출된 개인 정보들이 한국사회에 만들어낼 파장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조갑제 같은 이는 우리민족끼리의 정보 유출은 “역사를 바꿀 대특종”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결과적 비대칭이 발생하는 셈인데, 이에 대해 이른바 진보진영은 심란한 경계심과 함께 매우 까칠한 냉소를 내놓고 있다. 여기 검경이 반나절 만에 유출된 명단을 토대로 수사에 나서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기름을 부었다. 이번 해킹 사건은 그래서 어느덧 ‘이번 기회에 종북주의자를 몰아내자’는 선동과 ‘우리민족끼리 명단을 토대로 한 간첩 딱지 붙이기는 헌법 정신을 위배한다’는 반응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물론, 검찰의 수사 방침은 여러모로 무리하며,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행동 이전의 단계에선 처벌하지 않는 근대 형법의 정신이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가입했단 사실은 그 자체로 특별한 불법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며, 이적 행위 여부가 판단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인지 수사가 공리적 법리에 부합하는지도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삼성 X파일’ 사건을 ‘불법도청사건’으로 규정하며 ‘불법적 방법으로 획득한 정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사법당국이 그야말로 불법적 방법으로 획득되고 유포된 정보에 기반 해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표변에 가깝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에 부역행위를 한 고위 관료를 처벌하자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해킹’을 어떻게 볼 것이냐고 묻는다

앞서, 말한 자살한 해커 스워츠의 사례는 해킹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물음을 던지는 사건이다. 모든 국가에서 해킹은 불법이다. 하지만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 그 불법은 법이 외면하는 어떤 권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일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해킹의 경우 그 해킹 행위가 어떤 맥락과 의미 속에서 진행된 것인지를 논쟁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행위의 공익성에 대한 논쟁이다. 해킹을 법이라고 하는 조항에 묶어 강제할 경우, 스워츠의 사례처럼 극단적으로 불행한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해킹들의 경우 논쟁으로 끝내야지 이를 무리하게 실정법의 세계로 끌고 올 경우 전혀 다른 사건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대한 해킹은 스워츠의 사례와는 정반대의 극단적 불행이 될 공산이 점점 커 보인다. 해커의 결과물로 개인들의 프라이버시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할 정부는 역설적이게도 도리어 불법 해킹된 내용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해커의 윤리’를 물어야 마땅할 정부가 오히려 해킹된 내용을 토대로 ‘국민의 윤리’를 묻겠다고 나선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공공연히 돌아다니고 있는 명단을 보면 지하(!) 야동 사이트의 맏형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소라넷’의 운영자도 우리민족끼리의 회원이었다고 한다. 가입 여부의 진위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이미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다. 이를 수사하겠다는 경찰의 방침에 따르면 그도 이제 ‘종북’으로 몰리게 된 셈이다. 검경의 수사가 본격화된다면 어쩜 우린 ‘종북야동사이트’라고 하는 전혀 새로운 지평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 이제, 어쩌면 '종북야동사이트'가 될지도 모를 야동 사이트의 맏형 격인 소라넷.

소라넷 사이트를 ‘종북’이라고 할 것인가?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가입자 가운데서는 정부기관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거나 국책연구기관 이메일 계정도 많다. 조중동을 비롯해 언론사 계정도 여럿이고, 언론사 대표메일도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종북’인가? 우스운 노릇이다. ‘어나니머스’가 해킹한 내용을 토대로 국민의 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나서는 정부의 행태는 그동안 정부가 국내의 해킹 사건을 모두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해왔던 것을 왜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입증하는 모양새일 뿐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을 해킹한 국제 해커그룹의 요구가 어떤 방식으로 국제 사회에 메아리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유의미하다. 거기까지가 이 사건의 '공적 지점'이다. 그걸 넘어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활용하고 심지어 그걸 현행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소아적 태도는 그저 미성숙한 의식의 발현일 뿐이다. 소라넷 사이트가 종북이 되는 세상은 조갑제 닷컴이 좌파 사이트가 되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상상하기 어려운 비약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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