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까지 이어진 촛불 물결. ⓒ서정은

이틀 전에는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날짜가 넘어가기 전에 퇴근하는 것과, 한밤 광화문에서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광역버스는 버스중앙차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빈자리도 하나 꿰찼다. 촛불집회가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은 내 퇴근길 삽화를 통해 객관적 사실처럼 비쳤다. 명징한 상황 변화 앞에 내 몸도 명징하게 반응했다. 아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칼퇴근을 하고 있었다.

마음은…, 당연히 불편했다. 부채감 탓만은 아니었다. 그 날은 마침, 촛불집회를 마뜩찮게 지켜봐온 이들이 배후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반격의 포문을 열어젖힌 날이었다. 대통령은 인터넷의 독성을 경고했고, 소설가는 촛불 진화를 위한 의병 궐기 격문을 내걸었다. 광고 중단과 폐간 압박에 시달리던 (혹은 코웃음치던) 신문들도 “촛불에 섞인 불순성분”이라며 허섭스레기 같은 ‘팩트’들을 지면 위에 가득 전시했다. 내 몸의 욕망은 그들의 반동적 소망의 끝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온전히 그들 탓만 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고백컨대, 난 지난 한 달 동안 저강도의, 그러나 꽤 질긴 혼돈을 겪었다. 광화문 네거리 촛불의 바다 한 가운데 있을 때, 그 선연한 민심 앞에서도 내 의식은 명징하지 않았다. 자주 모호했고, 때로 불편했다. 지휘부가 없고, 그래서 전략적 전술적 목표도 흐릿하고, 결과적으로 실천은 분산되는 거리의 풍경은 내게 요령부득이었다. 이론가들은 그걸 ‘웹 2.0’이라고도 부르고 ‘축제’라고도 부르며 깔끔하게 정리했고, 나도 얼마만큼 머리를 주억거렸지만, 차츰 그 이론가들에게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론가들은 낭만의 구름 위에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담론은 회의(懷疑)의 깔때기를 거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조울증의 합리적 의심도 갔다. 지난 대선 때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던 바로 그 대중에게 불과 몇 달 뒤 숭배의 상찬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에 대해, 그들은 어떤 해명도 없었다. 촛불의 미학에 가려서일까? 무엇보다 그들은 거리 위의 디테일에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를테면 시민들끼리 프락치에 대한 의심이 근거 없이 떠다니고, 이런 분위기에 기대어 일부에서는 ‘차이’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지는데도, 이론가들은 분석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 광우병대책위 방송차량에 올라가 "대책위가 미온적으로 집회를 이끌고 있다"며 항의하는 시민 ⓒ안영춘

지난 10일 저녁부터 11일 새벽까지 광화문 네거리에 앉아 있을 때, 나는 틈틈이 불경한 의문을 품었다. 여기 모인 60만명 가운데 몇 퍼센트가 지난 대선에서 MB를 지지했을까? 그 몇 퍼센트 가운데 다시 몇 퍼센트가 그 선택에 대해 자기성찰을 했을까? 그밖에 몇 퍼센트가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내정자처럼 부동산을 사랑할까? (비록 짝사랑일망정!) 또 몇 퍼센트가 자녀교육을 위해 강남 8학군 진입 투쟁을 벌이는지, 남성의 몇 퍼센트는 술 먹고 성을 사는지, 여성의 몇 퍼센트가 신상 된장녀인지, 혹은 몇 해 전 MBC <PD수첩>을 공격했던 황빠는 없는지…, 이런저런 것들이 궁금해 전두엽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에 갇힌, 어쭙잖은 엘리트 의식(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에서 비롯된 혐의가 짙다. 요는 내 불편함에는 그들 탓보다 내 탓이 더 크다는 얘기다. 행진의 ‘배후’에 서서 이것 재고 저것 따지고 있는 나의 돼지셈보다는 명박산성 앞에서 스티로폼을 얼마 높이로 쌓을지, 산성을 타고 넘을지 말지를 두고 몇 시간씩 논쟁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훨씬 민주적이고, 내 의문이란 기껏 내 경험 안에서 출발해 내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 내 전두엽을 간지럼 태우다 소멸하고 마는, 그들의 소통방식에 견줘 고립상태나 다름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시기에 어떤가? 왜 나같은 인격들이 이른바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새로운 인격들에 의해 ‘찌질이’ 소리를 들어 마땅한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촛불소녀’에서 양성차별이나 세대차별의 낌새를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도 혹 찌질이적인 속성은 아닐까? 이렇게 자기검열에 몰두하는 태도는 또 어떤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난 소설가 이문열에 대해 기묘한 동류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급은 천지차이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이미 어느 한쪽으로부터 대표 찌질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데다, 이번 의병 발언을 통해 촛불소녀들(그의 표현방식으로는 ‘좌파 철부지들’쯤이 맞춤할 것 같다)에게까지 안티팬 왕비호 층을 확대하지 않았는가.

물론, 내 동류의식은 찌질이로서의 연대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는 여러 면에서 나와 유사하며, 강도 면에서는 대부분 나보다 세다. 첫째, 거리의 촛불에 대해 그는 불편함 정도를 넘어서서 강력한 의혹을 제기한다. “쇠고기는 하나의 구실일 뿐, 나는 처음부터 쇠고기 문제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자발성과 순수성을 충분히 위장할 수 있는 분산되고 무형의 비조직적 배후세력들이 존재한다.” 촛불집회는 웹2.0, 축제 따위가 아니라 오래하면 다치는 ‘불장난’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홈페이지. 소설가 이문열씨가 지난 17일 전화로 출연해 ‘불장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둘째,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는 않는다. 내가 60만명의 구성성분을 따진 것처럼, 그는 10%의 MB 지지율을 믿는 대신 여론조작이라고 믿는다. 셋째, 지엽말단적인 것을 본질 못지않게 중시한다. 내가 ‘촛불소녀’라는 명명에서 양성차별과 세대차별의 낌새를 느끼는 정도는 유도 아니다. 그는 조·중·동 광고주 압박에서 불법행위, 집단난동의 코드를 찾아낸다. 넷째, 그러면서도 마침내 사회 전체로 의제를 확대한다. “사회가 자기방어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해 참 걱정스럽다.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마지막 네 번째 것은 내가 절대 따라가거나 흉내낼 수 없는 ‘거시적 비약’ 능력이다. 난 역시 미시에 갇혀 있다.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가란 언어를 주무를 뿐 아니라, 서사를 주무르는 자라는 걸 이문열은 누구보다 잘 보여준다. 소설은 ‘있을 법한 허구’이거나 ‘허구를 동원한 사실 재구성’ 둘 중의 하나다. 내가 보기에 이문열은 양쪽 모두에 탁월하다. 그에 반해 기자란 소설가의 표음을 겨우 차용하는 자다. 도무지 허구를 동원한 사실 재구성 같은 ‘창조성’을 기대할 수 없는, 기대해서도 안 되는 직업이다. 대신 사실과 사실을, 사실과 허구를 비교하는 능력은 필수다.

▲ 자유발언으로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은 '촛불소녀' ⓒ송선영

이제 비교해보자. 나와 그가 촛불을 걱정하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어쩌면 정반대다. 나는 저러다 촛불이 아무것도 바꿔내지 못하고 꺼질까 걱정이다. 그래서 이 소강 국면에 ‘촛불 이후’를 고민한다. 그는 촛불이 무슨 일을 낼까 걱정이고, 의병을 일으켜서라도 반드시 끄고자 노심초사한다. 내 의심은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라도 촛불의 정신을 해하거나 그 정신에 못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면, 그의 의심은 본디 음모적인 속성의 촛불이 자발성과 순수성으로 위장된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무엇보다 나와 그가 희망하는 사회는 전혀 다른 세상일 거라고 추정된다.

촛불에 대한 반격의 범위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강도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계통이 없다. 애먼글먼 쏟아내는 언어의 포격이 그들의 반동적 소망에 부응할지 장담할 수 없다. 소강 상태의 태풍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초특급으로 돌변하는 법이다. 그들의 소망이 확신 단계로 가기에는 촛불의 진로가 너무 유동적이고, 그들의 언어는 촛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찌질하다. 글을 마칠 무렵, 나의 불편함이 기우가 될 공산도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더 불편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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