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Q) 먼저 늦었지만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사실 <지슬>이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는 영화인만큼 선댄스 현지에서의 반응이 어땠을지 제일 궁금했습니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셨던데, 그 글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저희가 생각했던 반향에 비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A) 그건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슬>에서 보여졌던 일을 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기보다는, 제주 4.3 사건뿐만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가 오래 전부터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도 인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지슬>에서 벌어진 사건이 실화라는 걸 믿을 수 없다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트남이나 이라크 등에서 자국의 명분을 위해 많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미국 내에도 자성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시 깊은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Q) <지슬>이 국내에서 확대 개봉을 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동의하진 않지만 일각에서는 제주 4.3 사건의 발단이라거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로 민간인 학살만을 다뤘다고 하여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문제는 어쩌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감독님도 염두에 두시거나 고민하셨을 것도 같은데 어떠셨나요?

A)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하게 답하고 싶습니다. "왜 제가 해야 하나요?"라고 말입니다. 그건 관객의 몫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정부와 역사학자와 학교 교육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대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왜 일개 영화감독에게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셨지 않습니까? 그 영화에서 한국전쟁이나 분단 등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가요? 영화에서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동일한데 <지슬>은 유독 그런 부분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로서 영화를 찍고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죠. 한국전쟁이 그런 것처럼 제주 4.3 사건도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려야지, 일개 영화감독이나 예술가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슬>은 천운과 함께한 영화

Q) 저는 <지슬>을 보면서 등장인물이 조금은 비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것 치고는 아주 순박하고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데, 다른 인터뷰를 통해 현실에서 벌어졌던 비극과 고통을 영화에서 재연하고 싶지는 않으셨다고 하신 걸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A) 제 영화라서 그런지 저는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개봉한 후에 보니 그렇지 않네요. 제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인지 (웃음) 도입부에 나오는 '신위(神位)'는 영혼을 불러들인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곧 <지슬>에 나오는 주민과 군인 등의 모든 인물이 누구일까요? (제가 여기서 또 어떤 장면을 두고 리뷰에서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의 수다인 것만 같다"고 했던 걸 말씀드렸습니다) 네, 바로 그렇게 찍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배우를 통해 재연을 하는 게 아니라, 제주 4.3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모시고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다시 불러서 또 같은 고통을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죽음과 삶에 대해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Q) 제사의 의미를 갖고 영화를 기획하긴 했으나 처음부터 제사 형식으로 찍으려던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편집 단계에서야 확정됐다고 하던데, 그런 걸 보면 <지슬>에는 천운도 따랐던 거 같습니다. 저는 <지슬>이 제사의 일종이라는 걸 눈치는 채고 있었으면서도 마지막에 지방지를 태우는 걸 보고서 기립박수까지 치고 싶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제사의 형식을 따른 것이 영화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A) 그건 천운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찍었습니다. 저는 <지슬>을 찍으면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산 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찍고 그것을 경률이 형을 비롯한 돌아가신 분들이 함께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주 - 오멸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경률이 형'은 지난 2005년에 작고하신 고 김경률 감독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김경률 감독님은 당시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고 계셨는데, 그 영화의 제목이 바로 <끝나지 않은 세월>입니다. <지슬>을 보셨다면 익숙한 제목이죠? <지슬>의 부제가 <끝나지 않은 세월 2>인 이유가 이렇게 밝혀지는군요.

우리에겐 ‘제주 사투리’가 아니라 ‘제주어’이다

Q) 특이하게도 <지슬>은 몇몇 지방에서는 각기 다른 배급사를 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다른 파격적인 선택이고 저희가 알기로는 첫 시도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는지?

A) 파격적인 선택이라고까지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이전에 영화를 몇 편 개봉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이 있습니다. 토할 정도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도 관객이 늘지를 않습니다. 영화를 찍는 것보다 더 힘든 게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해주는 데가 없습니다. 기존의 배급사는 늘 해오던 대로 고수할 것이니 저 스스로 어떤 다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도를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주목을 받는 영화로 해야 먹히지, 그렇지 않은 영화라면 어디에 내밀어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안타까워서 독립영화협회와 얘기를 하다가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미술도 그렇지만 영화도 대중과 만나면서 욕을 듣거나 칭찬을 받으면서 성장하는데, 매를 맞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큰 극장에서 상영하고 관객을 더 모으자고 거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 것도 해법은 아니고, 나라에서 해주길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 스스로 방법을 찾게 됐습니다.

Q) 감독님의 영화로는 <지슬> 외에 <뽕똘>을 봤습니다. 지레짐작건대 두 영화가 모두 요즘 젊은 세대는 쓰지 않을 제주 사투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서 제주도에서만 영화를 찍고 계신 것과 특히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신 것 등을 보면, 혹시 감독님께서는 제주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걸 가지고 계신 건 아니신지?

A) 아닙니다. 저는 역사나 사회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대통령 투표도 작년에 처음 했습니다. 최근까지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속한 극히 작은 세계였습니다. 무책임하지만 지역 영화를 찍을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주변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화를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 영화의 밑천은 당연히 제 삶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영화의 스펙트럼에서 지역 영화가 빈약했기 때문에 제 영화의 그런 점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제주도에서 영화를 찍는 게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사투리겠지만 제주도에서는 '제주어'고, 그 언어로 영화를 찍은 것뿐인데 그걸 특이하다고 하는 거죠. 저희에겐 그게 삶인데 말입니다.

<지슬>은 제주 영화의 쾌거

Q) 제주도에서 영화를 찍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다른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걸 보니 <지슬>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한국영화의 쾌거'라고 하는 표현을 쓰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A) 자세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제주영화의 쾌거'죠. 우리나라의 문화는 서울 중심이고 반면에 지역이나 지방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소홀합니다. 제가 수상한 것을 두고 통으로 묶어서 '한국영화'로 들어가기에는, 지역의 환경은 아주 조악함은 물론이고 대개 무심한 시선 속에 있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슬>의 수상이 진정 한국영화의 쾌거라면 영화의 소재 또한 역사적 사건이어야 할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의 역사로 오롯이 다뤄지지도 않고 있는데, 그 사건을 담은 영화를 두고 한국영화의 쾌거라고 하는 데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주 - 이 답변을 하시고 "미움 많이 받을 것 같다"고 하셨으나, 사실 서울이 아닌 타 지역에 사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하다못해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서울에서만 개봉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입니다. 여담으로 오멸 감독님께서는 20대 시절에 공연을 보려고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가는 고생을 해야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얘기도 듣는 입장에선 참 재미있었는데 분량 관계로 생략합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그런 경험이 지금 오멸 감독님께서 제주도에서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데 힘을 쏟으시는 계기가 됐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또 하나 덧붙이자면, 오멸 감독님께서는 '자파리 연구소'를 운영하시면서 영화와 연극 등의 공연과 전시를 제주도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십니다.

Q) 아마 이런 질문도 이미 여러 번 받으셨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제주도를 벗어나 충무로에서 찍고 싶진 않으신가요?

A) 제안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대본을 제가 쓴 것도 아니었고. 제가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내가 이 영화를 왜 찍어야 하고, 관객은 이 영화를 왜 봐야 하는가?"입니다. 만약 제가 충무로에 가게 되더라도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겠죠. 충무로가 상업영화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볼 때 결국 영화를 찍는 이유에서 자본이 빠질 수 없을 겁니다. 그 전제가 저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가는 장소가 있습니다. 제주 시내가 보이는 공동묘지입니다.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와 더 친밀해야 하는 곳이죠.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때 늘 거기에 가서 생각합니다. 저 무덤과 나의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최선의 삶이라고 다짐하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

Q) 그렇다면 차기작도 제주도에서 찍으실 계획이신가요?

A)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 서울에서 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싶어요. 너무 많은 분들이 제게 제약을 만드는 것 같아서요. 예술가라면 자신을 배반하고 사회도 배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그렇습니다. 제주분들은 계속해서 제주영화를 해달라고 하고, 예전에는 또 제주영화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상업영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지슬>로 주목을 받으니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그렇게 바뀝니다. 저는 그것도 싫어요. 일관성이 없어서. 저는 그냥 제 작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부산에서 만났던 한 교수님의 말씀마따나 카메라가 있는 곳이 저와 세상의 중심입니다.

Q) 분명 <지슬>은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상이 참 아름다워서 감탄을 했습니다. 촬영하면서 가장 공을 들이셨거나 미학적으로 노력하신 장면 혹은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사실 작업하는 사람은 미학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질 못합니다. 그건 보시는 분들과 학자들이 하는 것이지, 우린 그저 열심히 찍을 뿐입니다. 미학적으로 어떤지 정의를 내리는 게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작업을 합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영화를 찍고 싶지만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정의를 내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보는 이의 감흥과 드라마 등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다르겠죠. 전 단지 어떤 공간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그럼 콕 짚어서 하나만 말씀을 드리면, <지슬>에는 제주 4.3 사건을 하나의 시퀀스를 통해 상징적으로 담아내신 것이 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몇 테이크만에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14번에서 17번 정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도 많은 분들이 칭찬하고 박수를 치시지만 정작 찍는 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얻어진 장면이자 성과일 따름입니다.

제주의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예고편만 공개됐던 <이어도>에 이어서 <지슬>은 본격적으로 흑백 촬영을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

A) 혹시 <이어도> 보셨어요? <이어도>는 개봉하질 않았습니다. 개봉하지 않는 영화도 있어야 하고, 감독에게는 개봉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영화가 꼭 개봉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고, 제가 보고 싶은 영화이자 길을 찾아가는 영화였습니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면 검은색 옷을 입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을 입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주가 워낙 아름답다고만 알려져 있고 그것만 보려고 하면서 그 밑에 있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감독님께서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신 후에 다른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시고 영화 작업에 뛰어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감독님처럼 영화에 뜻을 가지고 있지만 교육을 거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에이, 제가 조언을? 저도 그런 분들과 같은 입장인데요. 저는 대학을 10년 다니다가 그만뒀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이 예술가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고 답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것에 공감하면서도 왜 교육에 집착을 해야겠습니까? 두 분 다 영화 좋아하시잖아요? 지금까지 영화를 수백, 수천 편은 더 보셨을 테고, 그게 바로 교육이지 않겠습니까. 이미 영화를 분석하면서도 봤을 테고 감동도 받았다면 영화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말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진짜 영화를 공부하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영화를 찍어보는 것입니다. 한 편만 찍더라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부가 됩니다. 그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습니다.

<뽕똘>은 <뽕똘>만의 가치가 있다

Q) 이전에 본 <뽕똘>에 이어서 <지슬>을 보고 난 후에 둘이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뭐랄까요, 외람되지만 같은 감독님께서 찍은 영화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고, 순식간에 한계를 훅 뛰어넘어서 성장하신 것 같았습니다.

A)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감독이든 단 한 편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겠죠. 두 영화는 사실 제가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서 달라진 게 아닙니다. 연출을 할 때는 채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뽕똘>의 경우에는 제작비가 500만 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5억 짜리 영화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500만 원짜리와 5억 짜리를 비교하면서 보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규모에 맞는 가치를 봐주시면 <뽕똘>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슬>은 연극을 하다가 다시 찍은 영화인데 그 사이에 제가 달라졌어도 뭐가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단지 제작비가 늘었고 역사를 다루는 영화기에 부담을 가졌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제게 영화는 미술과 같습니다. 미술을 할 때 잘 그린 그림보다는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화 역시 저는 언제나 잘 만든 영화보다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슬>의 경우에는 솔직히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그래야 한 분이라도 더 영화를 보고 제주 4.3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실 테니까요.

Q) 실례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뽕똘>의 제작비는 500만 원이었다면 <지슬>은 얼마가 들어간 영화였나요?

A) 총 제작비가 2억 5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 차이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그리고 영화는 2백만 원으로도 찍을 수 있어야 2억 원으로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2억이나 2백억을 찾아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소신으로 대중과의 거리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대중은 늘 화려한 영화를 선호하잖아요.

관객이 스스로 답을 찾길 바란다

Q) 아무래도 확대 개봉을 한 후에 <지슬>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감춰진 듯한 혹은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던지는 질문인데, 이와 관련하여 관객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아까 말했다시피 저는 제 영화라서 그런지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슬>의 경우에는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으나 대부분은 조금만 찾아보면 누구나 정답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거시니 아시겠지만 영화는 찾아보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직접 영화를 찍고 보니 제가 일일이 그걸 설명하고 있더군요. 조금만 제주도 설화 등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시면 <지슬>에 갖고 있는 의문은 금방 풀 수 있습니다. 제가 말로 설명을 하면 영화의 모든 것이 관객의 것이 아닌 제 것이 됩니다. 그 기회를 제가 다 빼앗아 버리는 것일 수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영화의 감흥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것인데 그 감흥을 감독이 다 상실시키고 있는 것 같아 자괴감마저 느끼곤 합니다. <지슬> 같은 독립영화는 홍보에 쏟을 여력이 없으니 감독을 통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거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이 그의 일환이죠. 그렇게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감독의 말이 영화를 한정짓고 마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독립영화에는 상업영화에서 할 수 없는 감독의 철학이 깃들어 있어서 곱씹을수록 영화에 좀 더 가까이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업영화처럼 관객에게 단번에 쉽게 전달이 되도록 감독이 최전방에 서는 것에서 공허감이 심하게 밀려옵니다.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서 제가 점점 불친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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